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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행복하고 좋은 의사의 자격

청진기 행복하고 좋은 의사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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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0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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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연세이비인후과 의원 의료윤리연구회장 )

▲ 홍성수(연세이비인후과 의원 의료윤리연구회장 )

시험의 계절이 지나갔다. 의과대학 입학시험을 치르고, 의사면허시험을 치르고, 전문과 수련의 선발 시험을 치르고, 전문의 자격시험을 치른다.

이제 3월이면 각자 희망차게 새로운 과정을 시작할 것이다. 어느 과정 하나 쉬운 것이 없는 피 말리는 경쟁의 연속 속에 초인적인 집중력과 지구력을 요구한다. 심지어 30~40년 전에 같은 과정을 밟았던 부모된 이들조차 한결 같이 지금 다시 하라면 자녀들만큼 잘 할 자신이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쓴웃음이 나오지만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슬로건의 진원지, 사교육의 메카에서는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알음알음 진학의 필요충분조건에 대한 상담과 지도(!)를 받는다고 한다.

그 중의 압권은 '누가 의과대학에 가야 하느냐'인데, 필요한 성적은 당연한 것이고 이에 더해 부모 중에 한 명이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거나, 최소한 전문병원급 이상의 원장이거나, 자녀가 정교수가 될 때까지 혹은 개원 이후 자리를 잡을 때까지 생활비 일체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단다.

놀랍지 않은가? 의사가 되기 위해 학생 본인은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수학 문제를 단 한 개도 틀리면 안 되는 공부기계이면 충분하고 나머지는 다 부모의 조건에 좌우된단다. 이는 제법 유명하다는 중매쟁이, 마담뚜가 제시하는 최상급 의사 신랑감의 조건과 대동소이하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맥이 풀린 후배 동네 개원의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다. 현재 의료계 상황에서 20년 후 미래를 상상해 보면 전혀 틀린 이야기도 아니고 오히려 그 '상당하다'는 상담 비용도 제 값을 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니까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하게 동네 구멍가게 가업을 잇겠다거나, 적성이나 자질·소명·뚝심 혹은 희망 사항으로 의사를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미래예측이다. 어쩌겠는가? 부모가 욕망하고 사회가 강요하며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또 그렇게 굳어가고 있음일 뿐이다.

미래예측의 기준이 무엇일까? 안정성일 것이다. 무엇이 안정적이란 의미일까? 신분 보장과 수입일 것이다. 과거 1997년 아이엠에프 시절의 대량 명예퇴직 사태의 사회경제적 공포가 수능성적 순위와 의과대학 서열의 입학 정원을 대조해서 어디라도 좋으니 의과대학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절박한 인식을 굳혔고, 적성이나 인성·자질 등은 다 배부르고 한가한 소리로 만들어 버렸다.

단 한 마디, '너네 의사들은 눈 안 보이고 손 떨릴 때까지 정년이 없잖아?' 3년 후 2000년도 의약분업 투쟁에서 의사들이 국민으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온 나라가 이과는 의사, 문과는 법조인이라는 전문직을 선망함과 동시에 애증의 양가감정을 갖게 됨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솔직히 신분 보장과 안정적 수입 때문에 의사의 길로 들어섰다고 하자. 최상의 스펙을 갖춘 것만으로 필요충분한 것일까? 애당초 의사라는 직업은 생명과 건강을 다뤄 고매하다 할지 모르지만 철두철미 3D, (심신으로)힘들고, (책임소재로)위험하고, (고름에, 피에, 악취에 잡다하게)구질구질한 일이다.

그래서 고도의 자기확신과 소명의식 그리고 사회가 기꺼이 보장해 주는 사회경제적 안정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자부심과 보람 그리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의학 지식과 술기 못지 않게 질병이 아니라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해 즉, 인문학적 소양이 절실하다.

의사의 자부심과 보람 그리고 행복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분 보장이나 안정적 수입 보다 더 근본적인 토대는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에 대한 자기 확신을 내면화시키고 의료 현장으로 진출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의사 전문직업성이란 '대한민국의 의사는 어떠해야 한다'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전통·철학 및 윤리에 기반하고 현실을 감안해 총망라한 정의와 기준일 것이다. 그런 용어조차 들어 본 적 없이 의료 기술자 수준으로 진료 현장에 내던져진 필자 세대로서는 가장 뼈아픈 약점이다.

과문한지 모르나 우리나라 의학의 역사가 100년을 넘어선 지금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전국의과대학학장협의회 아니면 개별 의과대학에서 요구하는 사회적으로 동의할 만한 인재상-비전·미션·핵심가치·구체적인 행동강령-이 마련돼 있는가? 시대 변화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개정, 재 개정을 해 왔는가? 의과대학 입학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도 선정해 놓고 있는가? 그와 같은 기준에 부합하는 인재를 선발하고 있는가? 그 인재를 기준에 맞게 육성하고 있는가? 배출된 인재가 사회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지 추적과 평가를 하고 있는가? 누가 해야 하는가? 아빠는 빼고 엄마와 할아버지에게 여쭈어 봐야 하나? 아니면 보건복지부 의료자원과장에게 문의해야 하나?

자! 새롭게 시작하는 이 즈음, 특히 최고의 인재이신 모든 후배 의사님들! 미래 대한민국의 행복하고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도록 늘 스스로 묻기에 분발해 주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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