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눈물이 사라졌다. 세상은 더욱 각박해졌고 눈알은 빡빡하다. 눈물과 함께 웃음도 사라졌다. 세상 인심은 빠르게 변하고 점점 말라간다. 그래서일까. 인공누액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의료계가 처한 현실도 마찬가지다.
과거 어느 때보다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지만 의료제도에 대한 모순은 여전하다. 환자들의 불신은 오히려 더 커졌고 의사들에 대한 반감도 심해졌다. 의사들 역시 의료제도에 대한 불만이 많다. 진료에 대한 자율권이 사라져 환자에게 최선을 다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젊고 역동적인 수장이 해결책을 모색한다지만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아닐지라도 빡빡한 세상에 인공누액 같은 처방이 나왔다.
한국의사시인회 사화집 <왜 우리는 눈물이 나는 걸까?>이다.
지난 주말 진료를 마친 의사들 십여 명이 인사동에 함께 모였다. 출간 기념을 위한 조촐한 자리였지만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쳤다. 모두 현직 의사들로 문학을 사랑하고 시를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복잡하게 얽힌 현대사회에서 아직도 문학의 역할이 남아 있을까? 극단적 실용주의 사회에서 시의 효용성이 존재할지는 의문이지만 여전히 시를 읽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그들이 의사라면.
"시란 풍경과 사람 사이에 교감이 일어날 때 태어난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풍경만으로는 시가 되지 않는다. 시인이란 생의 무질서와 상처를 끊임없이 풍경으로 바꾸려고 하는 자이다. 풍경과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세상이 어우러져 공명(共鳴)을 불려 일으킬 때, 좋은 시는 태어난다. 색(色)이나 말(言)이 세상을 향해 화이부동(和而不同)할 때 비로소 그림이나 시가 안으로 곰삭아가면서 우리에게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그림이 되고 시가 될 수 있다……시는 세상의 질문에 대한 풍경이다."
김완 시인은 시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시는 왜 세상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하고 풍경이 될까. 그 문장 속에 어렴풋한 내 모습이 비치는 것 같았다. 시라는 은유를 통해 비겁한 모습을 감추려는, 페르소나를 통해 팍팍한 현실을 비켜가려는, 세상에 대해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에둘러 설명하는, 앞에 나서지 못하고 늘 어딘가로 숨어드는 모습이.
한국의사시인회는 2012년 결성된 이후 매년 사화집을 발간하고 있다. 벌써 여섯 번째다.
김승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여섯 살은 잠복기를 지나 주체적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로 이제 한국의사시인회의 뚜렷한 위상을 갖출 때가 됐다고 말했다. 내제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진정한 시인의사로서 정체성을 주문했다.
그는 "풀 먹여 사각거리는 옥양목 가운 닮은 하얀 꽃들아, 올해도 끼리끼리 피어 보았다. 언뜻 하나인 듯 꼿꼿하지만, 그 모습 향이 사뭇 다르다. 우주 한 귀퉁이는 한바탕 이 꽃들로 이미 환한데, 온갖 나비들이 날아들면 참 좋지."라며 이번 사화집이 널리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를 기원했다.
회원들의 근황 소개가 이어졌다. 대부분 글쓰기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 했다. 간간히 시 쓰는 보람을 말했다. 소백산 풍경을 바라보며 발을 씻는 게 낙이라는 낭만적인 모습과 순간적인 풍경과 감상을 결합한 포토필을 엮어 시집을 구상한다는 정겨운 모습도 선보였다. 정년퇴직을 앞둔 고민거리도 많았다. 시를 쓰는 후배 의사들이 많지 않아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시도 시인도 문학도 함께 늙어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음주를 곁들인 시낭송이 이어졌다. 내빈으로 참가한 젊은 목소리에 환호가 쏟아졌다. 엄숙한 시도 있었지만 밝은 시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눈물이 나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찾아 표제작을 읽어본다.
"언어에도 냉기가 있다/그러니까 실패한 언어를 만졌기 때문이다/언어가 차가운 꽃이 되어 나무의 꿈속으로 들어간다/나무는 꽃을 품고 모국어의 꽃을 피운다/중략//먼 이국에서 모국어를 쓰고 모국어를 읽을 때/왜 우리는 눈물이 나는 걸까?"
김경수 시인은 '결국 언어에도 냉기가 있다는 증거를 보는 것이다.'는 지극히 감성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과학적이고 이성덕인 답을 바랐지만 역시 문학적인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언어에는 냉기가 있을지언정 시인의 마음은 더없이 따뜻해 보인다.
참으로 오랜만에 문학에 취한 밤이었다. 근래 들어 웃을 일이 거의 없는데 많이 웃고 많이 떠들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일상을 향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시간이다. 우리는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환자를 보고 시를 쓰고 또 다시 모일 것이다. 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시간이 깊어서인지 월드컵 경기 때문인지 전철에는 승객들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 월드컵 경기는 집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빈자리를 찾아 몸을 부린다. 술에 취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낯설어 보인다. 조금 취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문재인 케어에 대한 우려와 멕시코 경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다시 복잡해진다. 그렇다고 투쟁에 앞장서거나 거리 응원에 참석할 여력은 없어 보인다.
가만히 오늘 하루를 펼쳐 본다. 그리고 슬그머니 시집을 펼친다. 아직도 시를 쓰고 있다니 신기하다. 벌써 여섯 번 째라니 더욱 신기하다. 여전히 시 앞에서 횡설수설하는 모습에 슬쩍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