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수혈' 입원 중 사망 28%·감염 21% 위험률 높여
ISOPBM 참석한 세계 혈액 전문가들 '수혈'아닌 'PBM' 정답
"인구가 노령화 되면서 수혈을 필요로 하는 인구는 늘어나는 반면에 중장년층은 여전히 헌혈을 하지 않고, 군인의 헌혈이 줄어들면서 헌혈률이 높은 젊은층의 헌혈률 마저 감소하고 있습니다. 혈액 부족 문제는 앞으도 더 심화될 것입니다."
12월 1∼2일 서울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환자혈액관리 국제학술대회(International Symposium of Patient Blood Mangament, ISOPBM)'를 뒷바라지한 김영우 혈액관리 국제학술대회(ISOPBM) 조직위원장(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장·국립암센터 교수)은 "현재 한국의 혈액 사용량이 일본의 약 2배에 달한다"면서 "모자란 혈액을 아껴쓰지 않으면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고, 진료비용도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조직위원장은 "수술에 앞서 환자의 증상을 정확히 파악해 혈액을 줘야 할지, 철분제를 공급할지를 판단하는 '환자혈액관리(Patient Blood Management, PBM)' 개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임상에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도 혈액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중장기 혈액수급·혈액 사용 적정 관리·국민 눈높이에 맞춘 수혈관리체계 구축·미래 수요 대비 지속 가능성 등 '혈액사업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혈액사업 중장기 발전계획'의 핵심은 수요와 공급 중심의 수혈관리정책에서 벗어나 '혈액 사용 적정관리'라는 환자 중심의 질적인 혈액정책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번 '환자 혈액관리 국제학술대회(ISOPBM)'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혈액 전문가들은 강연과 전문지 기자회견을 통해 "수혈은 선택이지만 '환자혈액관리(PBM)'는 필수"라면서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치료를 하는 것이 무분별한 수혈을 방지해 수혈로 인한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ISOPBM에 참석한 국제적인 혈액 전문가의 조언을 정리했다.
■ 악셀 호프만 교수(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학)
"과학적 연구 결과, 묻지마식 수혈치료 문제점 드러나"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피가 모자라면 자동적으로 수혈 처방을 했다.
하지만 수혈에 관한 연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작 수혈을 했을 때 사망률·유병률·입원 일수가 더 늘어났으며, 수혈로 인한 경제적 부담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묻지마 수혈은 잇점보다 위험이 더 크다. 철분이 모자란 환자에게 수혈을 한다고 철분이 공급되지는 않는다. PBM은 수술 전후 평가를 통해 철분이 필요한 환자에게 혈액이 아닌 철분제제를, 지혈제가 필요한 환자에게 지혈제를 투여하자는 것이다.
환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데 수혈을 하는 것은 지카 바이러스·HIV 등 혈액 매개 감염 위험을 높인다. 혈액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저를 비롯한 연구진은 약 60만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수혈군과 비수혈군으로 나눠 6년 동안 추적조사를 벌였다. 연구 결과, 혈액을 대체하는 약제를 처방 받은 환자의 입원 중 사망이 28%, 감염 21%, 수혈관련 뇌졸중 31%, 입원일수 15% 등이 줄었든 것으로 집계됐다. 국제수혈학술지에 이 논문을 발표한 이후 유럽연합(EU) 소비자 보호기구는 'PBM' 프로그램을 표준치료로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혈액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비용의 일부라도 PBM에 투자하면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
미국도 양에서 가치 기반으로 혈액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엉덩관절 수술을 측정해 보니 혈액을 사용하는 데 따른 비용은 물론 수혈로 인한 합병증이 발생할 경우 의료 수가와 병원 수가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나왔다.
수술하기 전에 검사해서 빈혈이 있으면 빈혈 치료를 한 후 수술하면 된다. 이게 PMB다.
환자가 아프니까 더 수혈을 한다는 묻지마식 수혈 치료가 옳지 않다는 게 과학적으로 검증됐다.
■ 토비 리차즈 교수(영국 런던대학·외과)
"한국, 수혈정책에서 PBM정책으로 전환해야"
"한국, 수혈정책에서 PBM정책으로 전환해야"
입원 환자의 1/3에서 빈혈이라는 통계가 있다.
철분이 부족하면 철분을, 비타민 B12나 엽산이 결핍한 경우에는 이를 공급하면 빈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수혈을 적게 할 수 있다.
피곤한 사람과 정상인 사람을 수술하면 결과가 다르듯이 수술 전에 빈혈을 치료해야 수술 결과를 개선할 수 있다.
빈혈이 있는 환자가 심장·위 수술 등을 받을 경우 입원일수가 3일 더 길고, 수술 중 사망 확률이 3배 가량 높아진다. PBM을통해 수술 전 빈혈을 해결해야 한다.
탱크가 꽉찬 상태에서 수술하면 혈액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탱크에서 혈액이 빠져 나오는 것도 막을 수 있다.
호주는 정부에서 혈액 안전성과 재고량을 관리하고 있다. 호주는 수혈관리 가이드라인을 환자혈액관리 가이드라인으로 대체하고 있다.
미국 의료기관의 25%에서 PBM을 도입했으며, 독일은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PBM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한국도 수혈 관리에서 PBM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
■ 아르예 샌더 교수(미국 잉글우드메디컬센터 마취과)
"PBM 선택 아닌 필수...한국 선도국가 자리매김하길"
수혈이 유일한 치료법이 아니라는 것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다양한 의학적 상황에서 수혈이 아닌 적절한 치료법이 있다.
지금까지는 철분 결핍을 수혈로 치료해 왔다. PBM은 환자 상태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것이다.
한국 환자들이 수혈이 아닌 PBM을 통해 올바른 치료를 받도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PBM을 도입하면 환자들의 결과가 실제 개선되는 것을 측정할 수 있다.
ISOPBM을 계기로 한국이 PBM을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결론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수혈은 선택의 하나일 뿐이고 PBM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다.
'환자혈액관리 국제학술대회(ISOPBM)'를 뒷바라지한 국내 전문가들도 PBM의 중요성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PBM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PBM 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원하고, 혈액관리료를 적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오남용을 우려해 비급여로 발을 묶어 놓은 고용량 정맥 철분제를 비롯한 약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태엽 대한혈액관리학회 학술이사(건국의대 교수·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는 "혈액은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사람에게 해야 한다. 최선의 치료가 수혈이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면서 "다만 자신의 가족이 수술이 필요한 환자일 때 의료진이 수혈과 PBM에 대해 고민해 줄 것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엄태현 대혈혈액관리학회 연구이사(인제의대 교수·일산백병원 진단검사의학과)는 "자칫 수혈의 부작용과 위험성만 부각되면 헌혈률이 떨어져 정작 수혈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위험에 놓일 수 있다"면서 "안전한 혈액 확보를 위한 정부와 국민의 노력과 함께 환자 중심의 PBM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임상의사들의 인식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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