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결산] ① 18대 폐기된 원격의료법 또 상정
의료인 폭행방지, 저수가 개선 등 의원들 '공감'
정의화·안홍준·박인숙·문정림·신의진·김용익 의원 등 역대 가장 많은 의사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한 19대 국회의 회기가 5월 29일 만료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대 국회는 특히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용익 의원 등 의사 출신 의원들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결과 그동안 의료계를 옥죄던 의료법 등 많은 보건의료 관련 법안들이 개선됐다. 물론, 여론에 편승한 포퓰리즘에 의해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의료인의 전문성을 침해하는 법안도 제·개정돼 의료계의 상처로 남았다. 본지는 19대 국회 회기 만료에 즈음해, 19대 국회 전·후반기를 보건의료 관련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 활동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다가오는 20대 국회를 전망해봤다<편집자 주>. |
의사 출신 문정림·신의진·김용익·안철수 의원 보건복지위 선택
문 의원은 당선 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을 지낸 인물로, 그 누구보다도 보건의료현안에 대한 의협의 입장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기대를 받았지만, 김용익 의원은 의료계가 수차례 파업까지 하면서 반대한 의약분업의 정책입안자라는 점에서 우려를 샀다.
신의진 의원은 잔혹한 성범죄 피해 아동의 주치의로서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의료계에 대한 대국민 신뢰를 높일 인물로 주목받았다. 재보선에 당선돼 뒤늦게 보건복지위원회에 입성한 안철수 의원은 주거와 교육, 보육, 건강, 노후 등 민생 기본영역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된 불안을 최소화하겠다고 선언했고,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면서 의료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들 의사 출신 의원 4명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보건의료계는 물론 각종 사회·정치적 이슈에 깊게 관여하며 활발한 행보를 펼쳤다.
18대 폐기됐던 원격의료 법안 재추진
그러나 의료계에 19대 국회는 시작부터 난국이었다. 7월 보건복지위원회가 구성되자마자 보건복지부가 18대 국회에서 폐기됐던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과 의료기기 중 일부를 이·미용기기로 분리, 미용업소에서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건강관리서비스를 일반인에게 허용하는 건강관리서비스법 등을 재추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응급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 시도 역시 의료계를 긴장시켰다.
9월에는 새누리당 안효대 의원에 의해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진료를 제한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의료법의 의료인의 결격사유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위반한 경우를 추가해 면허를 규제하자는 것이 골자였다.
첫 국감 통해 본 의료계 현실은 '씁쓸'
겨우 상황이 정리되고 재개된 국감에서는 의료계의 씁쓸한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회적으로 팽배한 의사가 기득권층이라는 인식은 국감을 통해 깨졌다. 기득권은 고사하고 국민으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의사 출신 국회의원들에 의해 적나라하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현지조사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현지확인·수진자조회 방식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 제기는 수용되지 않았고, 국감마다 단골메뉴로 나오는 과잉진료와 비급여진료 때리기도 여전했다.
의료인 폭행방지법, 논의 본격화
2012년 말 진료실 폭행 사고가 연이어 발생,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국회 차원에서 의료인 폭행을 엄단하기 위한 입법활동이 활발히 일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이학영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으로 활동하던 2012년 말 의료인 폭행을 진료방해 행위로 규정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의사들이 안전해야 환자들도 안전한 환경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해당 법안은 2013년 말 법안소위 통과 목전까지 갔으나 시민사회의 반대로 아직 국회에 발이 묶였다. 이후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도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추가로 발의했다. 국회 내부에서도 법 개정 취지에 동의하는 여론이 컸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은 결국, 지난 5월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내용은 의료행위 중인 의료인이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폭행·협박을 하는 경우 처벌하는 내용으로 수정됐다.
해당 법안에 따라, 앞으로는 진료실 내부는 물론 진료실 밖에서도 의료행위가 시행되는 공간이라는 전제하에 폭행이 발생한 경우에는 의료기관 내 장소의 구분 없이 같은 처벌을 한다. 다만,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반의사불벌' 규정이 포함됐다.
특히, 법의 보호를 받는 대상을 애초 법안의 '의료인'에서 '의료행위를 행하는 의료인과 의료기사, 간호조무사 등 의료종사자'와 '진료를 받는 사람(환자)'으로 확대하고, 처벌규정은 ▲의료용 시설·기재·약품 등 기물파괴·손상 ▲의료기관 점거행위 등에 '5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했다.
진주의료원 폐업...'저수가' 공론화 계기돼
2013년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을 선언하면서, 의료계 안팎에 큰 파문이 일었다.
야당은 경상남도가 공공의료 포기를 선언했다며 경상남도와 정부에 맹공을 퍼부었고,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연일 여야공방이 이어졌다. 이후 국회 차원에서 국정조사를 벌이고 공공의료 정상화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기도 했지만, 진주의료원은 재개원 되지 못했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의료계 내부의 해묵은 과제인 저수가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의료계를 기득권층으로만 보던 시민단체와 야권이 현행 수가로는 의료기관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데 공감하고, 수가 개선 목소리를 냈다. 이 과정에서 공공병원의 적자는 '착한 적자'라는 유행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상반기 말...원격의료 갈등 '폭발'
보건복지부 등 정부는 안정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원격의료는 국민건강을 볼모로 한 거대한 실험에 불과하다는 의료계와 시민사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도 시행을 강행하면서 의료계는 또다시 총파업을 결정하고야 말았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정부, 공급자·시민사회를 대신해 여야 간 대리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원격의료 도입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해당 법안은 국회 차원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19대 국회 회기가 만료되면서 자동으로 폐기됐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의료계가 주창해왔던 관치의료의 문제를 시민사회와 야권이 함께 고민하게 되는 기회가 마련됐으며, 국민 의료비 증가와 대형의료기관으로의 환자쏠림 현상 등 잠재적으로 의료영리화를 부추기는 의료제도와 정책 시행은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소득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등 정부는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 개정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 등 의료계는 물론, 야권과 시민사회계가 반대하는 법안들을 20대 국회에서 재상정해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이에 따른 갈등은 20대 국회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