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서울 금천·명이비인후과의원/전 의료윤리연구회장)
해마다 미국에서는 가장 신망 받는 직종 상위 10개와 가장 신망 받지 못 하는 직종 하위 10개를 발표한다.
2015년 미국사회에서 제일 신망 받지 못하는 직종 하위 10개 중 최하위는 5%의 신망도에 그친 부동산 중개업자이고, 배우(9%)·은행원(10%)·회계사(11%)·연예인(12%)·주식브로커(12%)·언론인(13%)·노조지도자(13%)·기업사장(14%)·운동선수(16%)였다.
한편 신망 받는 상위 10개 직종은 소방관이 61%로 가장 높은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다음으로 과학자(54%)·교사(54%)·의사(52%)·군인(52%)·간호사(50%)·경찰관(46%)·성직자(42%)·농부(41%)·엔지니어(30%)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방관과 군인·의료인이 상위 10위내에 있는 것이 눈이 띈다.
화재 현장에서 화염 속에 갇힌 사람을 구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 무슨 병인지도 모르는 환자를 제일 먼저 대하고 진단 후에도 환자 곁을 지키며 치료에 임하는 의료인들, 전쟁터에서 적의 병력과 화력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지만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달려가는 군인들, 이들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 오는 직종들이다. 이타주의 정신과 소명의식·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자신의 직종을 수행하면서 때로 자신을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 직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중세시대에 흑사병이 돌 때 시민들 사이에 알려진 격언이 있다. 전염병이 돌면 '빨리 떠나라. 멀리 떠나라.
그리고 천천히 돌아와라.' 하지만 이런 격언은 이들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위험을 피해 멀리 도망가지만 이들은 위험 속을 향해 달려간다.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이슬람 과격 단체의 테러가 있었을 때 무너지는 건물로 뛰어 들어가 많은 생명을 구하고 죽음을 맞은 343명의 소방관과 6.25 전쟁 중 조국을 지키기 위해 소총으로 탱크에 맞서며 싸운 선열들 그리고 2015년 초여름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난 간 메르스의 위험 속에서 환자를 지켜온 의사와 간호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특히 무더운 날씨에 보호구를 착용하고 코호트 격리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환자를 돌봐 온 간호사와 의사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다. 소방관이나 의료인·군인들이 존경받고 신뢰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전쟁터로 나가거나 불 속에 뛰어들거나 전염성이 강한 심각한 환자를 돌아볼 때에 자신의 이익을 생각지 않는다. 자신의 생명과 지위보다 위기에 처한 사람과 환자의 생명을 먼저 생각한다.
1958년 스모키 린이란 소방관이 화염 속에서 구출하지 못해 숨을 거둔 아이를 품에 안고 슬픔에 잠겨 지은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글이 생각난다.
"하나님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 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언제나 만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장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게 하소서.
제 사명을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의 뜻에 따라 제가 목숨을 잃게 된다면 당신의 은총으로 제 아이들과 아내를 돌보아 주소서." 아마도 의사들의 마음을 가장 잘 설명해 놓은 글이 아닐까한다.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뒤로 한 채 위험에 불구하고 반대방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이들은 존경과 찬사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고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