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치료비 누락했다 하더라도 청구권 소멸하지 않아
대법원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전보" 병원 청구 불인정
의료과실로 식물인간이 된 환자가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은 이후 예상보다 기대여명기간이 늘어난 경우에는 추가치료비 청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손해배상 판결 이후 발생한 진료비 역시 환자에게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제1부는A대학병원이 B씨와 가족을 상대로 낸 용역비 청구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 합의부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의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탓으로 오히려 환자의 신체기능이 회복 불가능하게 손상되었고, 또 손상 이후에는 그 후유증세의 치유 또는 더 이상의 악화를 방지하는 정도의 치료만이 계속되어 온 것뿐이라면 의사의 치료행위는 진료채무의 본지에 따른 것이 되지 못하거나 손해전보의 일환으로 행하여진 것에 불과하여 병원 측으로서는 환자에 대하여 그 수술비와 치료비의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92다15031·2011다28939 등)를 들어 "이러한 법리는 환자가 특정 시점 이후에 지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향후치료비를 종전소송에서 충분히 청구할 수 있었고, 실제로 이를 청구하였더라면 그 청구가 적극적 손해의 일부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졌을 것"이라며 "환자가 해당 향후치료비 청구를 누락한 것이 청구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사건은 20년 전인 1998년 5월경 B씨가 A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의료과실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면서 시작됐다.
1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고, B씨의 기대여명기간을 4.43년(2004년 4월 23일)으로 추정된다는 전제아래 일실수입·여명기간 동안의 향후치료비·개호비·위자료 등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대법원 2003년 7월 25일 확정).
B씨는 1차 의료소송에서 예상한 여명기간 이후로도 생존함에 따라 추가로 발생한 손해에 관해 배상을 청구했다(2차 의료소송).
2차 의료소송에서는 B씨의 생존을 조건으로 기대여명기간을 2012년 6월 14일(8.4년)까지로 보고 향후치료비와 2037년 9월 28일까지의 개호비 등 손해를 추가로 인정했다(대법원 2007년 4월 13일 확정).
2차 의료소송에서 B씨 가족은 향후 개호비는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여명 종료일을 고려해 2037년 9월 28일까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을 청구한 반면, 향후치료비는 감정결과 인정된 기대여명 상한선(8.4년)을 고려해 2012년 12월 31일까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을 청구했다.
하지만 B씨는 2차 의료소송에서 예상한 여명기간 이후로도 생존했다.
B씨 가족은 2014년 2월 11일 여명기간을 넘어 생존함으로써 추가로 발생한 손해에 관한 배상을 청구했다(3차 의료소송).
항소심(대전고등법원 2014나12506)은 2015년 3월 20일 A씨의 소극적 손해배상청구(생계비)는 일부 인용했으나, 2014년 7월 10일 이후 향후치료비 청구 등 적극적 손해배상청구 부분은 2차 의료소송의 기판력에 저촉된다고 보아 이를 각하했다.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2015다212008)에서 확정됐다.
3차 의료소송이 확정되자 A대학병원은 B씨가 계속 입원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2015년 1월 1일∼2015년 12월 31일까지 발생한 진료비 980만 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용역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B씨가 2차 의료소송에서 2013년 이후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치료비 등을 청구할 수 있었고, 실제로 이를 청구하였더라면 인용됐을 것임이 명백함에도 이를 청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청구권 등이 실체법상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B씨가 2013년 이후에 발생한 치료비를 변제받았다거나 해당 청구권을 포기한 사정이 없고, A대학병원이 B씨를 치료하는 것은 의료진의 과실로 발생한 손해를 전보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원고는 피고들에 대해 2013년 이후 발생한 진료비 등의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하지만 원심은 2차 의료소송에서 2012년 6월 14일까지 계산된 향후치료비 등과 2037년 9월 28일까지 정기적으로 지급될 개호비 등을 확정, 과실로 발생한 손해가 모두 전보됐다는 이유로, 적극적 손해배상 청구부분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의 전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소액사건심판법 제3조 제2호에서 정한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