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NHS에서도 1년 주기 적절하다는데 우리나라만 4년 주기로 결정
검진의학회, 4년 주기 부당성 지적…"심뇌혈관질환 오히려 증가" 우려
국가건강검진에서 이상지질혈증의 검진주기가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된 것에 대해 개원가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질검사 주기를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해 치료가 늦어지고, 이로 인해 발생할 심뇌혈관 합병증 치료비용까지 합산하면 이득보다 손해가 더 많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부 연구자와 대형병원 교수들의 주장에 따라 반영된 검사주기를 4년으로 늘릴 것이 아니라 일차진료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검진의학회는 16일 추계학술대회에서 2018년 달라진 건강검진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올해부터 우리나라 국가건강검진의 지질검사 주기가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돼 혼선을 주고 있어 개선점을 찾기 위해 심포지엄 자리를 마련한 것.
검진의학회에 따르면 지질검사 4년 주기 결정은 2013년 '현행 국가건강검진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타당성 평가 및 제도개선 방안 제시'에 대한 연구용역이 시발점이 됐다.
이 연구는 2003년 이후 국가건강검진 수검 결과에서 혈중 총콜레스테롤 농도의 실제 변동(signal)이 잡음(noise)보다 커지는데 필요한 기간을 분석했으며, 4년 간격으로 지질검사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질병관리본부의 후속 정책 연구 용역사업으로 '국가건강검진 항목 중 이상지질혈증 검진의 비용-효과 분석'을 맡은 다른 연구에서도 4년 간격의 검진 지질검사가 더 우월한 대안이고 국가적 차원의 비용을 더 낮출 가능성이 있다고 결과가 나오면서 지질검사 주기를 4년으로 한다는 데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이날 심포지엄에서 안지현 검진의학회 총무이사는 "정부가 근거로 제시한 연구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며 "중성지방, 저밀도지단백(LDL) 콜레스레롤, 고밀도지단백(HDL) 콜레스테롤에 대한 판정기준을 고려하지 않고 있고, 이상지질혈증 검진을 통한 조기 발견으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에 대한 비용-효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 주도의 연구 용역사업 최종평가 평가의견서에서도 심사위원은 대사증후군을 포함한 분석을 해야 효과적인 비용-효과 분석이 될 것이라는 의견과 동시에 고위험군을 고려한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정부 연구용역 보고서가 나온 뒤 10개월 후인 2015년 12월 영국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는 정부의 연구용역과는 정반대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NHS 연구 보고서는 3년 또는 5년 간격보다 1년 간격으로 지질검사를 하는 것이 비용-효과적이라고 했다.
안 총무이사는 "영국의 보고서는 총콜레스테롤뿐만 아니라 LDL, HDL 콜레스테롤과 각 콜레스테롤의 비(ratio)도 반영했고, 이상지질혈증 치료제인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지 않은 사람에서 심뇌혈관질환의 1차 예방과 2차 예방 효과, 스타틴을 복용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질검사 주기만으로 경제성을 평가하지 않고 지질검사 주기를 연장해 질병을 찾지 못해 발생할 심뇌혈관 합병증에 들어갈 치료비용까지 합산해 실제로 국민의 건강에 미칠 이득과 위해를 고려했다"며 "결과적으로 비용-효과 분석을 매우 엄격히 적용하는 영국 NHS에서는 오히려 지질검사 주기를 1년 간격으로 짧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발표했다"고 강조했다.
안 총무이사는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올해 초부터 대한임상순환기학회를 중심으로 지질검사 주기 4년 연장의 부당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질병관리본부 주최 토론회와 연구용역 최종평가 평가의견서에서 전문가들이 제기한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4년 주기로 결정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영국 NHS에서 보다 다양한 지질검사 항목을 반영해 상반된 연구 결과를 발표했음에도 2년 동안 문헌 검토를 충분히 하지 않고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가 정책 방향의 모순도 언급했다.
안 총무이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한 대한민국 만들기' 실천을 위한 '대사증후군 관리 사업'을 열심히 전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사증후군의 주요항목인 중성지방과 HDL 콜레스테롤의 검사 주기도 4년으로 연장돼 국가건강검진의 지질검사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대사증후군 사업의 방향이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밝혔다.
김원중 대한검진의학회장은 "국가건강검진 1차 수검률이 70%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지질검사 주기가 4년으로 연장되면 뇌졸중·심근경색증 등 심각한 심뇌혈관질환이 발생한 후에나 치료를 시작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가건강검진에서 지질검사 주기가 4년으로 연장돼도 환자의 동반질환이나 요청 등으로 진료실에서 추가로 지질검사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어, 오히려 의료재정 측면에서 4년 주기 연장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총무이사는 "의학적 근거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이 일부 연구자에게만 집중되는 지적도 있다"며 "실제로 특정 연구자가 국가건강검진 프로그램 타당성 및 제도 개선부터 일차진료 만성질환관리사업, 국가건강정보포털 등 여러 굵직한 사업을 독식하면서 여러 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또 "대학병원 교수가 정부 연구 용역사업을 하다보니 일차진료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일반건강검진에 적극 참여하는 개원의 중심 전문학회(대한검진의학회·대한임상순환기학회 등)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심포지엄에서 정영기 과장(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 건강증진과)은 "의학적 근거가 제시되면 검토를 통해 국가건강검진 항목과 검사 주기를 바꿀 수 있다"며 지질검사 주기가 다시 개선될 여지를 남겼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한국건강관리협회를 비롯해 일부 종합병원에서 수검자에게 전화와 우편을 통해 검진을 유도한다는 문제가 제기됐으며, 검진의학회는 개인정보보호와 환자 유인 행위 측면에서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또 당뇨병 확진법과 상이한 비만 진단기준, 보험급여화에 따른 심초음파의 실기 및 실제적용, 검진 사후 관리를 위한 최신지견(당뇨병, 성인예방접종, 위식도역류질환)도 다뤄졌다.
장동익 대한검진의학회 상임고문은 "개원가에서 당뇨병환자 2차 확진을 할 때 당화혈색소검사를 의무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