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치과의사가 코골이 시술까지 하는데..."

"지금도 치과의사가 코골이 시술까지 하는데..."

  • 이석영 기자 leeseokyoung@gmail.com
  • 승인 2016.08.2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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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서 치과의사 보톡스·레이저시술 우려 '봇물'
법조계도 "치과의사 보톡스 대법 판결 '의문'" 지적

▲ 24일 가톨릭대학교 의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열린 '치과진료영역에서 주름살 시술을 포함시킨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사회적 파장 논의를 위한 토론회'. ⓒ의협신문 김선경
보톡스 시술이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치과의사에게도 허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법조계 지적이 나왔다.

박지용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4일 가톨릭대학교 의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열린 '치과진료영역에 주름살 시술을 포함시킨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사회적 파장 논의를 위한 토론회'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위험한 행위'"라며 "의료는 시민의 건강과 삶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한 사회적·역사적 승인에 따라 이를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거쳐 자격을 승인받은 자에게 전담시켜야 한다는 입법적 결단이 의료인 면허제도로 귀결된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무면허의료행위에 대한 법적 판단은 경제적 자유에 대한 제한이라는 측면과 소비자·환자의 보호라는 측면을 규범조화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대법원 판결은 소비자 시호보다는 경제적 자유를 우선시킨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법원이 핵심 논거로 사용하고 있는 '위험성' 기준에 대해 의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치과의사의 안면에 대한 보톡스 시술이 의사의 동일한 의료행위와 비교해 사람의 생명·신체나 일반 공중위생에 더 큰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라고 판시했다.

▲ 박지용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의협신문 김선경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공중보건적 위험성은 수평적 의료인의 면허 범위를 설정할 때 부수적인 논거로는 작용할 수는 있어도 핵심적 논거로 작용할 수는 없다"면서 "위험성 기준이 면허 범위를 설정의 결정적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은, 예를 들어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행위라고 해서 의사가 특정한 한의학적 처방을 할 수 없는 것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법원 판결이 '법해석'이라는 사법부의 역할을 뛰어넘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해석이 정치·정책·현실에 종속됐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사회현실에 대한 경험적·사회과학적 기초가 결여돼 있거나 사회적 통념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법해석은 행위규범이나 재판규범으로 온전히 기능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과점은 지난 대법원 판결의 소수의견에서도 지적됐었다. 당시 일부 대법관들은 "(치과의사에게 보톡스 시술을 허용하는 것은)의료법 해석의 범위를 넘는 것으로서 입법적 조치와 마찬가지"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치과의사 프락셀레이저 시술 사건에 대한 우려도 집중 제기됐다. 보톡스 시술에 이어 피부레이저 시술까지 치과의사에게 허용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내려질 경우 의료 왜곡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찬우 대한피부과의사회 기획정책이사는 "현재 일선 치과에서는 쌍꺼풀 수술과 눈밑지방제거 등 눈주위 노화 치료 수술, 코성형 수술, 여드름 치료, 피부 레이저 치료, 안면부 이외의 겨드랑이나 비키니 라인 제모, 몸매 교정은 물론, 모발이식술까지 시행한다는 광고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시행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형태의 학술세미나도 성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이사는 "현장에선 이비인후과 영역인 코골이 시술까지 진행되고 있다. 만약 안면부에 대한 피부 레이저 시술이 허용된다면 치과의사들이 본연의 치과 진료는 소홀히 한 채, 피부진료라는 치의학의 비전문적인 영역에 몰리게 됨으로써 의료체계의 왜곡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락셀 레이저 시술을 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의학 전문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단편적인 교육만 받고 시술할 경우 환자 피해가 예상된다는 우려다.

▲ 김원석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의협신문 김선경
김원석 성균관의대 피부과 교수는 "얼굴에 레이저를 시술하는 것은 미적인 개선효과를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침습을 가하는 것이므로, 이때 요구되는 피부 관련 지식은 훨씬 수준이 높다"면서 "피부는 단순한 '외피'가 아니라 다양한 생화학적 및 면역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하나의 기관이다. 정상과 비정상적인 상태에 따라 같은 자극을 주더라도 다른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레이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아토피피부염, 주사, 건선, 백반증, 지루피부염, 과민성피부증후군 등은 피부의 성질이 취약해 각종 레이저 치료 시 주의가 필요하다. 이들 질환은 얼굴에 증상이 없을 수도 있고, 있더라도 경미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적절한 지식이 없을 경우 피부 악성 종양은 다양한 피부 색소질환이나 피부 양성 종양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김 교수는 "악성 종양은 초기 대응이 적절하지 않을 경우 치료가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환자는 시간적·경제적으로 많은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며 "이밖에 다양한 피부 성질과 당뇨나 결체조직질환 등 전신 질환 유무를 파악하지 못한 채 레이저 시술을 할 경우 부작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찬우 이사는 "최근 5년 사이 우리나라 피부암 환자 숫자가 5배나 증가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직역 간의 영역 갈등을 일일이 소송으로 해결하기 보다 공적 면허관리 기구에서 합의에 따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철중 조선일보 기자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 처럼 면허국을 둬서 상호간 직무영역을 규정하는 타협의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지금처럼 전문가 영역이 사법적 영역에 종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의료 소비자는 누가 어떤 치료를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주열 녹색건강연대 대표는 "소비자 관점에서는 대법원의 치과의사 보톡스 시술 허용 판결을 존중한다. 다만 정부와 국회가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각 사안별 가이드라인 수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점과 피부암은 외견상 구분하기 어려워 전문 교육을 받은 피부과전문의 진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대표는 "대법 판결은 치과의사 입장에선 새 길을 열어준 것으로 볼 수 있겠으나, 소비자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소비자가 길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그 길은 곧 사라질 것"이라고 말해 영역간 갈등은 소비자 선택에 따라 정리될 것으로 전망했다.

토론회에 앞서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은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면허의 종류를 구분해 각각 임무를 달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치과의사는 치아와 관련된 진료와 함께 구강보건을 임무로 하고 있다"며 "국민 또한 치과의사는 구강을 벗어난 신체 범위에 대해 치과의사는 진료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이 토론회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또 "대법원 판결이 비록 치과의사의 안면부 시술을 전면 허용한다는 취지는 아니지만, 판결 그 자체만으로 자칫 실제의료현장에서 면허에 따른 의료행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현행 의료법의 근간마저 송두리째 흔들어 버릴 소지가 많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협은 치과의사 프락셀레이저 시술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전국 회원 1만2594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 23일 대법원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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