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 교수, 20년간 꾸준한 자살률 증가에 정책적 문제 지적
"정신적 고통...눈에 보이지 않아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이원영 중앙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는 2일 '자살과 한국사회 공동체의 위기'를 주제로 진행된 대한예방의학회 등 4개 학회 공동학술대회에서 국내 자살예방 정책에 대해 이같이 비판했다.
그는 "1997년 이후 급격히 올라간 한국의 자살률은 10년째 OECD 국가 중 1위 자리에 있다. 그럼에도 자살예방대응 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며 "암이나 심뇌혈관질환과 달리 정신적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지난 20년간 꾸준히 자살률이 증가한 나라는 우리 뿐"이라며 "1997년·2002년 등 경제위기가 불어닥친 시기에는 자살률이 특히 올라간다. 경제위기는 또 올텐데 정책적으로 아무런 대책이 없어 보인다. 절박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중앙정부의 자살예방 예산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자살문제에 대한 정부 예산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생명문화조성과 응급실기반자살시도자 관리사업이 효과가 있는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것인지를 논의하는 자체가 의미가 없다"며 "전체적으로 사업수행을 하기에 예산이 터무니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암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질병 부담의 50%에 이르는 자살문제에 정부는 전체 암 예방·관리 예산의 5%도 되지 않는다"며 "최근 기초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정신건강증진센터를 건립하고 있지만 이 기관은 주로 재가 만성조현증 환자재활에 초점을 두고 있어 지역자살예방사업과 직접적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부처의 자살예방 조직과 인력 현황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자살예방사업 추진에 있어 교육부·노동부·경찰청 등 정부부처간 정책을 조율하고 이끌어갈 상시적인 협의체가 없다"며 "각 부처는 필요할 때마다 협의하는 수동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보건복지부 정신보건과-중앙자살예방센터-광역자살예방센터-기초자치단체자살예방센터로 이어지는 현재의 수직적 구조는 교육·복지·노동 등 타 영역과의 연계가 어렵다"며 "게다가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담당자가 3명에 불과하다. 이 인력으로 지역 내 게이트키퍼교육·자살시도자관리 등의 업무를 하기에 매우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
정책적 문제와 함께 자살에 대한 조사연구의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자살실태조사나 모니터링체계의 방향이 자살예방정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하지만 현재는 정책과 조사연구가 별도로 움직이고 있다"며 "지금까지 자살조사나 연구가 주로 임상적 정보나 교육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정책 수립이나 평가에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예로 "예컨대 국내 우울증 치료실태와 원인에 대한 국가차원의 체계적인 연구를 찾아볼 수 없다"며 "정책기획과 조사연구가 서로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대한예방의학회·한국보건교육건강증진학회·한국보건행정학회·한국역학회 등 4개 학회가 공동으로 진행했다. 이날 4개 학회는 ▲연구기반 구축지원 ▲범부처 자살예방위원회 신설 ▲자살예방 예산 대폭 확대 등을 담은 정부 건의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