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CEO 릴레이 인터뷰⑨] 이승우 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 대표
길리어드는 제약계에서 이른바 '부심이 쩌는' 제약사로 통한다. 그도 그럴만한 게 설립 30년 만에 바이러스감염 분야에서 혁신적인 신약을 출시해 치료 패러다임을 바꿨다. 완치개념의 만성 C형 간염 치료제를 최초로 내놓기도 했다. 만성 B형 간염 치료제 영역에서 역시 내약성과 안전성에 균형이 잡힌 비리어드와 베믈리디를 연달아 히트시켰다.
하지만 혁신적인 제약사로 성공 모델이 된 길리어드사이언스는 지난해부터 매출액이 줄고 있다. 완치를 겨냥한 혁신신약을 출시하다보니 환자 완치로 시장(?)이 줄고 그로인해 매출이 감소하는 '길리어드 패러독스'가 발생한 셈이다.
교과서적으로 혁신적인 후속약을 부지런히 출시해 이 공백을 메워야 수레바퀴는 계속 돌아간다. 문제는 혁신적인 신약이라는 게 맘같이 착착 개발되지는 않는다는 것. 많은 글로벌 빅파마가 자신의 약을 개발하기보다 부지런히 가능성있는 후보물질을 구매해 상품화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법인 역시 '길리어드 패러독스'를 앓고 있다. 3년 연속 두자릿 수 이상 성장을 거듭했던 한국법인이 지난해 매출 정체를 보였다. 혹자는 성장을 거듭했던 시기보다 더욱 힘든 시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8일 만난 이승우 대표는 "매출액과 매출순위보다 가장 환자중심적인 제약사가 되는 것이 우선 과제"라며 이른바 '길리어드의 가치'를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출시된 약의 시장을 확대하고 아직 허가되지 않은 신약을 국내로 들여와 이 매출 정체 국면을 넘기겠다"고도 덧붙였다.
<일문일답>
지난해 성과는?
매출은 이전 해와 비슷했지만 '데스코비'와 '젠보야'·'베믈리디' 등 신제품을 급여했다. 뜻깊은 한 해였다. HIV 치료제는 지난해 후반기 기준 85% 이상이 '스트리빌드'에서 '젠보야'로 전환됐다. HIV 감염 치료제든, B형 간염 치료제든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바이러스 억제 효과나 내성이 기존 포커스였다면 지금은 장기 내약성이나 안전성에 중점을 둔다. 환자 고령화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TAF'기반 베믈리디는 좋은 옵션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은 과거 '오랄 안티 바이러스(OAB)' 치료제 내성 문제로 출시 순서에 따라 급여하는 관례 탓에 급여를 보수적으로 푸는 부분이 있다. 비리어드와 베믈리디는 같은 테노포비어 성분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치료제 전환이 빠를 것으로 기대했지만 기대한 것보다 교체가 느리다. 충분히 이해한다. 길리어드는 치료제 전환 관련 연구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생산해 식약처와 심평원에 부지런히 제출하겠다.
소발디와 하보니의 라이프사이클이 마무리되면서 글로벌 매출이 크게 줄고 있다. 국내 역시 소발디와 하보니 실적이 줄어드는데?
한국법인을 설립한지 올해 6년째다. 2013년 직원 30명으로 출범했다. 그때 한국 제약시장에서 가장 과학적이며 윤리적이고 환자중심적인 제약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그렸었다.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직원들은 역량을 키우고 시스템을 개선했다. 매출 순위라든지 회사 랭킹은 우리가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한국 매출도 전 세계 매출처럼 줄어든다. 완치되면 되는만큼 환자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일본에서 그랬듯 좀 더 많은 환자가 소발디와 하보니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하보니는 유전자 1형에서 제한적으로 급여됐는데 더 많은 환자가 투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HIV 감염 분야에서도 그랬지만 C형 간염에서도 길리어드는 선두주자로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해 치료 패러다임을 바꿨다. 100만 명 넘는 환자가 길리어드의 신약으로 완치됐다. 굉장히 보람있는 일이다.
하보니 '8주 요법'이 급여확대 논의에서 제외됐다.
미국이나 유럽은 35%의 유전자 1형 환자가 하보니 8주 요법으로 치료됐다. 신약 도입 시기에는 중증 환자가 많아 12주를 꼭 쓰도록 했지만 현재는 8주로 치료되는 환자가 적지않다. 정부와 논의할 계획이다.
전통적으로 길리어드는 작은 조직을 추구한다. 그러다보니 인력부족으로 직원 피로도가 다른 다국적 제약사보다 크다는 지적이 있다.
길리어드는 출시 약의 1/3 밖에 자체 생산을 안한다. 최적화된 인력을 운용한다. 전 세계 길리어드 직원은 1만명이 채 안된다. 연구에 기반을 두고 의학적인 요구가 절실한 치료제 개발을 한 우물 파듯 집중한 게 길리어드의 성공 요인이었다. 작은 조직을 추구해야 융통성있고 민첩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길리어드는 이미 성공한 제약사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 길리어드만의 길을 만든다.
한국법인의 65명 인력은 핵심인력이다. 꼭 해야하는 핵심 역량, 핵심 업무만 길리어드 직원이 하고 나머지는 파트너십으로 해결한다. 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의 직원이라면 다른 제약사 직원보다 2∼3배의 일을 해내야 한다.
최적 인력이라하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최소 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직원 충원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는 말 같다.
지난해 인력을 좀 늘렸다. 지금은 필요에 딱 맞는다. 앞으로 신제품 출시되면 그에 맞게 조직을 늘릴 계획이다.
최근 길리어드의 핵심 인력이 외부로 적지않게 나갔다는 말이 있다.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은 아니라고 보나?
어느 회사나 라이프사이클이 있다. 지난 한해 길리어드의 이직률은 업계 평균보다 낮다. 회사에 타격있을 정도는 아니다. 직원의 발전이나 일과 삶의 균형은 중요하다. 나 역시 스스로 롤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직원 맞춤형 근무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유연근무제를 운용하기도 한다. 주말 근무하면 다른 날 휴가를 갈 수 있도록 한다.
올해 출시될 새로운 치료제가 있나?
한국에서도 HIV 감염 치료제의 예방요법이 곧 허가될 예정이다(식약처가 19일 예방요법을 허가했다). 다른 나라는 HIV 감염자가 줄어드는 추세지만 한국은 10% 가까이 늘고 있다. 대부분 30대 젊은 남성이다. 길리어드의 젠보야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지난해 미국에서 '예스카타'라는 CAR-T 치료제를 허가받았다.
머지않아 유럽에서도 허가된다. 일부 말기암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지만 고형암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임상을 진행 중이라 기대가 크다. 아직 초기 단계라 국내 도입 여부를 거론하긴 이르다. 적절한 때에 국내 시장에도 도입할 수 있도록 본사와 대화하고 있다.
CAR-T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크다. 국내 의료진의 임상참여 기회가 있나?
CAR-T 치료제의 특성상 의료진과 병원이 트레이닝돼야 치료제를 다룰 수 있다. 인프라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CAR-T 치료제를 기존 약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일종의 시스템이다. 길리어드는 이런 시스템의 수준 정도를 인증하고 있다. 한국 의료진이 관심이 많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개척지의 성격이 강한 CAR-T 치료제의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빠른 시간 안에 한국에서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시스템이란 어떤 걸 말하는가?
글로벌 본사로 환자의 조직을 보내 일정한 공정을 거쳐 투약해야 한다. 20일 안에 이러한 공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다보니 공간적인 제약이 있다. 그래서 미국은 연구소나 공장이 다 공항 근처다.
한국 약가제도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은?
혁신 신약 개발을 국가 성장엔진으로 삼으려면 그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신약을 만드는 것은 많은 자본과 리스크를 감수하는 거다.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다국적 제약사에 대한 시각도 변해야 한다. 매출은 크지 않지만 한국에서 많은 임상시험을 하는 등 보이지 않는 혜택을 제공한다. 다국적 제약사의 많은 임상시험 과정을 통해 한국의 임상연구진의 역량과 임상연구 수준은 자연스럽게 올라갈 거다.
전통적으로 국내 산업이 유치산업일때 외국의 제품과 국내 유치산업 제품에 같은 가격을 매기는 방식으로 유치산업을 키운 전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 한국 정부는 약값보다는 다른 정책적인 지원을 통해 국내 제약사를 키우면 되지 않나?
지난 몇 십년간의 정부 정책을 보면 신약 약값은 낮추고 제네릭 가격은 높게 책정했다. 이런 정책방향은 신약개발의 리스크를 감내해야 할 이유를 주지 못한다. 차라리 제네릭 가격은 낮추고 그 재원을 신약에 대한 높은 약가로 제공하는 것이 낫다. 한국의 과학 수준 높고 특허시스템이나 신약개발 시스템 등은 글로벌 수준이다. 유치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