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결함 때문인가 의-한 이원체계가 문제인가
이용민 소장 "한의학, 현대의학 아류 자청 안돼"
고려대 법학연구원 보건의료법정책연구센터는 1일 프레스센터에서 '현대 의료기기의 사용과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주제로 제2회 HeLP헬스케어 콜로키엄을 열어 이원적 의료체계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집중 조명했다.
주제발제를 맡은 명순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행정법원의 엑스선 골밀도 측정기 판결(2015구합68789)에 대한 평석을 통해 "엑스선 골밀도측정기를 이용해 성장판 검사를 한 A한의사의 청구를 기각한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면허범위와 관련해 과거의 판례이론을 답습했다"면서 "한의사의 면허범위에 대한 법원의 입장이 변화가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명 교수는 "연구대상 판결은 진단용방사선 발생장치에 관한 규정 체계를 근거로 금지 법령의 유무를 중심을 뒀다"면서 "엑스선 골밀도 측정기기를 사용해 성장판 검사를 한 것은 해부학적으로 뼈의 성장판 상태를 확인해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를 진단하기 위한 것이어서 한의학적 진단방법이 사용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대해 명 교수는 "2011년 이후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판시한 점들이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있으나 그러한 점들을 고려한다 해도 관련 법규의 체계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로 해석된다는 점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명 교수는 뇌파계를 파킨슨병·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는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서울고등법원 (2013누50878 2016년 8월 19일 선고) 판결을 예로 들며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을 금지하는 어떠한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면서 이와 대조되는 기기로 영상의학과에서 취급하는 기기를 언급했다"면서 금지법령의 유무에 근거해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는 점에 무게를 실었다.
"면허범위에 대한 추상적 기준을 설정하지 않은 현행법에서 직역간 분쟁은 당연한 것"이라고 밝힌 명 교수는 치과의사의 보톡스 시술과 프락셀 레이저 시술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예로 들며 "의료기술의 발전과 시대 상황의 변화,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자의 인식과 필요는 전통적인 의료행위, 치과의료행위, 한방의료행위 개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명 교수는 "의사와 한의사의 이원적 면허체계를 유지하면서 각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법해석의 문제로 돌린 것은 입법부가 입법사항에 관한 문제를 회피한 것으로 볼 여지도 없지 않지만 이원적 의료체계가 문제인 것이지 의료행위를 의료법에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것을 입법상의 불비로 보긴 어렵다"면서 "의료행위는 변화하고, 가변적인 것이므로 의료법에 의사·한의사의 면허범위를 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의료인의 면허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지정토론을 펼친 이용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한의사의 면허범위를 둘러싼 판결에는 커다란 원칙이 있다"면서 "의사와 한의사는 학문적 체계와 원리가 다르고, 의료기사법이나 특수의료장비 설치에 관한 기준 등 다른 법규에 의해 간접적으로 규제를 하고 있는지 등에 근거해 법률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소장은 대한한의사협회장이 공개석상에서 초음파 골밀도검사를 하고 20대 젊은이를 골다골증 내지 골감소증으로 판단해 골수보충제 처방을 한 사례를 예로 들며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경우 오진의 위험성과 국민보건에 어떻게 위해를 끼치는지를 직접 보여줬다"면서 "한의약 육성법에서 규정했듯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한의학을 발전시키지는 않고, 현대의학의 아류를 자청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김태호 대한한의사협회 약무이사는 "보건의료기본법에는 보건의료인이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책임과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며 "한의사도 보건의료인으로서 책임과 양심에 따라 보건의료 재료와 기술을 선택해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해 정확한 진단을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없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인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를 사용해 진단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며 "최근 뇌파계 판결에서 처럼 한방 의료행위에서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보건의료기본법과 의료법의 목적에 부합하고, 시대 변화와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계룡 법무법인 이인 대표변호사는 "2012년 한의약 육성법 개정을 계기로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행위'에서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로 한방 의료행위의 범위를 넓힌 것으로 봐야 한다"며 "법원도 과학적 의료기기라도 한방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거나, 각색한 의료기기를 한방의료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호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의사는 의학적 원리에 따라, 한의사는 한의학적 원리에 따라 의료행위를 해야 하고, 학문적 원리를 벗어나면 무면허의료행위가 된다"면서도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할 수 있으면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환자에게 위험이 없어야 하고, 위험관리를 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했는지에 따라 사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정부에서 제도적으로 협진에 대해 파격적인 수가를 제공하고, 단계적으로 진료·교육·면허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며 "양쪽이 나뉘어서 분쟁만 하다간 국제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언제까지 성명서를 발표하며 보낼 것이냐?"고 반문한 신 논설위원은 "이대로 가다간 후배들이 다 죽는다.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정확하고, 과학적인 진단과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대한민국 의료를 국제적으로 한단계 끌어올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좌장을 맡은 강윤구 보건의료법정책연구센터 소장은 "최근 들어 의료현장에서 한의사와 치과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비롯한 의료직역간 진료행위 다툼이 법적 쟁송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의료법이 규정한 의료인의 면허범위에 대한 해석과 법정책에 관한 논의와 토론의 장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콜로키엄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강 소장은 "법률적으로 의료행위를 정의 하거나, 정부가 명확하게 면허 범위를 구획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의료는 구체적이고 전문적이고 특수한 성격이 있는데 사법부 판단에 맡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콜로키엄에는 추무진 의협회장·김필건 한의협 회장·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김록권 의협 상근부회장·이필수 전남의사회장·김필수 병협 법제이사 등이 참석, 의료인의 면허범위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이원적 의료체계로 인해 늘어나는 국민 의료비를 누가 책임을 지고 감당할 것인지 걱정"이라며 "의료를 이원화 시킨 것이 가장 큰 비극이자, 면허제도를 통합하지 못한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지적한 뒤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