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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못잖은 확실한 취미…삶이 풍족해집니다"

"전공 못잖은 확실한 취미…삶이 풍족해집니다"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3.10.17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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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스테디셀러 저자 오재원 한양의대 교수, 바이올린 사랑 한 길

▲ 오재원 교수. ⓒ의협신문 이은빈
베토벤, 슈베르트, 말러, 슈만…. 널리 알려진 세계적 작곡가 43인의 명곡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필하모니아의 사계'는 클래식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이 책의 저자가 꽃가루 알레르기 분야의 권위자인 대학병원 교수라는 사실에 독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클래식에 문외한이라도 누구나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배경지식을 다룬 내용 자체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의학보다 음악이 더 좋다"는 별종 의사 오재원 한양의대 교수(한양대학교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를 명화 엽서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클래식 대중서를 낸 작가이면서 수준급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한 그는 진료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의사라면 더더욱 음악이든 미술이든 글이든 확실한 취미를 가질 것을 조언하면서 "전공 못지않게 열심히 해야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음악에 미련 남아서" 전공의 3년차 때도 '협연'

오 교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여덟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라북도 군산 출신인 그는 집안에서의 권유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바이올린을 잡은 케이스다. 우연히 집 근처 레코드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대학생을 본 뒤로 틈만 나면 가게 앞에서 군침을 흘렸다고.

"악기점에 가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네가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다'고 잘라 말하더군요. 아껴 모은 돼지 저금통을 들고 갔습니다. 주인은 부모님을 알고 있으니 일단 갖고 가라고 했죠."

이후 9년 동안 레슨을 받으면서 음악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그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지령이 떨어졌다. 아버지가 "음악은 취미로 하는 거지, 밥벌이로 해서는 안 된다"며 그가 애지중지하던 바이올린을 부숴버린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 의과대학 진학에 성공하고 나서도 "음악에 대한 미련이 너무 많이 남더라"는 오 교수는 낙원상가에서 중고 바이올린을 구입했다. 음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결혼식이나 라이브 카페에서 반주를 맡았다. '제2의 음악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밤잠 설쳐가며 일하는 인턴과 레지던트 저년차 때만 빼고는 바이올린을 놓은 적이 없어요. 전공의 3년 차 때 당직을 서면서도 비발디 사계를 협연했을 정도니…. 주위에서 저를 별종 취급한 건 어쩌면 당연했을 겁니다(웃음)."

10년째 병원 로비에 울려퍼지는 바이올린 선율

전공자가 아니면서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는 많아도, 음악가와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입문서까지 내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

'필하모니아의 사계'에 열거된 전문지식은 당시 그가 음대 전공수업을 몰래 들으면서 주경야독한 결과물. 오 교수는 "작곡기법이나 화성법 등을 배우면 음악을 들을 때 훨씬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한 달에 한 번, 진료를 마친 그가 한양대구리병원 로비에 연주자로 나서는 '키론 트리오와 함께하는 음악산책'은 벌써 10년째 병마에 지친 환자와의 소통 창구로 기능해오면서 대내외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얼마 전엔 예전에 치료해준 소아환자가 훌쩍 성장해 성악을 공부한다며 음악산책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오 교수는 지금도 고민이 있거나 머리가 아플 때면 바이올린을 꺼내어 무반주로 연주한다. 선율에 집중하면 묵은 걱정거리도 사라진다고 믿는 그다.

오재원 교수는 "취미가 있으면 삶이 풍족해진다"며 폐쇄적인 교과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의사들이 틈나는 대로 의학 이외의 분야로 눈길을 돌릴 것을 권했다.

"뭘 배운다고 해도, 대부분 3~6개월이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안 됩니다. 시간을 쪼개서, 24시간을 미분해서 보면 그렇게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거든요. 제가 좋아서 시작한 거지만 살면서 이걸로 덕도 많이 봤습니다. 사회에서 다른 직업군을 만날 기회가 부족한 의사들에게 꼭 권하고 싶어요. 확실한 취미를 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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