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난자로는 연구 효율 떨어져...국내 의료발전 뒤처질 것
사실상 기증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난자 '매매'로 전락할 것
#1. 당신은 희귀난치병 환자. 난자를 활용한 체세포 복제배아줄기세포 치료제만이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생명윤리안전법상 냉동난자만 활용해야 해 치료제 개발은 요원해 보인다. 그런데 얼리지 않은 비동결난자로는 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2. 당신은 난임시술을 받는 여성. 시술을 담당하는 의료진이 난자 기증을 권유한다. 동의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런 나의 결정이 앞으로의 시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걱정되기도 한다. 더 '좋은' 난자가 시술이 아닌 연구에 쓰일까 두렵기도 하다. 의료발전 vs 생명윤리. 어느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의견은 다를 수밖에 없다. |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립의 장이 열렸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4일 2016생명윤리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동률 차의과대학 교수(의생명학과)는 '동결난자의 연구목적 사용한계와 필요성'을 발제하며 "희귀 난치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효율적인 연구를 위해 비동결난자 사용을 허가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참석한 과학계 및 의료계 관계자들은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지만 찬성한다'에 가까운 입장. 그러나 종교 및 여성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생명윤리 및 여성인권을 이유로 반대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복지부의 7년만의 조건부 연구 허용..."가장 이상적인 맞춤형 세포"
이 교수가 비동결난자의 사용을 적극 촉구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그는 전 세계에서 단 3곳만 성공한, 비동결난자를 활용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확립 경험자다. 아울러 복지부가 7년만에 조건부 허가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총 책임자이기도 하다.
앞서 7월 11일 복지부는 차의과대학이 제출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조건부 허용했다. 2009년 차병원이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허가받은 지 7년만이다. 시신경 손상 및 뇌졸중, 골연골 형성이상 등 난치성 환자의 세포치료용에 한하며, 엄격한 IRB 검토 및 연구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동률 교수는 2020년까지 5년간 연간 동결난자 100개, 비동결난자 100개를 기증받게 된다.
하지만 비동결난자의 경우 미성숙하거나 비정상적인 난자에 한한다.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연구를 위해 정상적이며 얼리지 않았으나, 폐기 예정인 비동결난자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 난자를 대상으로 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확립은 계속해서 실패를 겪다 2013년 처음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성공률이 낮아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단 3곳, 즉 차의과대학과 미국 오리콘 및 컬럼비아대학에서만 가능했다. 이것도 국내에서는 비동결난자를 사용할 수 없어 이것이 허용되는 미국 캘리포니아 차병원연구소에서 수행한 결과다.
그는 "무조건적인 이유로 연구를 막기보다는 환자치료와 의료발전을 위해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비동결난자의 오용 가능성은 관리를 잘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동결난자 사용이 연구에 효과있는 건 자명하지만...
의료계 및 과학계 인사들은 예상대로 찬성 입장을 드러냈다.
정형민 교수(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는 "예전에 비해 동결기술이 발전됐지만 오랜 기간 냉동보존된 난자를 통해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생산하는 연구는 성공사례도 전무하고, 이론적으로도 성공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며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금지하지 않는다면 비동결난자 이용을 허가하는 게 타당할 것"이라 말했다.
이어 "난자나 배아연구를 허용하는 국가에서는 난자 및 배아 종류를 제한하지 않으며, 대상하는 질환 역시 제한하지 않는다"며 "대신에 연구의 목표와 내용 및 수행방법이 생명윤리적 문제에 저촉되지 않는지, 연구의 투명성과 공개성이 확보됐는지, 해당 연구기관과 관리감독기관이 얼마나 엄정하게 감독하는지를 훨씬 중요하게 인식한다"며 다른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진 교수(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는 난자를 제공하는 기증자의 어려움과 새로운 질병치료법 발전을 이뤄야 하는 의료인의 어려움에 모두 공감하며 적합한 기준을 마련한 후 연구를 수행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현재 연구에 사용될 수 있는 비동결난자는 폐기 대상 및 수정에 실패한 비정상 난자이므로 연구를 위해서는 임신 시도에 사용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성숙한 비동결난자가 더 효율적임은 자명할 것"이라 전제했다.
다만 "최적의 난자를 채취했는데 임신 시도를 포기하고 연구용으로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의학자 입장에서 난자라는 생식세포의 대체불가능한 중요성 또한 강조할 수밖에 없다"며 "연구에 대한 세심하고도 엄격한 윤리적 토대를 정립한 후 연구목적에 대한 기준이나 난자 채취 기준 등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말은 기증이나 사실상 '난자 매매', 어떤 경우도 여성 존엄은 없어
종교계와 여성시민단체는 수용할 수 없다는 반대 의사를 강력히 전달했다.
무엇보다 비동결난자는 여성의 몸 밖에서는 24시간 밖에 살지 못해 이를 연구에 사용한다는 것은 채취와 거의 동시에 연구용으로 넘겨야 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난자 제공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무언의 압박도 고려됐다.
정재우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은 "비동결난자를 사용할 경우 난자 채취에는 체외수정의 성공 외에도 일부 난자의 연구용 사용이라는 이해관계가 덧붙여서 여성의 수단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이 문제는 여성이 동의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난자를 선택하는 건 연구진이라는 점에서 과거 황우석 사태 역시 언급됐다. 정 원장은 "어떤 난자가 체외수정에 혹은 연구에 사용될지는 시술담당자나 연구자의 선택이며 그들만이 알 것이다. 양질의 난자가 체세포 복제에 넘겨졌고, 남은 난자가 체외수정에 사용되는 일이 실제로 황우석 박사 사건에서 이미 일어났다"고 경고했다.
여성의 선택권이 사실상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시술 기관에서 난자를 연구용으로 기증하는 데 동의하도록 권유하고, 어떤 대가를 제공하며 '유도'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라며 "대가가 필요하고 취약한 여성일수록 이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 이름은 기증이나 사실상 매매가 된다"고 비판했다.
하정욱 책임연구원(서울대학교 글로벌공학교육센터) 역시 이러한 맥락을 지적했다. 그는 "비동결난자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동의절차는 시술관련 등 여러 절차와 같은 시기에 이뤄질 수밖에 없다. 환자로서 의료진에 의존해야 하는 바로 그 시점, 자신의 난자를 연구에 사용할 것을 제안받고 이에 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즉, '내가 연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난임시술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란 고민을 필연적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 연구원은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가 '맞춤형 만능 줄기세포'라고 한들 이것이 상용화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난제가 남아있으며, 상용화도 아직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며 "그럼에도 특히 '난치병 치료' 운운하며 고통받는 타인 및 공공의 선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동의를 구하는 것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가 지향하는 자율적 의사결정에 방해가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만일 비동결난자 사용이 허가돼 여성의 동의를 받더라도 그 기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때만이 충분한 정보로서의 요건이 갖춰질 것"이라 밝혔다.
복지부 "흑백논리나 이분법적 접근은 지양해야"
복지부는 서로간의 입장을 이해함으로써 절충안을 만들어나가자고 제안했다.
황의수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과장은 "정부 담당자로서 고민이 많았다. 결국 흑백논리나 이분법적인 접근이 아닌, '어느 지점에서 만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며 "생명윤리안전법 시행규칙을 만들어놓은 것도 이 지점에서 만나자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비동결난자 사용 여부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신뢰할 만한 프로토콜을 쌓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의료계 및 과학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윤리적 의식을, 생명윤리 및 종교계에서는 과학기술이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며 "서로에 대한 이해가 쌓일 때만이 중간지점에서 하나의 좋은 안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