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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달려 2백만원 절감...선택권 보장도 '빈말'

10개월 달려 2백만원 절감...선택권 보장도 '빈말'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13.07.26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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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중)
2007년 국립의료원 시범사업 참담한 실패
"의사 동의없인 제도 정착 담보할 수 없어"

대한약사회가 성분명처방 시범사업 재추진 카드를 꺼내들면서, 의약간 대충돌이 예고되고 있다.

약사회는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 공문을 보내, 성분명처방이 약제비 절감 및 환자 선택권 보장에 기여할 수 있다면서 일산병원을 통해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을 진행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약효동등성 문제에 따른 위해가능성 등을 이유로 성분명처방을 여전히 강력 반대하고 있는 상황. 2007~2008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진행됐던 첫 시범사업 사례를 들어, 이미 실패한 사업을 재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반대론도 힘을 얻고 있다.

약사회는 '핵폭탄급' 파급을 불러올 성분명 카드를 왜 다시 꺼내들었을까. 5년전 실패의 경험은 잊어도 좋을 해프닝에 불과할까? 성분명처방 둘러싼 논란들을 <의협신문>이 꼼꼼히 짚어봤다.

(상) 위기 몰린 공단·약사회 '통하였느냐'
(중) 5년 전 참담한 실패, 교훈 잊었나?
(하) 의사들 생생 증언 "성분명처방 실패 이유는..."

이번 일산병원 시범사업 제안 때도 이를 가장 강력한 무기로 내세웠 듯, 약계는 줄곧 성분명 처방을 통해 약제비 절감과 환자 선택권 보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분명 처방, 과연 건강보험재정을 절감하고 환자의 권리도 찾아줄 수 있는 '꿈의 사다리'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잠시 첫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이 실시됐던 2007년으로 함께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7년 국립의료원 앞 한 문전약국. 벽면에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정부는 성분명 처방을 줄기차게 요구해 온 약계의 목소리를 반영, 2007년 국립의료원에서 전격적으로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을 실시키로 한다.

시범사업 기간은 그해 9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10개월. 참여대상은 국립의료원은 이용하는 외래환자로, 대상의약품은 상대적으로 오랜기간 처방되어 온 의약품 가운데 사용빈도가 높고 안전성과 유효성이 어느정도 확보될 수 있다고 판단된 20개 성분·32개 품목·485개 상품(보험등재 기준)이었다.

당시 시범사업은 의약계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시작됐다.

의료계는 약효동등성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인만큼 국민건강에 위해가 될 수 있다며 시범사업 실시를 반대했으나, 약계는 성분명 처방이 약제비 절감 및 환자의 의약품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다며 고집을 피웠고, 건강보험재정 형편상 약제비 절감이 다급했던 정부는 결국 약계의 손을 들어줬다.

약제비 절감-약국·의약품 선택권 보장 모두 '공염불'

그로부터 10개월. 약계와 정부의 꿈을 안고 달렸던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은 참담한 결과물을 내놓으며 막을 내렸다.

성분명 처방으로 절감한 약값의 규모는 10개월간 200여만원. 병원을 이용한 환자 가운데서는 성분명 처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로, 성분명 처방이 약제비 절감과 국민의 의약품 선택권 보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약계의 주장을 무색케했다.

실제 당시 정부 용역으로 진행됐던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시범사업 이후를 기점으로 정산한 성분명처방 약품비 절감액은 212만원에 불과했다. 비교시점을 시범사업 이전으로 돌리면 절감액은 167만원 수준까지 더 떨어졌다.

성분명처방이 환자들의 의약품 선택권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도 충족되지 못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기간에 병원을 방문했던 환자 18명을 대상으로 면담조사를 실시한 결과, 과반수가 넘는 10명의 환자가 성분명 처방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으며, 성분명처방을 받았다고 답한 6명의 환자 가운데 절반은 처방약을 환자본인이 아닌 약사가 결정했다고 답했다.

환자 선택권 보장의 또 다른 지표인 약국 선택에 있어서도 이렇다할 변화가 목격되지 않았다.

당시 약계는 성분명처방의 주요한 기대효과 중 하나로 약국에 대한 접근성 향상을 들었다. 성분명처방으로 특정 제품을 구비한 문전약국 조제에서 벗어나 집 근처 단골약국 이용이 가능해 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조제약국의 소재지 분포 또한 시범사업 이전과 이후에 크게 달라지는 양상을 보이지 않았다. 성분명처방을 한 경우에도 국립의료원 주변 약국에서 조제된 비율이 전체의 85% 이상으로 높은 비율을 유지한 것.

상품명처방이든 성분명처방이든, 환자가 약국을 선택하는데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과였다.

억지춘향식 시범사업...의사 외면 속 역사의 뒤안길로

▲성분명처방 시범사업 첫날인 2007년 9월 17일 국립의료원. 의료계 주요 인사들은 이날 성분명처방 처방 시범사업에 반대하며 피켓시위를 벌이는 한편, 환자들에게 성분명처방의 문제점을 알리는 선전전을 벌였다. ⓒ의협신문 김선경
성분명 처방 비율이 전체의 31.8%에 그쳤다는 점도 사업의 한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다.

당시 정부는 모든 처방을 의무적으로 성분명으로 할 수는 없다는 의료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성분명 처방 여부를 의사가 자율적으로 판단에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시범사업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성분명처방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던 의료인들이 처방변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기대. 30% 수준에 그친 의사 참여율은 제도 강제시행에 따른 폐해를 여실히 보여줬다.

실제 당시 연구팀 설문에 응한 의사 43명 가운데 성분명 처방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낸 사람은 1명에 그쳤고, 절대 다수는 의사 처방권 침해·복제약에 대한 신뢰부족 등을 이유로 성분명 처방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약국에서조차 의사의 협조 없이는 제도를 정착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을 정도.

정부는 국립의료원 특성상 의료급여환자 비율이 높은데다 의사의 자율판단을 전제한 시범사업의 임의성과 대상의약품 및 조제약국의 편향성 등으로 시범사업이 성분명처방의 효과를 충분히 검증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며 애써 자위했지만, 사업 확대를 위한 동력은 이미 잃어버린 상태였다.

당시 정부는 시범사업 평가결과를 발표하면서 추가적인 시범사업 실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더이상의 후속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약계의 주장과는 달리 성분명처방을 내더라도 약제비 절감이나 환자 선택권 보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 무엇보다 의사들의 동의없이는 제도의 안정적 시행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이미 2007년 시범사업을 통해 확인됐다"면서 "건보공단과 약사회는 커다란 갈등을 겪고 얻어낸 이 같은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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