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사고로 인한 손해배상과 보험자 구상권 놓고 법리 논쟁
대한의료법학회·법원의료법분야연구회 추계학술대회
의료법 위반 사항을 행정 제재가 아닌 국민건강보험법을 적용해 비용을 환수하는 것은 법률의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동필 변호사(법무법인 의성)는 21일 성균관대 법학관에서 열린 대한의료법학회·법원의료법분야연구회 추계 공동학술대회에서 '의료법 위반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대한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에 관한 주제발표를 통해 안과의사 출장 진료 사건을 예로 들며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하지 않고, 오로지 개설지를 벗어난 의료행위와 직접 진찰하지 않은 의사 명의로 처방전을 발행한 행위를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85조 제1항 제1호의 '부당한 방법'에 포함해 공단이 지급할 의무가 없는 요양급여비용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의료법을 위반한 모든 행위가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부당한 방법'에 포섭된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국민건강보험법은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운용에 필요한 사항을 규율하기 위한 법이고, 의료인의 의료법 위반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의료관련 법령을 위반해 요양급여를 제공하는 일체의 행위를 '부당한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이런 논리라면 화재예방설비를 갖추지 않아 소방기본법을 위반한 병원에서 공단에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는 것을 비롯해 실정법 위반을 한 경우에도 모두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케 해 보험재정을 잠탈하는 것으로 확대해석해 모조리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환자가 진료를 요청하는 경우 요양급여를 행할 국민건강보험법상 의무자는 공단이므로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가 요양급여기준에 적합한 요양급여가 이뤄졌다면 결국 공단은 요양급여행위에서의 법 위반 여부를 떠나 손해가 없게 된다"고 설명한 이 변호사는 "이를 간과하고 오로지 공단이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했다는 측면만을 평가해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것은 민법 제750조의 해석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마련한 의료법이나 국민건강보험법을 위반한 행위라면 그 법에 따라 처벌을 하고, 환수를 해야지 완전하지 못한 법 때문에 환수가 어렵다면 입법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민법 제750조를 무리하게 확대 해석해 행정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준래 국민건강보험공단 선임전문연구위원(변호사)은 "발제문에서는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를 실시할 의무 내지 채무가 공단에 있다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건보법 해석상 다시 검토해야 할 부분"이라며 "공단이 수행하는 업무는 보험급여의 관리이지, 보험급여의 업무가 아니다"고 밝혀 공단의 보험자 역할 논쟁을 촉발했다.
"공단·요양기관·보험가입자의 삼각관계는 공법관계와 사법관계가 혼재돼 있는 특수한 법률관계"라고 규정한 김 연구위원은 "보험가입자들이 공단에 대해 직접 현물급여를 청구할 권리 내지 공단의 현물급여채무가 존재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다만 요양비 또는 부가급여의 청구를 받으면 지체없이 현금급여를 지급해야 할 채무가 존재할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인신사고로 인한 손해배상과 보험자의 구상권'에 대해 발표한 노태헌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구상권 행사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기존 판례 법리가 국민건강보험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보험급여 성격이 다름에도 청구권대위(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자가 보험사고를 유발한 제3자에 대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권리를 취득하는 것)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노 판사는 "상해보험이나 질병보험 등 보장비율을 정한 일부 보험에서 상대설에 따라 청구권대위의 범위를 명확히 정한 경우 외에는 모두 차액설에 따라 청구권대위 범위가 결정된다"면서 "대법원(2013년 9월 12일 선고. 2012다27643) 판결에서는 보장한도를 정한 일부 보험의 경우 차액설에 따라 구성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했음에도 손해보험보다 구상범위가 더 엄격히 제한되는 인보험에서 절대설을 따르는 판례(대법원 2013년 4월 25일 선고. 2011다94981)가 선고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청구권 이전에 따른 청구권대위의 법리와 손익상계의 법리를 혼동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공단의 구상권에 대해서도 "국민건강보험은 피보험자에게 요양급여비용 중 일부 비율을 부담하게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보상비율을 정한 상해보험의 성격을 갖는다"며 "따라서 상대설에 따라 구상범위를 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노 판사는 "의료보험 통합이 이뤄지기 전 의료보험법에서는 '보험급여를 받을 자가 제3자로부터 이미 손해배생을 받은 때에는 그 배상액의 한도내에서 보험급여를 하지 않는다'고 규정해 모순점이 없었으나 의료보험 통합으로 제정된 건보법 제58조 2항에서는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으로 규정하면서 모순적인 규정이 됐다"며 "건보법 제58조 2항은 한정적인 경우만을 규율하는 것이고, 보험급여가 이뤄지기 전에 손해배상이 이뤄진 경우에는 입법 공백이 생긴다"고 문제점을 들춰냈다.
이와함께 "건보법 제58조 1항에서 '보험급여'를 '요양급여'의 의미로 사용하고, '요양급여비용'은 '급여에 들어간 비용'으로 용어를 명확히 사용하고 있음에도 제2항에서 '보험급여'의 의미를 '요양급여비용'으로 해석하는 것은 합리적인 법률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요양급여비용은 피보험자가 아닌 요양기관에 지급하는 것임에도 피보험자가 손해배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공단이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의무를 면한다면 손해배생을 받은 피보험자가 아니라 요양기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결과가 된다"고 밝힌 노 판사는 "건보법 제58조 1항의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은 제3자의 손해배상 전에 이미 보험급여를 받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급여를 받는자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보험급여에 앞서 손해배상이 이뤄진 경우에는 배상액의 한도 내에서는 보험급여를 하지 않고(비급여로 진료하고), 배상액의 한도를 넘어서는 경우에만 보험급여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노 판사는 "절대설을 취한 판례 법리는 국민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우선시하고, 구성범위를 명시적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중시한 나머지 건보법 제58조 1항과 2항을 통일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이므로 변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