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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절감정책만 고집하는 것은 잘못

재정절감정책만 고집하는 것은 잘못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2.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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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급여제한 및 비급여 확대의 문제점'을 주제 발표한 배균섭(서울아산병원 임상연구지원센터·약리학)교수는 지난 해 11∼4월까지 1,413품목의 소화기관용 약이 비급여품목으로의 전환되고 이번 7·1고시가 발표되는 등 정부가 오직 건강보험재정 파탄을 막기 위한 급여 축소 정책만을 고집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의사들이 양심과 의학적 지식에 근거해 진료를 해야 됨에도 정부 고시에 의해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최근의 상황은 의학적으로 최악의 상황이라 할만하다고 말했다.

또한 배 교수는 이번 고시가 제도의 정립, 규정의 제정과정에서 당연히 요구되는 당사자들의 의견이 철저히 배제됐으며 이는 정부가 여러 재정안정화 방안들의 추진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집단들의 반론을 조정하는 기제조차 갖추지 않고 밀어 붙이기식 행정을 추진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배 교수는 의료는 획일화된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이 아니라 개개 환자의 특성에 맞는 개별화된 진료를 제공해 환자의 건강을 유지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를 보험에서 강제로 규정하려 하기 보다는 해당 의사와 학회 등 전문가 집단의 권고사항에 맡겨 개별 환자에게 최적의 진료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약품 급여제한 및 비급여 확대에 대한 보건복지부장관 고시의 법적 문제점'을 발표한 한희원 변호사(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는 7·1고시가 법률적으로 절차상·내용상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한 변호사는 행정입법의 일종인 고시가 효력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행정절차법에 의해 당사자들에 대한 사전 통지(제21조 1항), 청문절차(제21조 2항), 당사자의 의견제출 절차(제27조), 공청회(제3절) 등의 제반 절차를 이행해야 함에도 6월 28일 고시가 되고 3일 후인 7월 1일 고시를 시행하는 등 적법한 행정절차를 지키기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정으로 강행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법 제39조 제2항에서 요양급여의 범위는 제9조 규정에 의한 비급여대상을 제외한 일체의 사항으로 한다고 정의, 법의 취지상 의학적 타당성이 인정되는 사안에 대해서만 요양급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음에도 재정정책 등을 이유로 임의로 비급여 대상을 설정하는 것은 법 취지에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고시 내용 역시 “경제적 약제를 사용하고…”, “필요적절하게 투여하고…” 등의 자의적이고 애매모호한 문구를 사용, 고시함으로써 규범의 명확성이란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잘못된 고시에 대한 법률적 대처로 감사원에 직무집행감사 또는 징계청구를 할 수 있으며 담당자를 업무방해, 협박죄, 직권남용죄 등으로 형사고발, 손해배상, 헌법소원 등의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제발표 이후 계속된 지정토론에서는 위암말기 판정을 받은 이 모씨가 일반인 연자로 참석, 1년여의 투병생활 중 소화제 급여 제한 으로 겪은 고통을 호소하고 고시 철폐를 주장했다. 특히 그는 소화제의 보험혜택 제외를 통보 받고 복지부 급여과, 심평원, 청와대 민원실까지 찾아 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모두들 책임만 회피할 뿐이었다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홍정용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이번 7·1 고시로 의료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양해한 적이 없는 부담을 감수해야 했고 병원 의사들 역시 의료현장에서 환자들의 불만을 직접 대면하며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환자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난감에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홍 이사는 지난 4월에 발표된 비급여 전환 조치가 결과적으로 급여 비용을 증가시켰듯이 이번 7·1고시도 사실상의 비용 증대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홍 이사는 또한 병원 구성원들이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고시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다며 이번 고시와 같이 진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치들은 시행되기 전에 그에 따른 충분한 설명과 이해를 최소한 병원 담당자들에게 라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석우 한국제약협회 전무이사는 국민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 명확한 이런 고시들이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발표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성토하며 고시 발표는 적법한 법적 절차를 거치고 시행시기 역시 보다 여유있게 운영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동섭 조선일보 기자는 복지부가 과잉처방을 막자는 취지로 기본적인 당사자들의 컨센서스 형성도 없이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며 약제비 절감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약값의 지속적인 조사와 함께 저가약 사용에 따른 규제가 아닌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추진해야 할 것 이라고 충고했다.

신창록 원장(신록내과의원)은 복지부가 소화기 계통 질환의 유병률이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본 결과 7·1고시가 나오게 됐다고 말하고 당장 약 몇알을 절약하는 것과 사전투여에 의해 2차 질환을 예방하는 것 중 정말 무엇이 비용대비 효과가 높은지 정부는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미숙 회장(한국펭귄회―류마티스관절염환우회)은 관절염으로 14년간에 각종 약을 복용해야 했기 때문에 소화기 관련 질환의 위험성이 높아 비급여로 전환된 이후에도 본인부담으로 소화관련 약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말하고 내시경을 해야만 소화기 약제의 급여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도대체 의료보험이 왜 존재하는 것이냐며 이번 7·1고시의 부당성을 성토했다.

이규식 교수(연세대 보건행정학)는 지난해 5월 정부에 의해 실시된 재정안정화 대책은 그 자체가 곧 무리수 였다고 전제하고 올 4월 시행된 비급여 관련 조치들로 국민의 부담은 늘고 의료서비스는 하락했다며 정부의 졸속행정을 비난했다. 특히 이 교수는 정책입안자들이 당위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현실적인 의료 상황에 대한 이해가 따를 때에만 정상적인 의료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열린 종합토론 시간에는 박수헌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보험이사는 고시 내용에 의학적인 근거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약의 분류 기준 역시 가격보다는 보다 의학적인 근거에 의해 분류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윤철수 의료제도민주화추진운동본부 대표는 늘어나는 만성질환자들을 위해 정부는 보다 장기적인 의료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요양급여 기준이 곧 의료행위의 기준이 되는 현실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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