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의료연구소 "50년 전 이론...타당성·객관성 결여"
주사제 준비단계 오염과 지질영양제 사망 인과성 미입증
인과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과거 역학조사 이론을 적용해 실시한 질병관리본부(질본)의 역학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바른의료연구소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질본이 4월 25일 공개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역학조사 결과보고서'(질본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질영양제(감염원) 투여와 환아 사망 간에 역학적 인과성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주사제 준비 단계에서 지질영양제가 시트로박터 프룬디 균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역학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50년 전 발표한 역학이론을 끌어내 자의적으로 결론을 냈다며 타당성과 객관성에 의문을 표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먼저 질본이 어떤 원인에 의해 패혈증이 발생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브래포드 힐 교수의 기준에 입각해 감염원을 판단했다고 밝힌 데 주목했다. 힐 교수는 53년 전인 1965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원인적 연관성과 비원인적 연관성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연관성의 강도(strength) △일관성(consistency) △특이성(specificity) △시간적 속발성(temporality) △양-반응관계(biological gradient) △개연성(plausibility) △기존 지식과의 일치성(coherence) △실험적 근거(experimental evidence) △유사성(analogy) 등 9가지를 제시했다.
힐 교수가 제시한 '연관성의 강도'의 경우 흡연과 폐암 발생의 경우처럼 강한 연관성이 약한 연관성보다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바른의료연구소는 "연관성이 아주 약해도 인과성이 인정되기도 하고, 강한 연관성임에도 인과성이 불인정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구체적인 사례로 흡연과 관상동맥질환 간의 연관성을 제시하며 53년 전 만든 힐 교수의 낡은 기준을 토대로 역학조사를 실시한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흡연과 관상동맥질환 간의 연관성은 매우 약하고, 힐 교수의 기준을 적용할 경우 인과성이 없다고 해야 하지만 이 둘 간에는 인과성이 확실히 입증됐다"고 밝힌 바른의료연구소는 "최근에는 연관성의 강도를 인과성 판단의 기준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면서 "힐 교수가 제시한 9개 기준 중 지금까지 인정되는 것은 시간적 속발성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힐 교수는 '9가지 기준 중 어떤 것도 원인과 결과 가설을 찬성하거나 반대할만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고, 그 어떤 기준도 필수불가결한 것이 될 수 없다'고 했고, 역학전문가들도 힐의 기준을 인과성을 탐색해 나가는 지침(guide)으로 사용해야지, 인과성에 대한 확정적인 결론을 내는 데 사용하지 말도록 권고했다"면서 "질본은 힐의 기준을 역학적 인과성 증명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역학자들이 널리 사용하고 있다거나 이 기준을 충족하면 인과성이 입증되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이는 사실을 호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하나의 연구나 역학조사로 인과성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의 연관성에 대한 수 많은 역학 연구와 실험연구(무작위 대조 이중맹검 임상시험, 동물실험 등) 자료를 축적해야 함에도 질본은 하나의 역학조사에서 인과성 판단을 한다며 힐의 기준을 적용했다"면서 "질본은 힐의 기준조차도 일정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임의적으로 충족 여부를 판단했다"고 꼬집었다.
원제품 지질영양제 검사 못하자 다른 제품 검사
질본은 지질영양제 원제품이 이미 폐기, 오염 여부를 검사할 수 없게 되자 대신 이대목동병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미개봉 제품(TPN 제조약품·Lipid 등)과 지난 1년 동안 이대목동병원에 납품된 제품번호에 해당하는 지질영양제에 대해 배양검사를 시행하고, 모든 제품에서 음성으로 나오자 원제품을 감염경로에서 배제했다.
이에 대해 바른의료연구소는 "미개봉 제품에서 음성으로 나왔다 하더라도 납품·보관·운반 도중에 원제품이 훼손돼 오염될 수 있으므로 원제품이 오염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어느 단계서 오염됐는지 확인할 수 없다?
질본이 주사제 준비단계에서 오염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질본은 역학조사 보고서에서 ▲싱크대가 균에 오염된 시점과 환아 사망 사이에 시간적인 선후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 ▲주사제 준비과정에 대한 녹화기록 또는 각 준비단계의 오염여부 검사 등 기타의 과학적 증명자료가 없는 한, 주사제 준비단계 중 어느 과정에서 오염이 발생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질본은 주사제 준비단계 중 어느 과정에서 오염이 발생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주사제 준비과정에서 오염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심정맥관 끝부분엔 균 검출되지 않아
"지질영양제가 균에 오염되었다면 중심정맥관의 끝부분에서도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이 검출돼야 한다"고 지적한 바른의료연구소는 "질본은 4개의 중심정맥관 끝부분의 배양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온 P3 검체에 대해 외부 오염에 의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했고, 나머지 3개의 중심정맥관 끝부분에서는 균이 검출되지 않았다"면서 "지질영양제의 균 오염에 의한 패혈증이 환아 사망의 근본 원인이라는 질본·경찰·검찰의 주장에 근거가 없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4명의 환아 중 3명의 중심정맥관이 삽입된 피부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 균이 검출됐다"면서 "만약 균 양성이 사후 오염이 아니라면 중심정맥관 외부면을 통해 시트로박터 균이 체내로 침입해 패혈증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지질영양제 소분과정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이 오염됐고, 이로 인한 패혈증이 환아들의 사망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질본은 한물간 힐의 기준을 무리하게 적용했지만 역학적 인과성 입증에 실패했다. 주사제 준비 단계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 균이 오염되었다는 주장의 근거조차도 빈약하기 그지 없다"면서 "질본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가능성 있는 다양한 원인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비판했다.
"지질영양제의 준비단계에서 의료진의 감염관리 지침 위반으로 시트로박터 프룬디 균에 오염돼 환아들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역학적 근거가 대단히 빈약하다"고 지적한 바른의료연구소는 "이대목동병원 사건의 발생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이대목동 사건이 재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바른의료연구소는 지난 2일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을 압수 수색한 경찰이 오염 가능성이 높은 의료폐기물통(용기)에서 검체(지질영양제)를 수거했고, 질본이 이 검체를 토대로 역학조사를 진행했다며 역학조사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