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바야흐로 3월이다. 3월이 되면 모든 학교가 일제히 개학을 하고 학생들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등교한다. 학제 시스템과 연계 되어있는 병원도 마찬가지다.
의과대학을 막 졸업하고 의사로 첫 발을 내딛는 인턴은 말할 것도 없고 전문 과목을 선택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전공의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 때마다 각 병원의 의사들은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병원 안팎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이다.
그렇게 3월이 지나고 목련이 벙글기 시작한 4월이 되면 병원은 또 한 번 진통을 겪게 된다. 적성이 맞지 않는 과를 선택했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전공의들이 결국 병원을 떠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봄 들녘에 아지랑이 피어오른다// 레지던트 수련 중에/스트레스 견디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전공의들/ 4월초 담장마다/목련 두근두근 벙그는데/떠나는 이들의/까만 눈망울이 젖어있다//유구무언//그럼에도 불구하고/환자가 우리들의 경전이다
의사시인이며 수련 병원 과장이기도 한 김완시인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전공의들을 애잔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누군들 힘들게 공부해 어렵게 선택한 병원을 떠나고 싶겠는가. 그 애타는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어떤 이유에서든 의사로서 사명감까지 잃어버려서는 안 되리라.
그가 고뇌에 찬 목소리로 가만히 속삭인다. '환자가 우리들의 경전이다' 그 조그만 외침에 우리는 깊게 머리 숙일 수밖에 없다. 의사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한국의사시인회 두 번째 사화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환자가 경전이다>는 시인의 이런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의학을 실험적 검증과 과학적 추론만의 영역으로 경계 짓는 것은 미흡하다. 진정한 의학은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에 관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시(詩)와 깊이 닿아 있다. 따라서 시와 의학의 융합은 직관, 상상력 그리고 창의적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를 풍부하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의학과 시가 과학과 예술로 구분돼 각각의 영토에 제각기 놓여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의학과 시 사이에 놓여있는 고급스러운 구별을 헐어내고 사귀어 서로 오가는 통섭의 능력을 갖춘 의사시인의 능동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의사 시인들이 시적 소양을 증진시키기 위한 상호 교류의 터전을 마련해 궁극적으로 의료발전과 시적 능력 고양에 함께 기여함을 목적으로 '의사시인회'를 창립한다.
"우리 '의사시인회'는 창립 목적을 달성하고자 시회(詩會)·시집 발간·강연회 등을 포함한 의료와 시의 통합으로 오히려 각각의 고유성이 한결 빛나는 활동을 할 것이다. 먼 후일, '의사시인회'가 내딛는 오늘의 첫걸음이 의료계와 시계(詩界)의 많은 이들에게 지혜와 포용의 무변(無邊)한 가능성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하며 시를 사랑하는 의사들의 동참을 청한다."
한국의사시인회 창립취지문에서도 문학과 의학의 소통에 대한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마치 의사와 환자의 관계처럼. 하지만 이 역시 환자 앞에서 경전을 대할 때처럼 겸허해져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국의사시인회가 결성돼 행보를 시작한 지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 차례 시 낭송과 시회 등을 개최했으며 두 권의 사화집을 간행한 바 있다.
회원 중에는 마종기 시인과 허만하 시인 등 문단의 원로로부터 이제 갓 등단한 김호준 시인까지 약 40여명의 시인이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의사 10만을 넘는 시대에 시 쓰는 의사들은 이보다 훨씬 많으리라 짐작하지만 전체 시인을 모두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의사이며 등단한 시인이면 누구든지 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시를 사랑하는 의사들의 동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사시인회는 한국문단에 시적 외연을 확장하고 의사들에게는 시를 보급하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문학과 의학의 소통을 통해 궁극적으로 의사와 환자 사이 불신의 벽을 낮추는데 소명을 다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사명 역시 '환자가 경전이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