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의료고도' 환자 다른 병원 진료 이유로 '신체기능저하군' 삭감
행정법원 "환자 상태 구체적 판단하지 않은 채 일률적 삭감 위법" 판단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3개 요양병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 삭감처분 등 취소 소송(2015구합70706)에서 2억 1291만 9800원의 삭감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요양병원 입원 환자들이 타 의료기관에서 외래진료 및 원외처방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는 이유로 2015년 1월부터 7월까지 A의료법인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 가운데 1억 2878만 3660원을 감액, 삭감 처분했다.
심평원은 B의료법인이 청구한 2015년 5∼8월 요양급여비에서도 6756만 1680원을, C의료법인이 청구한 2015년 1∼7월 요양급여비에서도 1657만 4460원을 삭감했다.
요양병원 입원환자는 행위·약제·치료재료 각 항목에 대한 상대가치점수와 점수당 단가를 곱한 금액을 요양급여비용으로 청구하는 행위별수가제를 적용하는 일반 병의원과 달리 행위·약제·치료재료를 묶어 환자 상태에 따라 의료최고도·의료고도·의료중도·문제행동군·인지장애군·의료경도·신체기능처하군으로 구분하고, 다시 일생생활능력(ADL) 수치에 따라 1일당 정액 차등수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환자 상태는 매월 담당 간호사가 의무기록을 근거로 환자의 의식상태·인지기능·신체기능·배설기능·질병진단·건강상태·구강 및 영양상태·피부상태·특수처치 및 전문재활치료 등을 평가, 환자평가표에 의해 결정하며, 환자평가표가 없는 경우에는 최하등급인 '신체기능 저하군' 수가를 적용하고 있다.
3개 요양병원은 "이 사건 환자군은 다른 의료기관에서 진료 여부가 아닌 환자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므로 심평원이 일률적으로 신체기능저하군으로 평가한 다음 심사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을 삭감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심평원은 "이 사건 환자들은 진료상 필요가 아닌 단순한 피로 회복·통원 불편 등을 이유로 입원 지시를 했으므로 신체기능저하군으로 조정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그 환자군에 해당한다는 점은 원칙적으로 요양병원이 환자평가표를 통해 증명할 책임을 진다"면서 "다만 입원 환자가 환자평가표상 의료최고도 내지 의료경도 등에 해당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다른 질병 등으로 상시 다른 병원에서 진료가 필요하거나 실질적으로 입원 치료가 아니라 요양시설 또는 으료진료를 받는 정도의 행위·약제·치료재료 제공만 필요한 경우라면 신체기능저하군으로 평가할 수 있고, 그러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점에 대해 피고(심평원)에게 증명할 책임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병원들에서 작성한 환자평가표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환자들이 입원기간 동안 다른 요양기관에서 진료를 받거나 약제를 처방받은 적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환자군에 대한 구체적인 심사 없이 일률적으로 모든 환자들을 신체기능저하군에 해당한다고 보아 삭감 처분을 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진료기록감정촉탁 담당의사와 신체감정촉탁 담당의사는 이 사건 환자들 중 일부는 환자평가표에 기재된 바와 같이 의료고도 또는 의료중도에 해당한다는 의학적 견해를 제시했다"면서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환자들이 다른 질병 등으로 상시 다른 병원에서의 진료가 필요하거나 실질적으로 입원 치료가 아니라 요양시설 또는 외래진료를 받는 정도의 행위·약제·치료재료의 제공만 필요한 경우에 해당하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해 박용우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장은 "환자의 상태보다는 다른 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요양급여비를 삭감한 데 대해 심평원에 항의하기도 하고, 공개토론을 열어 이해시키려 노력도 해 봤다"면서 "심평원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가 조심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몇 몇 요양병원장들과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일부 요양병원에서 고의적으로 환자를 다른 병원에 보내 진료받도록 하거나 보호자들이 병원 의료진 몰래 다른 병원을 방문해 진료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언급한 박 회장은 "자체적으로 개선할 점은 개선하고, 불합리한 처분에 대해서는 협회 차원에서 힘을 모아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1년 반 넘게 재판에 매달려 자료 준비하느라 여러 직원들이 제 일을 못하기도 했다"면서 "이런 불합리한 일로 인해 소송을 벌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