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법인 정관에 '의료업 목적' 없어...37억원 환수 정당
서울행정법원 제13부 "비영리법인이 의사 명의 빌려 병원 개설해서야"
비영리법인은 의료법에 따라 병원을 개설할 수 있지만 정관에 '의료업'을 목적사업으로 명시하지 않은 경우 개설 허가 요건을 갖추지 못한만큼 요양급여 환수가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비영리법인이라도 사무장병원 형태로 운영하면 불법이라는 것.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반정우)는 최근 원고 A와 B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 청구(2014구합5757171)를 기각했다.
원고 A는 2008∼2009년, B는 2011∼2013년까지 자신의 명의로 C노인전문병원을 개설, 진료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원고들이 D복지재단에 명의를 대여, 요양급여비용을 부당하게 지급받았다며 원고 A에게 15억 3340만 원을, 원고 B에게 21억 9275만 원 등 총 37억 2615만 원을 환수처분했다.
원고들은 재단에 명의를 대여하지 않았고, 재단은 비영리법인이어서 의료기관 개설자가 될 수 있으므로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D재단 대표자인 E가 재무와 인사를 관리했고, 병원 건물은 E와 아들이 소유주이며, 병원 홈페이지에 D재단이 개설·운영한다는 내용이 게재돼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와 함께 원고들이 월 500만 원을 받아 의료행위를 했을 뿐 재무·인사에 관여하자 않은 점, 병원 관리부장이 경찰 조사에서 병원 회계와 월급을 E의 지시를 받아 처리했다고 진술한 점, 원고 B가 자신은 환자 진료만 전단하고, 병원 관리·운영은 D복지재단에서 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작성한 점, D재단 및 대표자 E가 2015년 8월 12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시도시자의 허가를 받지 않고 C병원을 개설해 의료법 위반으로 벌금을 선고받은 점 등을 들어 "원고들은 D재단에 고용된 후 자신의 명의로 병원을 개설해 줌으로써 명의를 대여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C병원을 개설할 때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지 않아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으로 볼 수 없으므로 건보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을 수 없고, 재단에 명의를 대여해 병원을 개설하는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은 것은 구 국민건강보험법의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라 설립된 사회복지법인은 비영리 의료법인으로 의료법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있지만 이 경우에도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D재단은 병원을 개설할 당시 서울시장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면서 "법인은 정관으로 정한 목적의 범위 밖의 사업은 할 수 없는데 D재단은 정관에서 의료업을 목적사업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병원 개설 허가 요건을 구비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있는 비영리법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있는 의사로부터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비영리법인이 설립목적과 달리 영리 목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할 위험이 있고, 비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에 대한 법적 규제가 의미없게 될 우려가 있다"며 요양급여환수 처분취소 청구를 기각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김준래 변호사(국민건강보험공단 법무지원실 선임전문위원)는 "지금까지 비의료인이 의료인을 고용(사무장병원)하거나, 의료인이 의료인을 고용(네트워크병원)한 경우 의료법 위반이며, 건보공단의 부당이득징수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며 "이번 판결은 비영리법인이 실질적인 의료기관 운영자이면서, 형식적으로 의료인을 명의를 대여해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최초의 판결"이라고 평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의료기관 개설·운영 질서를 확립하고, 현행법령을 탈피해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위법한 의료기관은 더욱 발붙일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