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항소심, 손해배상 청구 소송 기각...검사·조치 소홀하지 않아
전조 증상·활력증후 이상 없을 땐 발생 가능성 의심하기 어려워
급성 심근경색이나 심근허혈 증상이 없는 환자가 입원실에서 사망했다 하더라도 병원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B환자의 가족이 A종합병원장을 상대로 낸 2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급성 췌장염과 알콜 과다 복용에 의한 알콜성 케톤산증으로 2015년 4∼9월 A종합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과거력이 있는 B씨. B씨가 A종합병원 응급실을 다시 찾은 것은 2015년 10월 3일 오후 2시경.
A종합병원 의료진은 오심과 복통 증세를 호소하는 B씨에게 이학적 검사와 X-ray·심전도·혈액검사를 실시, 알콜성 위장염이나 만성 췌장염에 의한 것으로 보고 수액·진통소염제·비타민 등을 투여하고, 오후 4시 10분경 통증 조절을 위한 입원 치료를 권유했다. 하지만 B씨는 입원 대신 외래 진료를 받겠다며 경구약을 처방받은 후 오후 5시 10분경 귀가했다.
귀가 후 복통이 심해지자 오후 6시 51분경 내원한 B씨의 활력징후를 측정한 결과, 혈압 140/90mmHg, 맥박 80회/분, 호흡수 18회/분, 체온 36.8℃였다. 수액을 투여한 의료진은 오후 8시 10분경 다시 입원 치료를 권유했다. 입원을 결정한 오후 9시 10분경 활력징후는 혈압 140/80mmHg, 맥박 84회/분, 호흡수 18회/분, 체온 36.5℃였다.
오후 9시 15분경 B씨는 간호사에게 "어지럽고 춥다"고 밝혔으며, 간호사가 5분 후인 오후 9시 20분경 병실을 다시 방문했을 때 얼굴을 베개에 묻고 있어 확인한 결과, 청색증이 관찰됐으며, 동공반사가 없었다. 맥박·경동맥·활력징후·산소포화도 역시 측정되지 않자 앰부 배깅과 함께 당직의사에게 상황을 알렸다.
당직의사는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면서 에피네프린을 투여하고, B씨를 중환자실로 옮겨 심전도·호흡 등을 확인하면서 약물을 투여하는 한편, 오후 9시 38분경 기관내 삽관과 앰부 배깅을 통해 산소를 공급했다.
하지만 심폐기능은 회복되지 않았으며, 오후 10시 35분경 활력징후가 전혀 측정되지 않자 오후 11시 30분경 사망 선고를 했다.
B씨 가족은 혈액검사·심전도검사에서 심근경색을 의심할 수 있는 소견이 나타났음에도 정밀검사를 시행하지 않았고, 2차 내원 당시 검사·진찰·치료를 하지 않아 갑작스런 심정지가 발생했으며, 심폐정지 상태에서 응급처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됐으므로 의료진의 사용자인 병원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2012다22822)를 인용, "의사가 진찰·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서는 사람의 생명·신체·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고, 의사의 이같은 주의의무는 의료행위를 할 당시 의료기관 등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행위의 수준을 기준으로 삼되, 그 의료수준은 통상의 의사에게 의료행위 당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고, 또 시인되고 있는 것을 뜻하므로 진료환경 및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규범적인 수준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진단은 문진·시진·촉진·청진 및 각종 임상검사 등의 결과에 터잡아 질병 여부를 감별하고 그 종류·성질 및 진행 정도 등을 밝혀내는 임상의학의 출발점으로서 이에 따라 치료법이 선택되는 중요한 의료행위이므로 진단상의 과실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비록 완전무결한 임상진단의 실시는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진단 수준의 범위 내에서 의사가 전문직업인으로서 요구되는 의료윤리와 의학지식 및 경험에 터잡아 신중하고 정확하게 환자를 진찰하고 진단함으로써 위험한 결과 발생을 예견하고, 그 결과 발생을 회피하는 데에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는지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의료현장에서 전형적인 흉통은 30분 이상 지속되고, 정상 상한치를 넘어서는 혈중 심근효소 측정, 심전도 상 유의한 상승이 있는 경우 심근경색을 진단하는 데 B씨가 호소한 복부 통증 및 오심은 심근경색의 전형적인 증상이라기보다 기왕에 앓고 있는 췌장염 등의 전형적인 증상이고, CPK 수치 상승은 알코올 중독으로도 나타날 수 있으며, 심근효소 검사 결과는 정상범주였다"면서 "기왕력·통증 부위·혈액검사 결과·심전도 검사 결과·문진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의료진이 알코올 과다 섭취로 인한 급성췌장염으로 진단하고 경과 관찰과 치료를 진행한 데 어떤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차 내원 당시 증상이 1차 내원 당시와 동일하고, 활력징후에 이상이 없었다면 심근경색 및 급성 심정지 발생 가능성을 의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한 재판부는 "검사 및 치료 과정은 망인이 보인 증상에 비추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검사 및 조치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응급 처치 상 과실이 있다는 원고측 주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 역시 "망인에게 흉통이 없고, 혈액검사상 심근경색 진단에 특이적인 혈중 심근효소 수치가 정상이며, 심전도상 ST문절의 유의한 상승도 없었다"면서 "의료진이 알콜 과다섭취로 인한 급성췌장염으로 진단해 이에 따른 치료 및 경과 관찰을 한 것을 의료상 과실이라 보기 어렵고, 심초음파 등 정밀한 검사를 하여 심근경색을 배제할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1심 판결에 무게를 실었다.
이번 소송은 환자 측이 대법원에 상소를 제기하지 않아 항소심 판결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