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원칙 없는 '규제 완화' 제2의 세월호

시론 원칙 없는 '규제 완화' 제2의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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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14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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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 주장은 환자 안전 위협
교육·수련 위한 기초도 갖추지 못해...의료윤리·면허체계 붕괴
현대 의료기기 사용 원한다면 교육받고 의사면허 취득해야

▲ 안덕선 고려의대 교수(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는 규제 기요틴(단두대)으로 변해 드디어 의료계에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규제개혁이 정치적 단골 메뉴가 되고 있다. 지난 반백년 고속 경제발전의 성과에 젖어 낮은 경제성장률이 곧 무능한 정권으로 인식되기 십상이었고, 차기 정권의 확보를 위해 무엇보다 서민을 살리겠다는 민생경제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전통적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논리인데 이렇다 할 변변한 대항조차 힘들어 보인다.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현상은 경제발전으로 인한 환경오염·자연 파괴·노동 착취 등의 물질적 풍요이상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와 국가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무분별한 규제철폐 역시 경계해야 한다.

애당초 규제는 왜 생겼을까? 규제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 그리고 사회 안정성 확보와 사회 구성원 간 상호 편리를 위해 만든 사회적 규약이다.

좋은 의도로 만든 규제에 대한 철폐 이야기가 항상 회자되는 것은 실제로 규제를 집행하는 절차에 있어 그것이 합당하지 않거나, 불필요하거나 혹은 매우 적대적이며, 갑질에 의한 딱딱한 관료주의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규제 집행기관이나 집행자가 규제에 대한 분별 있고, 사려 깊은 적용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규제를 담당한 사람이나 기관이 없어도 되는 불필요한 규제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반대로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제를 지키지 않은 것을 묵인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사례에서 사람들은 규제에 대한 혐오증을 갖기 시작했다.

이것은 규제를 담당하는 정부기관, 공공기관이나 공무원의 규제 집행에 대한 역량 부족으로 귀결된다.

한편, 작은 정부와 작은 규제가 좋다고 주장을 하지만 실제 규제집행의 권리가 정부나 공무원에 있는 구조에서 작은 정부는 결국 무능한 규제기구(regulator)가 될 수밖에 없다.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정부부서는 인력과 재원이 없다는 매우 상투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은 정부를 표방하며 적은 수의 공무원과 적은 예산으로 복합적이고, 전문적인 사안에 대해 직접적인 규제를 하겠다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의료에 관한 규제는 고도의 전문성과 복잡성, 복합성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런 규제를 단순한 경제적인 시각으로 접근해 정부가 직접 관여하려는 것 자체가 사회적 안정성을 훼손시키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선진국은 규제가 필요한 경우 비정부 공공조직을 이용하는 제3자 조합(tripartism)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 비정부 공공조직이 담당하는 규제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모니터링만 하는 최소의 메타규제를 수행하고 있다.

선진적인 정부라면 바로 이러한 기구들이 사회 속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하도록 하고, 법적인 뒷받침을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나 산하 공공기관에서 하는 규제가 제대로 집행되지 않거나 혹은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규제를 완화하거나, 부패의 고리로 연결된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의 대표적인 사례는 세월호에서 극명하게 보여줬다.

규제개혁이나 완화를 외치는 집단의 일부는 개인과 사회의 안정성 보다는 경제 활성화로 잘 포장된 정치적 구호로 규제철폐와 안전성의 상거래를 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규제는 사회에서 벌어지거나 벌어질 수 있는 각종 인위적, 자연적인 위해나 재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바로 문제의 원인이다.

이미 많은 사건이나 사고는 규제가 원인이 아니라 규제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한데 따른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규제과학의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 바람을 타고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 사용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이 배우고 공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배타적이었던 현대 의학과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규제개혁에 편승해 사용하려는 것이다. 

한의사와 의사는 다른 면허를 부여하고 있으며, 면허는 상호 배타적이다. 유사 의료분야에 면허를 상호개방을 한다면 의사가 치과의사나 한의사의 역할을 할 수 있고, 간호사도 의사나 한의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것이 과연 안전한지, 사회에 위험부담이나 위해의 요소를 가하는 지에 대답은 자명하다.

애당초 한의사로 명명하고 면허를 준 것은 한의학에 정통해 환자진료에 한의학을 사용하기 위함이다. 의사나 치과의사도 자신들이 잘 모르는 한의학 진료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료윤리적인 문제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첫째,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한의학의 한계에 대한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우호적으로 보면 한의학의 현대화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한의대의 한의사 교육은 의학의 현대 의료기기에 대한 교육과 수련을 위한 기초적인 하부구조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의학의 현대화가 곧 의학의 도입이라면 이것은 기존의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로 구분하고 있는 면허체계의 붕괴현상으로 이어진다.

둘째, 전문직에 부여된 면허는 배타적이며, 독점적이다.

면허의 취득은 의료의 질적 보장을 위한 교육과 수련 그리고 평가가 선행된다. 종국적으로는 환자와 사회의 안전을 위한 제도다.

의학을 전공한 의사와 전통의학을 전공한 한의사는 법으로 직능의 구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문과목을 신설하거나 세부전문의를 인가할 경우에도 기존 전문과목은 물론 타 보건의료 직종과의 중첩이나 영역침범에 대한 내용이 있을 경우 허가를 받지 못한다.

셋째, 한의사에게 현대 진단기기 사용의 파급효과는 전통의학보다는 의학체계에 의한 질병 분류와 진단법의 도입, 그리고 진단과 치료기기의 확장으로 이어질 개연성(slippery slope)으로 연결된다.

한의사는 동양의 자연철학과 한의학 원리에 근거한 진단과 치료법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환자를 치료한다는 근본적인 목적은 같지만 의료의 과학적 방법론과 학문적 배경이 다르고, 각자 취득한 역량 역시 매우 상이하며, 다른 진료체계를 갖추고 있다.

전투기 조종사가 여객기 조종을 할 수는 없다. 기종간 별도의 교육과정과 훈련이 필요하며, 각기 다른 역량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임의적으로 기종을 교체하는 것은 곧 승객의 안전에 대한 지대한 위협이다.

넷째, 최근 선진국에서는 의료인이 자신의 역량을 타 의료직 영역으로 확장하려 할 때 이를 확장진료(extended practice)로 규정하고, 별도의 지침을 발간해 지키도록 했다.

2010년 영국 'Council for Healthcare Regulatory Excellence'가 출간한 바람직한 규제(Right-touch regulation)에서는 한 의료인이 두 가지 의료를 하려고 할 때 이를 확장의료(extended practice)로 명명하고 이에 대한 규제를 명확히 했다.

가령 간호사와 물리치료사, 의사와 치과의사 등 두 가지 직종에 대한 의료로 확장할 경우가 있을 것이다. 현대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각 직종과 직역이 갖는 역량의 한계와 범위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환자와 사회를 보호하는데 있다.

의사는 모든 영역에 역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영역 내에서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영역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은 환자와 사회의 안전을 위해 매주 중요한 개념이며, 면허의 유지를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다.

'scope of practice'는 자신의 역량에 따른 진료영역의 설정이다. 이것을 확장하려면 반드시  별도의 교육과 수련을 받도록 하고 있다.

면허 규제기관의 공식적인 입장은 확장된 의료를 원하는 경우 두 가지 면허의 동시등록으로 결론을 짓고 있다.

따라서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기 원한다면 필요한 절차와 교육을 통해 의사면허를 추가로 취득해야 한다.

다섯째, 한의사가 별도의 의사면허를 취득하지 못한 경우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의사와 협진체제를 구축하면 된다.

과거 한의계는 한의학과 의학의 통합에 대한 논의를 전통의학 말살정책이라 비판했다.

하지만 최근 한의계에서는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해야 한다면서 종래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는 논리를 펴고 있다.

현대 의료기기의 사용을 규제 제거나 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우회하기 보다는 의사양성제도의 통합적 논의로 전환해야 한다.

여섯째, 한의사의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을 부추기는 또 다른 숨은 이유는 건강보험제도가 아직도 의료인의 직접적인 봉사에 대한 보상보다는 고가의 진단기기나 각종 첨단 기계적인 처치에 대한 수가보상이 주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점차 쇠락해가는 한의학에 대한 인지도나 급성 질환, 응급상황에 대한 무기력의 결과는 결국 한의학의 이용도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한의사나 한의학의 생존에 위협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진정한 의학-한의학의 통합보다는 2차적 이득을 위한 적극적인 경영전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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