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익 변호사(의사·법무법인 LK파트너스) [8]
지난 7월 21일 성형외과 개원가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속칭 유령수술에 대한 민사소송 판결이 선고됐다. 해당 의사는 현재 사기 및 의료법 위반을 이유로 기소되어 1심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데, 이에 앞서 환자가 의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많은 언론을 통해 주요 선고 내용이 보도됐는데, 판결문을 입수해 검토한 결과 실제 선고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우선 해당 판결에서 인정한 사실관계는 형사재판에 제출된 공소장 기재 내용을 그대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관련 형사재판은 작년 4월 기소 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 회 공판기일이 진행됐고 아직 선고기일이 지정된 것도 아니다.
물론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은 각각 별개의 절차이기는 하나, 통상적으로 엄격한 증거를 토대로 형사재판에서 사실관계가 확정된 후 이를 민사재판에서 원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주치의와 다른 의사가 수술을 한 것인지 및 주치의의 수술 관여는 어느 정도이며 수술 주요 과정을 누가 했는지 등에 대해 형사재판에서 치열하게 다툼이 벌어지고 있을 것임에도 이에 대한 결론이 내려지기 전 민사소송 선고가 이뤄진 것은 선뜻 납득하기 쉽지 않다.
물론 유령수술 자체가 있었음이 인정되는 경우라면 굳이 형사재판 결과를 기다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위와 같은 사실인정 이외에도, 의료진의 과실에 대한 판단 없이 광대뼈 불유합·부정유합·비대칭 등에 대한 책임을 의료진에게 전가시킨 것은 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해당 판결에서는 환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발생 근거로 사기·설명의무 위반만이 인정됐고, 민사소송 과정에서 진료기록 감정이 시행된 것도 아니며 단지 환자의 현재 신체상태에 대한 감정만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향후 필요한 치료비를 모두 의료진에게 배상하도록 한 것은 판결의 심각한 오류이며, 수술 결과와 무관하게 유령수술 그 자체를 엄중히 다루고자 하는 의지에서 이런 판결이 선고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환자에 대한 위자료가 무려 5000만원으로 산정됐다는 점이다.
해당 판결 수술은 2015년 3월 법원이 사망사고 위자료 기준을 8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기 전 시행됐다. 대개 노동능력상실률을 위자료 산정에 반영하는 실무 경향을 고려할 때 5000만원의 위자료는 60% 이상 후유장애를 입은 경우에나 지급될 수 있는 고액이며, 이는 국가배상법에 따르면 한 눈이 실명되거나 3개 이상 손가락을 상실하는 정도의 중상해 수준을 의미한다.
사기로 인한 피해 회복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산적 손해의 보전으로 그치는 것이 원칙이라는 법리를 고려할 때 수술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설명의무 위반이 위자료에 참작됐다고 하더라도 5000만원에 이르는 위자료 산정이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와 같이 해당 판결문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론이 다수 눈에 띄며, 항소심에서 판결의 위법이 시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결론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해당 판결은 사회적으로 유령수술과 같은 행위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판단을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6월부터 시행된 설명의무법에서도 수술에 참여하는 주된 의사의 성명을 환자에게 설명해 서면동의를 받고, 참여의사 변경이 있는 경우 이를 서면으로 환자에게 고지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수술에 참여하는 주된 의사라는 용어 관련, 수술에 어느 정도 관여해야 하는지와 같은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계획적인 수술의사 변경과 같은 행위는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려우며 고액의 위자료 배상이 동반될 수 있는 불법행위라는 점을 반드시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의사/법무법인 LK파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