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이 탈모치료, 동물 대변도 치료제로 등장
한정호 교수 "한방고서 한약재 과학적 검증해야"
한방 고서에 나오는 한약재와 처방을 수백년 간 사용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것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허위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정호 충북대병원 교수(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보험이사)는 의료정책연구소가 발행한 <계간 의료정책포럼>을 통해 "동의보감에 나오는 '수은'은 탈모 치료와 피부 부스럼 치료제이고, 동물의 대변이 치료제로 등장한다"면서 "정부는 기존 한약서 10종의 한방 고서에 기재돼 있는 한약재에 대해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현대적 검증을 면제해 줬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제약회사들에까지 10종 한약서에 기재된 처방 그대로 만들면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심사를, 천연물신약 중 자료제출 의약품은 품목허가 과정에서 독성시험 자료를 면제해 주고 있다"고 밝힌 한 교수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면제한 한약·한약제제를 한의사가 개별처방하거나 제약회사에서 대량으로 생산해 국민에게 투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1990년대 초 한약재로 만든 다이어트약으로 인해 유럽에서 만성신부전으로 신장이식 환자가 늘어난 원인이 아리스톨로크산 성분 때문인 것이 알려지자 사용을 금지했다"면서 "과연 이러한 성분이 또 없을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옥시 사태를 통해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유통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피해 국민을 평생 고통에 빠지게 하는 것을 지켜봤다"고 지적한 한 교수는 "여러 동-식물과 광물이 섞여 수백 가지 성분이 혼재돼 있는 한약과 한약제제가 장단기적으로 어떤 유해성이 있는지, 위험을 감수하고 비용을 지불할 효능이 있는지를 일반인이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면서 "국가는 국민을 위험 가능성에 방치하지 말고, 제약회사와 한방병원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한약제제에 대한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해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백혈병 90% 완치 기적의 한방항암제'·'폐암 80% 이상 완치 한방방항암제'를 비롯해 약침으로 주사하는 한약까지 만연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라며 "황제내경과 동의보감에 나오는 처방을 각종 암에 효가가 있다는 주장을 언제까지 그냥 믿어야 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언급했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민족이나 전통의 이름으로 객관적 검증을 면제해 주는 것은 조상의 이름을 팔아 자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한 교수는 ""우선 대량 생산 한방제제에 대해 인전성·유효성 검증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가 지난해 4월 한국갤럽을 통해 국민 1010명을 대상으로 한약의 안전성과 약효에 대한 인식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86.5%의 응답자가 동의보감과 같은 옛 문헌에 기재돼 있으면 임상시험을 면제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옛 문헌을 이용해 한약을 새로 개발한 경우 약효와 안전성을 위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는 응답은 76.4%였다.
한 교수는 "아토피·천식을 치료하는 한방 네뷸라이저 흡입기의 경우 가습기 보다 더 강력한 폐흡입이 이뤄진다"며 "경구로 섭취하는 한약과 달리 폐로 직접 흡인하거나 혈관이나 근육에 직접 주사할 경우 인체에서 어떤 작용을 할지 전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한의원에서 처방되는 한약도 현대에서 밝혀진 암·자가면역질환 등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하려면 현대적인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통해 국민이 안심하고 한약제제와 한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한 교수는 "정부 차원의 로드맵을 갖고 한약분업 등 단계적으로 안전성을 확보하는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