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시술' 요청 미확인...원치 않은 넷째 아이 출산
고등법원 "부부결정권 우위...성인 때까지 양육비 부담" 판결
1심에서는 원치 않은 출생이라도 부모의 부양할 의무에 무게를 실어 양육비·교육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2심은 부부의 자기결정권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생명 및 탄생의 가능성 보다 우위에 있다며 불임수술 계약을 불이행한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봤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A씨 부부가 B산부인과의원장·병원의사·C화재보험사를 상대로 낸 2억 8517만 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2016나2010894)에서 만 19세에 이르기까지 양육비를 부담하라며 7147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2012년 12월 18일 셋째 아이를 제왕절개 분만했다. A씨는 수술청약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B의원 간호사에게 불임수술을 원한다는 내용을 자필로 기재하고 서명했다.
하지만 B원장과 병원의사는 수술청약서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고, B의원 간호사 등으로부터 불임수술에 대해 보고받지 못한 채 제왕절개 수술과정에서 불임수술을 시행하지 않았다.
제왕절개 수술 과정에서 불임수술을 한 것으로 안 B씨는 이후 넷째 아이를 임신, 2015년 8월 12일 D대학병원에서 제왕절개수술로 남아를 출산했다.
A씨 부부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됐다"며 진료비·수술비·산후도우미 고용비용·노동능력 상실에 따른 일실수입 손해·성년이 될 때까지 양육비 및 교육비·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등 총 2억 8517만 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C화재보험사에 대해서는 2억 8517만 원의 배상액 중 1억 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B원장은 이 사건 이전에 C화재보험사와 의료상 과실로 배생책임을 부담하게 됨으로써 입게 되는 손해를 1청구당 1억 원 한도에서 보상(병원 총 보상한도액 2억 원)하는 내용의 의사 및 병원배상보험계약을 체결했다.
1심 재판부(2015가합8935,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는 "의사는 수술청약서를 확인한 뒤 수술을 시행할 의무가 있다"며 "수술청약서를 확인하지 아니하여 불임수술을 시행하지 아니한 과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피고 병원이 원고의 불임수술 청약을 이의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의료계약이 성립됐으므로 계약 불이행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힌 1심 재판부는 "보험계약의 보험자로서 피고들과 공동하여 보험계약상의 보상한도액 범위에서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 5747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양육비 및 교육비 청구 부분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비록 원치 않은 임신에 의해 출생한 자라 할지라도 그 자의 생명권은 절대적으로 보호돼야 할 가치로서 부모의 재산상 이익에 우선해야 한다"며 "민법 제913조에서는 친권자는 자를 보호하고 교양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부모의 친권에 기한 미성년자에 대한 부양의무는 원칙적으로 이를 면제받거나 제3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원치 않은 임신에 의해 출생한 자라고 할지라도 부모는 일단 출생한 자에 대해 부양의무를 면할 수 없고, 부양의무를 손해로 파악할 수 없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원치 않은 임신에 의한 자의 출생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비등을 지출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는 원고의 손해라고 볼 수 없다"며 "그 비용이 손해임을 전제로 한 양육비와 교육비 청구는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의사가 수술청약서를 확인하지 않아 의료계약을 불이행했다며 1심과 같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양육비와 교육비 청구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며 1심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생명권의 연장선상에서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생명 및 탄생의 가능성도 보호받아 마땅하지만 부부가 행복하기 건강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 형편·가족관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적절한 가족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불임시술을 선택하는 것도 헌법이 확인하고 있는 인간의 존업과 행복추구권·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의해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불임시술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계약은 그 이행으로 인해 아직 구체화되지 아니한 인간의 생명 및 그 탄생 가능성을 봉쇄하게 된니다는 측면에서 가족계획을 실현하고자 하는 부부의 결정권과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생명 또는 생명 탄생 가능성 사이의 충돌이 불가피한 계약"이라고 지적한 재판부는 "우리 법제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인간의 생명 및 그 탄생 가능성의 보호보다는 구체화된 생명인 부부의 결정권을 우위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며 "불임시술 당사자인 부부가 계약을 불이행한 의사에 대해 그로 인해 발생하는 통상적인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불임시술 계약의 당사자인 부모가 그 계약을 불이행한 상대방으로부터 양육비 등 상당액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는다고 하여 태어난 아이의 존재 자체를 손해로 보는 것은 아니므로 존엄성이 침해된다고 볼 수 없고, 부모의 부양의무를 계약을 불이행한 의사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볼 수도 없다"며 "의사들은 불임수술 계약 불이행으로 인해 부담하게 된 양육비등 상당액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육비 산정기준표에 따른 연령별 양육비(18만 5000원∼34만 3000원)를 기준으로 불임수술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는 양육비 등의 산정 기준은 월 31만 원이라고 계산했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실시되고,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출산장려금과 양육수당 등을 지급해 영유아의 출산 및 보육을 지원하고 있는 점을 종합할 때 2015년 8월 12일부터 성년(만 19세)에 이르는 2034년 8월 11일까지 19년 동안의 양육비와 교육비로 4857만 원을 산출했다.
이에 따라 산모에게 4218만 원(진료비 및 분만수술비 312만원+일실수입 476만 원+양육비 등 2428만 원+위자료 1000만 원)을, 남편에게 2928만 원(양육비 등 2428만 원+위자료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고법 판결은 원고와 피고측 모두 상고하지 않아 최근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