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부전으로 심장까지 멈췄던 20살 딸에게 부모 폐 일부 이식
기약 없이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새 희망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폐이식팀은 지난 10월 21일 말기 폐부전으로 폐의 기능을 모두 잃은 20살 오화진씨(여)에게 아버지 오승택씨(55세)의 오른쪽 폐의 아래부분과 어머니 김해영씨(49세)의 왼쪽 폐의 아래부분을 떼어 이식해주는 생체 폐이식을 성공적으로 시행해 건강하게 회복중이라고 밝혔다.
딸을 살리려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과 치료 성공을 위한 의료진의 집념이 만들어낸 이번 생체 폐이식의 성공은 국내에서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는 300여 명의 말기 폐부전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폐는 우측은 세 개, 좌측은 두 개의 조각으로 이뤄져 있다. 폐암 환자들의 경우 폐의 일부를 절제하고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생체 폐이식은 기증자 두 명의 폐 일부를 각각 떼어 폐부전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으로 기증자와 수혜자 모두 안전한 수술방법이다.
환자 오화진씨는 2014년 갑자기 숨이 쉽게 차고, 체중이 증가하면서 몸이 붓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폐동맥의 혈압이 높아져 폐동맥이 두꺼워지고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내보내기 어려워져 결국 심장의 기능까지 떨어지는 특발성 폐고혈압증으로 진단받았다.
2016년 7월 화진씨는 심장이 정지되는 위험에 빠졌으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고, 다시 심장마비가 온다면 소생 확률이 20%에 불과했다.
하지만 국내 이식수술 규정상 우선적으로 뇌사자의 폐를 기증 받기 위해서는 폐질환 자체가 악화돼 인공호흡기를 삽입해야 한다.
국내에서 뇌사자의 폐를 기증받기 위해 대기하는 평균적인 기간이 1456일(2016년 국립장기이식센터)로 나타났다. 서울아산병원에서만 2014년부터 2017년 7월까지 뇌사자 폐이식 대기자 68명 중 사망한 환자 수가 32명으로 절반에 가깝다.
이미 한 차례 심정지로 심폐소생술까지 받은 응급상황을 겪었고, 언제 다시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상황에서 딸이 수술도 받지 못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화진씨의 부모는 일본에서 생체 폐이식으로 명성이 높은 교토의대병원의 히로시 다떼(Hiroshi Date) 교수에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외 원정이식을 위해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다.
국내 장기이식법에 따라 생체 폐이식 진행이 어려워, 지난 8월에는 국민 신문고에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폐의 전부라도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나와 아내의 폐 일부를 딸에게 주는 생체 폐이식을 허락해 주세요"라며 화진씨 아버지가 생체 폐이식 진행을 허락해 달라는 간절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은 지난 10년 간 폐이식 대기자들의 허무한 죽음을 지켜보며 생체 폐이식이 폐이식 대기자들을 살릴 수 있다는 사명감을 갖고, 2008년 이후 수 차례 히로시 다떼 교수를 찾아가 생체 폐이식 수술의 노하우를 전수 받는 등 뇌사자 기증만 기다리다 죽음에 이르는 말기 폐부전 환자들을 위해 꾸준히 준비를 해왔다.
때마침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은 폐이식 대기중인 딸아이를 살리기 위해 병원을 찾아 온 화진씨 부모를 만났고, 화진씨 부모의 간절한 요청과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졌다.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은 대안을 찾기 위해 긴급회의를 열었다. 현행법상 합법이 아니지만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화진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생체 폐이식 진행에 대해 지난 8월 병원 임상연구심의위원회와 의료윤리위원회를 정식 개최하고, 대한흉부외과학회·대한이식학회에 의료윤리적 검토를 의뢰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또 정부기관과 국회,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대한이식학회에 보고해 화진씨를 위한 생체 폐이식 수술의 불가피성을 한 단계씩 설득해 나갔다.
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 동관 3층 수술장에 수술실 3개의 문이 열렸다. 화진씨를 가운데 두고 양 옆의 수술실에는 아버지 오씨와 어머니 김씨가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을 직접 집도한 흉부외과 교수들 외에도 마취과, 호흡기내과, 심장내과, 감염내과 등의 교수진들과 간호사, 심폐기사까지 총 50여 명의 의료진들은 저마다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마침내 아버지의 우측 아래 폐와 어머니의 좌측 아래 폐가 각각 화진씨의 오른쪽과 왼쪽 폐로 이식됐다.
중환자실 집중치료를 받은 화진씨는 수술 후 6일 만에 인공호흡기를 떼고 11월 6일 일반병동으로 옮겨지는 등 현재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딸을 위해 폐의 일부를 기증했던 화진씨의 부모도 수술 후 6일 만에 퇴원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오화진씨는 "수술 전 숨이 차서 세 걸음조차 걷기 힘든 상황에서 부모님과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 후 6일 만에 처음으로 의식이 돌아온 날이 마침 생일날이었고,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감격과 감사한 생각만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생체 폐이식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일본은 1년, 3년, 5년 생존율이 각각 93%, 85%, 75%로 국제심폐이식학회의 폐이식 생존율보다 우수한 성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미 생체 폐이식 수술의 의학적 안전성을 인정받아 생체 폐이식이 꾸준히 시행되고 있다.
생체 폐이식은 1993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된 후 201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400례 이상 보고되고 있으며, 이번 수술에 참관하여 조언을 아끼지 않은 일본의 히로시 다떼(Hiroshi Date) 교수는 생체 폐이식 수술을 연간 평균적으로 10건 이상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1998년부터 2011년 사이에 시행된 생체 폐이식의 5년 생존율을 88.8%로 획기적인 성적을 보고하기도 했다.
수술을 집도한 박승일 교수(흉부외과)는 "생체 폐이식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다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하는 환자들, 특히 소아환자들에게 또 다른 치료방법을 제시한 중요한 수술이다"라고 소감을 밝히고 "기증자 폐엽 절제는 폐암 절제수술의 경험으로 흔히 시행되는 안정성이 보장된 수술"이라고 강조했다.
또 최세훈 교수(흉부외과)는 "이번 생체 폐이식 수술은 뇌사자 폐이식 수술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과 딸을 살리고자 하는 부모의 강한 의지가 만나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게 됐으며, 예상대로 공여자와 수혜자 모두가 안정적인 상태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