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서울 금천·명이비인후과의원/전 의료윤리연구회장)
얼마전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히딩크 감독이 대한의사협회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지팡이를 짚고 그라운드에 힘들게 걸어 나오던 히딩크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무릎수술을 받고 호전된 후, 한국의료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고마움을 갖게 된 것이 명예홍보 대사직 수락 배경이 됐다고 한다.
한국의료의 수준이 인정돼 기쁘고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희소식과 함께 히딩크 감독이 알면 기겁을 할 시술이 있다는 황당하고 우울한 소식도 있었다.
혈액투석 환자에게나 할 시술을 정상인에게 혈액정화라는 명목으로 400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금액으로 시행하는 진료기관이 있다는 보도였다.
이들은 혈액정화요법을 통해 혈액 속에 있는 콜레스테롤·동맥경화 유발 물질·노화물질·이상면역물질·각종 바이러스·중금속 등 해로운 노폐물을 걸러내는 요법이라고 소개하며, 혈액정화의 효능·효과로는 뇌졸중 치료 및 예방, 심근경색 치료 및 예방, 혈관성 치매 개선 및 예방, 혈액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짐, 활성산소 농도가 감소, 당뇨병에 의한 합병증 치료 및 예방, 시력이 좋아지고 망막 질환 개선, 발기부전 및 성기능 개선, 콜레스테롤 농도 감소, 천식·아토피·알레르기 개선 등을 제시했다. 정말 황당한 시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윤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위는 해야만 하는 것(obligatory), 해서는 안 되는 것(forbidden), 허용 가능한 것(permissible)으로 나누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는 진료를 크게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해 보면 우리의 진료 행위가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쉬울 것 같다.
진료를 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진료(obligatory to treat)와 진료를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기 때문에 금지된 진료(obligatory not to treat)가 있다.
이 두 부류의 치료는 의사로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의무적인 진료의 형태이다. 세 번째 부류로의 진료들은 그 진료는 해도 그만이고 하지 않아도 무방한 중립적인 진료(neutral)와 그 진료는 하지 않아도(혹은 해도) 무방하나, 하면(혹은 하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칭찬을 받는 의무 이상의 진료(supererogatory)로 선택적인 진료(optional to treat)의 부류에 속한다.
해야만 하는 진료를 하지 않았을 때와 해서는 안 되는 치료를 함으로써 환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악행금지의 원칙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의사로서 지식습득을 게을리 해 꼭 해야만 하는 시술이나 처방을 하지 않는 것은 악행이 된다. 또 윤리적 감각이 둔해져서 영리를 목적으로 자의적으로 의료시술의 기준을 설정해 무분별한 진료를 하거나, 금기사항을 무시한 채 처방을 하거나 시술을 하는 것 역시 악행에 속한다.
의사가 하는 행위는 다 의술로 착각하고 있는 동료도 있다. 수면마취약인 프로포폴을 수면마취가 아닌 상황에 처방을 한 진료행위와 노상구걸을 하는 사람에게 한 번에 600알이 넘는 마약성 약물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처방한 행위, 그리고 자신의 인센티브를 높이기 위해 고가의 검사를 무리하게 시행하는 일부 대형병원의 진료행태는 어디에 속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행위들은 다 악행에 속한다.
의사가 하는 모든 행위가 의료행위가 될 수 없으며, 그 행위가 치료적용대상과 범위을 벗어났다면 비윤리적이라고 한다.
이런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전문가 단체의 전문성과 전문직 윤리가 필요한 것이다. 만약 이런 황당한 시술을 자신의 자녀나 가족에게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모든 치료와 검사에는 목적과 효과, 시술방법의 안정성, 적용범위(indication), 이해상충(COI)의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사례는 의사단체가 적극적으로 적발하고 고발해야 한다. 이런 치료가 이뤄진다는 것을 히딩크가 안다면 아마 기겁을 하고 도망을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