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혈압·빈맥 땐 출혈 가능성...주의의무 위반 9559만원 배상
수술 어려운 지역응급의료기관 현실 감안...책임 20% 제한
음주 측정을 거부하며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검사 시간이 지연된 교통사고 환자가 복강내 출혈로 사망한 사고에 대해 고등법원이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을 일부 인정, 20% 배상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교통사고로 복강내 출혈로 사망한 A씨의 부모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2014나 11460)에서 1심 패소판결을 취소하고, B병원에 대해 사망자 부모에게 9559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심에서는 A씨가 B병원에 도착했을 때 별다른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고, 복부 손상을 의심할만한 다른 증상이 나타났다고 볼 자료가 없으며, 경찰의 음주측정에 불응하면서 의료행위를 원활하게 시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 진료 과정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A씨 부모가 제기한 4억 3072만원대 배상 청구도 모두 기각했다.
A씨는 지난 2010년 1월 23일 19시 25분 경 술에 취한 상태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다 굴삭기 뒷범퍼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내 119를 통해 B병원으로 후송됐다.
19시 52분경 B병원에 도착한 A씨는 술에 많이 취한 상태였고, 안면부 다발성 찰과상·눈썹 부위 열상을 제외하고 별다른 외상이 없었으며, 촉진시 별다른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활력징후를 측정한 결과, 혈압 80/50㎜Hg, 맥박 분당 113회로 나타나자 20시 13분경 머리 CT 촬영을 했다.
당시 A씨는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에 불응하면서 상당한 시간 동안 실랑이를 하다 보호자가 병원에 도착한 후에야 채혈에 응했으며, 21시 01분경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활력징후를 다시 측정하고, 수액과 승압제를 투여했다. 당시 혈압 80/50㎜Hg, 맥박 분당 113회로 나타나자 B병원 의료진은 21시 11분경 복부CT를 촬영하고, 21시 29분 경 혈액검사를, 2시 48분경 간효소수치 혈액검사를 실시했다.
B병원 의료진은 복부CT 영상 판독을 통해 장파열 및 혈복강 가능성을 판단했다. 하지만 외과 전문의가 이미 퇴근한 상태였으므로 응급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키로 결정, 22시 15분 이후 C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
A환자는 22시 49분경 C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으나 맥박이 측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곧바로 심장마사지를 실시해 22시 51분경 맥박이 감지됐으며, 23시 35분경 혈압 82/41㎜Hg, 맥박 126회로 회복됐다.
1월 24일 00시 32분경 C대학병원 의료진은 부친에게 수술의 필요성을 설명했으나 거부했고, 이후 두 차례 수술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03시 34분경 도착한 A의 모친 역시 의사가 수술의 필요성을 설명했으나 수술을 거부했다. A씨는 중환자실에 있다가 사망이 임박하자 14시 50분 경 B병원으로 이송, 15시 5분경 사망했다.
A씨의 부모는 B병원 의료진이 복강내 출혈 검사와 경과관찰을 게을리했으며, 응급개복술을 하지 않았고, 전원 지연과 전원상 과실, 설명의무 위반 등을 지적하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고법은 교통사고에 의한 외상 환자에게 저혈압과 빈맥이 나타날 경우 흉강·복강·골반강내 출혈을 의심하고, 신속히 초음파·방사선·CT 검사 등을 통해 출혈 여부를 확인해야 함에도 병원 도착 후 1시간 이상이 지나서야 혈액검사와 복강내 출혈 확인을 위한 흉부CT 촬영을 시행한 것은 경과관찰을 게을리 한 과실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응급개복술을 미시행한 과실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응급수술을 시행할 여건이 되지 않았고, 수술 난이도에 따라 상급병원으로 전원이 필요할 수 있는 점을 감안, 과실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원 지연에 대해서도 과실로 인정하지 안았다.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응급수술과 전원이 필요한 상태임을 설명한 사실을 인정하고 A환자 부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음주상태로 인해 정확하게 상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복강은 여분의 공간이 많아 상당한 실혈이 있어도 알기 어려워 지연진단 가능성이 있으며, 복부 CT 판독 후 바로 상급병원으로 정원한 점, 부친이 수술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사이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점, 지역응급의료기관의 인적·물적 의료설비가 부족한 점 등을 감안, 병원의 책임을 20%로 제한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한 부담 원칙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