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협 "'조현병' 신중히 보도하고, 충분한 치료 기회 제공해야"
잘못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 있으나 마나한 '외래치료명령제'
잇따른 조현병 환자 살인 사건 보도에 대해 병원 의사들이 제동을 걸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29일 성명서를 통해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에 대한 무분별한 보도를 자중하고, 제대로 된 법 개정으로 필요한 환자들이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인천에서 조현병 환자가 한낮에 행인을 칼로 찔러 중태에 이르게 한 사건이 보도됐다. 인천 부평구에서 조현병 환자가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보도된 지 3주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3개월 전에는 경북 영양군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다쳐 사망했다. 비슷한 시기에 강원도에서는 정신과 진료실에서 조현병 환자가 의사를 흉기로 위협하고 기물을 파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협의회는 "반복적인 보도로 인해 국민들은 자신도 조현병 환자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최근에는 강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범죄자의 정신질환 병력을 우선 의심하고 조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규탄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전체 강력 범죄 중 조현병 환자의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0.04%에 불과하다"며 "조현병 환자들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다면 국민들이 우려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이은 보도에 의해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가 사실보다 부풀려지고, 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협의회는 이어 최근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인해 병원에서 입원해 치료받아야 할 조현병 환자들이 지역사회에 거주하며 사건, 사고의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짚었다.
정부는 2017년 5월, 전면 개정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면서 입원 요건은 까다롭게 하고 퇴원은 쉽게 했다.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인권을 향상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개정된 법률은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이면서 자·타해 위험이 있어야만 비자의 입원과 3개월 이상 계속 입원 치료가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협의회는 "의학적으로 자·타해 위험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측정 도구는 전무하다. 오로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판단에 의할 수밖에 없다"며 "그 판단이 존중되어야 충분한 기간을 확보 받아 조현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2차 진단의사, 입원적합성심사, 계속 입원심사를 거치면서 전문가의 판단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2018년 5월부터 전국적으로 '입원적합성 심사위원회'가 설치됐다.
협의회는 "기존 강화된 입원 요건에 추가로 입원 과정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절차상 문제점이 발견될 경우 주증상의 치료 완료 여부와 상관없이 퇴원명령이 내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신건강복지법에서는 퇴원 이후 환자 관리에 대해 '외래치료명령제'를 마련했다.
정신의료기관의 장이 입원 한 정신질환자 중 정신병적 증상으로 인해 입원 전 자신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한 사람의 경우, 보호의무자 동의를 받아 1년의 범위에서 시군구청장에게 외래치료명령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협의회는 "실제 현장에서는 보호자의 거부, 외래치료명령 대상자에 대한 관리 인력 부족 문제, 입원 중이 아닌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환자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등의 문제로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법조문"이라며 "반드시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퇴원해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보장하고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언론사에 조현병 환자와 관련해 공정하고 신중한 보도와 ▲정부에 적법하고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하고, 현실성 있는 치료 인프라를 구축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