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향 인정하지만 규제 일변도 정책 우려
"평가 투명성·혁신성 가치 인정 필수조건"
이달 초 공청회를 통해 정부의 의약품 사후평가에 대한 윤곽이 드러난 가운데 다국적제약사 측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등재과정을 간소화하더라도 사후평가에서 일방적인 약가인하가 이어진다면 규제뿐인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칫 신약의 매출원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이른바 '패싱'이 이뤄질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1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리얼월드데이터(RWD) 분석을 통한 사후평가 강화에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이 큰 것으로 보인다. 사후평가 강화가 세계적 경향임을 인정하면서도 이상적으로 제도가 운영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
공청회에서 공개된 사후평가 제도의 방향은 독립된 연구기관에서 등재된 신약의 임상 사용 결과를 분석하고 정부와 분야별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가칭 약제사후관리위원회가 의견을 결정하는 구조다. 건보공단은 이 의견을 들고 제약사와의 재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공청회에서 곽명섭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대한항암요법연구회의 연구용역에 시작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한 부분이 제약사의 수용성"이라며 "수용 가능한 제도를 만들어 합리적인 의약품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협신문>과 만난 강진형 항암요법연구회장(가톨릭의대 교수·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또한 "사후평가만 있다면 제약사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절차의 간소화를 통해 제약사에 등재에 대한 숨통을 어느 정도 트여줄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약 등재를 앞둔 제약사 측은 더 엄격한 약가규제가 이뤄지는 것이라는 우려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신약에 대한 혁신성 등의 가치가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국적제약사 관계자는 "등재가 현행보다 쉬워진다고 해도 제약사 입장에서 사후평가로 떨어질 약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방적인 약가 인하가 이어진다면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한국의 급여권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한국 시장은 작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후평가 강화는 세계적 트렌드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사후관리 강화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며 "다만 등재 과정의 속도와 약가 등에 대한 제약사 입장 고려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과정의 투명성도 중요하다. 공청회에서 정부와 연구진이 투명성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제약사에게 어느 정도의 자료가 공개될지, 어느 정도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며 "위원회에 제약계의 의견 반영 창구도 필요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업계는 사후평가의 첫 타깃을 면역항암제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공청회에서도 면역항암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고 약가를 크게 인하해야 한다는 학계의 의견까지 나왔다.
면역항암제 관련 제약사 관계자는 "공청회에서는 면역항암제에 대한 약가 조정 기준 설명이 부족했다"며 "일부 적응증에서 사후평가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전체 약가를 인하하는 것은 제약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제약사가 모두 감수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