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유디치과 사건 27억 원 환수처분 취소
"속임수·부당한 방법 아냐...건보공단 환수 처분 못해"
의료인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 개설·운영한 것은 의료법 위반이지만 개설·운영 자체가 불법인 '사무장병원'과는 달리 있는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적법한 요양기관인 만큼 요양급여비를 환수해선 안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A씨를 비롯한 유디치과 관계자 14명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27억 원대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중복 개설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허위로 자료를 제출하거나 사실은 은폐하는 등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지 않은 이상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급여비용을 환수처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행 의료법 제4조 제2항은 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위반 시 처벌 조항은 없다.
제33조 제8항은 '의료인의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고 규정, 이를 위반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나 별도의 개설허가 취소 규정은 없다. 다만 형사처벌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 의사면허가 취소돼 의료인 자격 상실과 개설허가가 취소될 여지는 있지만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는 개설에 영향이 없다.
재판부는 "의료법 제4조 제2항과 제33조 제8항을 위반했다는 사정만으로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이들이 보험급여 비용을 지급받은 것이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의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2012년 6월경 유디치과 전 지점에 관하여 동업계약을 해지한 이후에도 여전히 유디 및 관련 회사를 통해 유디치과 각 지점의 인적·물적 설비를 관리하면서 지점의 수익을 사실상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등 실질적으로 운영했다"면서 의료법 제4조 제2항과 제33조 제8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의료법 제4조 제2항과 제33조 제8항 위반이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비용의 청구주체로서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보험급여 비용을 지급받은 것이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의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이란 의료법에 따라 적법하게 설립된 의료기관만을 의미한다는 건보공단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이렇게 해석할 경우 의료법 제36조에서 정한 시설기준 중 경미한 위반행위가 있음을 간화하고 행정청이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하거나 신고수리를 한 경우까지 모두 무효하고 보게 돼 요양기관의 범위가 지나치게 축소되는 결과가 발생하고 당연지정제 방식의 취지에 반한다. 의료기관이 실질적으로 유효한 요양급여를 한 경우에도 요양급여를 받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해 의료기관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면서 "개설과정의 중대·명백한 하자에 의해 당연무효가 아닌 한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료법 제4조 제2항과 제33조 제8항 위반(의료인 개설)'은 의료법의 기본 목적상 원칙적으로 허용할 수 없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비의료인 개설, 사무장병원)'과 불법성 측면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 사실을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로 확인한 경우 해당 요양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고, 개설자에게 연대해 징수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반면에 의료인의 복수 병원 개설·운영을 규정한 의료법 제33조 제8항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짚었다.
"의료인에 의한 중복개설은 정보의 공유·의료기술의 공동 연구 등을 통한 의료서비스 수준 제고, 공동 구매 등을 통한 원가절감 내지 비용 합리화 등 순기능 측면이 존재함에도 이를 금지한 것은 의사가 수개의 의료기관을 소유함으로써 수익을 얻어 영리법인에 준하는 형태를 가지게 되고, 국민건강 보호라는 공익보다 영리를 추구할 수 있어 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상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한 재판부는 "의료법 제4조 제2항과 제33조 제8항을 위반해 개설된 의료기관의 경우 개설허가가 취소되거나 의료기관 폐쇄명령이 내려질 때까지는 요양급여를 실시하고, 보험급여비용을 건보공단으로부터 받는 것 자체가 법률상 원인없는 부당이득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 명의로 병원을 개설한 데 대해 요양급여비용을 환수 처분한 네트워크병원 중복 개설 환수처분 사건(2016년 10월 4일자 의협신문)·의료인 의료기관 중복 개설 사건(2016년 12월 21일자 의협신문)·명단 대여 의료기관 요양급여비 지급 거부 사건(2017년 9월 18일자 의협신문)에서 건보공단의 환수와 지급 거부를 취소한 적이 있다.
원고측 소송을 대리한 B법무법인은 "재판부는 사무장병원과는 달리 개설자격을 갖춘 의료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은 적법한 요양급여 청구대상이라고 판시했다"면서 "법원이 네트워크 병원과 사무장병원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의료법 중복개설·운영 금지와 관련한 위헌소원 사건(2015헌바34, 2015헌마324)을 심리하고 있다. 헌재는 이 위헌소원 사건과 관련해 2016년 3월 10일 공개변론까지 진행했으나 아직까지 결정을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