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 놓고 찬반 목소리
추무진 회장 "의견 충분히 반영될 때까지 최선"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을 둘러싼 의료계 내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의협은 회원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의료계 요구가 반영되지 않으면 권고문에 합의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방침을 밝혔다.
12월 29일 오전 7시 의협회관에서 열린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 권고문(안)에 대한 간담회'에는 추무진 회장을 비롯한 의협 집행부와 노만희 대한개원의협회장과 내과·외과·산부인과 등 전문과목별 개원의사회 대표 30여 명이 참석해 의견을 교환했다.
의료전달체계개선협의체에 의협 대표로 참석 중인 임익강 보험이사는 "2016년 1월부터 11월까지 13차에 걸친 협의체 회의와 3차에 걸친 소위원회 회의를 통해 협회 의견을 전달했다. 우리 요구에 따라 애초 12월 15일로 예정된 권고문 최종안 발표는 22일로 연기됐다가, 다시 내년 1월로 미뤄졌다"면서 "협회는 내과·외과계 의견을 수렴한 데 이어 소청과·산부인과 등 의견을 반영해 1월 3일 4차 소위원회를 열고, 6일에는 회원 의견수렴 과정을 다시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이사는 특히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의원급 의료기관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므로 개원 회원의 의견을 지속해서 수렴할 것"이라면서 "만약 회원 의견 반영되지 않으면 권고문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며, 협의체도 탈퇴하겠다"고 강조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추무진 의협 회장은 의견 수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추 회장은 "회원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의견을 모으는 것이 집행부의 역할"이라며 "우리 입장이 총체적으로 많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년 1월 6일 설명회를 열어 의견을 모으고, 그것이 부족하면 또 수렴하겠다. 회원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때까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마무리" 대 "발표 연기해야"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 논의를 일정대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입장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했다.
최성호 대한개원내과의사회장은 "내년 1월 중순까지 권고문을 확정하지 못하면 의협회장 선거 등 의료계 상황과 맞물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1월 6일 최종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창록 대한개원의협의회 보험부회장도 "1997년까지는 전달체계가 어느 정도 유지됐으나, 그 이후 완전히 무너졌다. 조금 더 있으면 병원급 외래 비중이 의원급을 추월하게 된다. 전 세계 이런 나라는 없다"면서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조현호 의협 의무이사는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외래 내원일수 증가율이 상급종합 97.6%, 병원급 138.7%인데 비해 의원급은 23.0%에 불과하다. 현재 의원 하위 30~40%는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급히 심폐소생술을 해줘야 한다. 지금 협의체를 깨는 것은 의료계에 엄청난 손해"라고 강조했다. 조 이사는 "우리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이 시점에서 협의체를 마무리해야 한다. 권고문은 권고일 뿐, 앞으로 실무적인 문제는 의협 집행부와 비대위가 개입해서 최대한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로 외과계 의사회 대표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송병호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차기 회장은 " 협의체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것 같지만, 과별 갈등을 일으킨다면 좋은 방안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이비인후과의사회는 불과 한 달 전에 권고문(안)을 알게 됐다. 졸속으로 진행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정교하게 권고문을 다듬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비뇨기과의사회장 이동수 회장도 "최근 한 달간 권고문안이 굉장히 업그레이드된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계속 수정되고 있는데 데드라인을 꼭 맞춰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각 과목과 직역마다 입장과 처지가 다르지만, 대승적으로 모든 회원 공감하는 안을 만들어야 한다. 1월 초 발표는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좌훈정 대한일반과의사회 부회장은 "권고문이 처음에는 주로 회송수가 등 인센티브 위주였다가 나중에 디스인센티브 등 종별규제를 통해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특히 수가 인상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 없이는 자칫 규제만 남게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좌 부회장은 "권고안이 회원에게 이익 없이 규제만 더해져 앞으로 잘못된 방식의 주치의제도, 총액계약제로 나갈 위험이 있다. 6개월~1년 정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심도있게 논의해 대부분 회원의 동의 아래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용민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역시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시급한 사안이지만 서둘러 권고문에 동의하는 것은 결국 문케어에 동조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대책 없이 던져놓고 일부 학자가 뒤치다꺼리하며 만든 대안이 과연 의료 100년 대계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재정중립'에 대한 의구심·거부감
참석자들은 권고문 안에 명시된 '재정중립' 원칙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최근 공개된 권고문(안)은 의료전달체계 개선의 기본원칙 중 하나로 '재정중립'을 명시하고 '전달체계 개편에 따른 수가 재분배 시, 의료기관 종별 진료비 총액 유지를 통해 건보재정 중립 확보에 노력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에 대해 최성호 대한개원내과의사회장은 "재정중립은 밥그릇 싸움을 의미하므로 반드시 권고문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민 의료정책연구소장도 "추가 재정 투입 없이 의료전달체계를 만들자는 의도"라며 "상급종병에서 깎아 1차 의료기관에 내려보내고 1차 깎아서 위로 올린다는, 재정에 대한 기본적 대안도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대한외과의사회 이세라 총무이사 역시 "재정중립은 상대가치점수제와 마찬가지로 추가 재정 투입 없이 하겠다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에 대해 임익강 의협 보험이사는 "권고문은 재정중립 뿐만 아니라 '가치투자' 원칙도 포함돼 있다. 중장기적으로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재정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내과는 수가를 신설하고, 외과는 수가를 인상하는 방향의 재정투입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집행부, 비대위 한목소리 내달라"
전문과목 의사회 대표들은 협회와 비대위가 한목소리를 낼 것을 요청했다. 최근 의협 비대위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사안이 비대위 소관이라며 이날 간담회 개최를 취소할 것을 집행부에 요구한 바 있다.
간담회에서도 비대위 최대집 투쟁위원장과 이동욱 총괄사무총장은 "의료전달체계 개선 사안은 문케어의 핵심이므로, 대의원 총회에서 문케어 대응의 전권을 위임받은 비대위가 맡아야 한다"며 "집행부가 회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추진하는 것은 총회 결의 위반"이라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최성호 대한개원내과의사회장은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대의원총회의 오랜 수임사항이다. 집행부가 추진하지 않으면 오히려 회장 탄핵 사유"라면서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문케어 내용의 10%에 불과하다. 두 사안은 별개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협 집행부와 비대위의 갈등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동석 대한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장은 "협의체가 수년간 진행돼와 이제 마무리 단계인 것 같은데 집행부가 하든 비대위가 하든 뭐가 문제인가"라며 "(협의체 참여 위원을 집행부와 비대위가) 절반씩 구성하든지, 양측이 만나 깊이 있게 논의하든지 하나 된 모습으로 나가야 한다"고 꼬집었다.
최세환 대한신경외과의사회 부회장도 "근본 문제는 전문의가 의사 90%를 차지하고, OECD 평균 9%보다 훨씬 낮은 7.7%에 불과한 국민의료비 지출"이라며 "이에 대한 해결 없이 의사들끼리 싸우고 있다. 의협과 비대위가 단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 논의 향배는 결국 내과계·외관계의 합의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동욱 비대위 총괄사무총장은 "권고문 안에 내과계만 찬성하고 외과계는 모두 반대하고 있다"고 말하자 최성호 대한개원내과의사회장은 "내과는 (찬성으로) 결단한 것 같고 외과만 결정하면 될 것 같다. 외과계가 동의하지 않으면 내과도 추진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