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료법학회 17일 공동학술대회...'현대의학과 한방의료' 집중 분석
한방치료 힘든 면역·감염 질환, 상급병원 전원하지 않으면 '주의의무' 위반
한의학의 '미입증성, 비객관성'으로 인해 법적 책임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법조계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한의사의 진료 능력을 넘어섰음에도 상급병원으로 전원하지 않아 나쁜 결과를 초래하거나 선택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경우 여전히 주의의무를 비롯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데 무게가 실렸다.
대법원(법원의료법분야연구회)과 대한의료법학회는 17일 추계공동학술대회를 열어 한의사의 주의의무 범위와 판결 동향에 대해 집중 분석했다.
박영호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는 '한방의료에서 한의사의 주의의무와 판결의 동향' 주제발표를 통해 한의사들의 주의의무 위반 판례를 소개하며 '법'이 한의사에게 요구하고 있는 '주의의무' 수준에 대해 설명했다.
"한의사에게 의사 수준의 지식·기술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언급한 박 부장판사는 "한의사가 의사에게 요구되는 임상의학 수준의 의료행위를 못 했다는 이유로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법원에서 판단하는 한의사의 주의의무는 기초의학적인 수준이며, 임상의사 수준의 의무를 기대하기 어려운만큼 이에 따른 책임 또한 상대적으로 적다는 지적이다.
박 부장판사는 "서양의학의 경우 의료감정 결과나 사실조회 등을 통해 다른 자료들을 직접 대조하고 비교할 수 있지만 한의학은 전반적인 자료와 한방의료 감정에 한계가 있어 법적 실무에 많은 애로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대법원은 한의사가 당뇨병 환자에게 침과 사혈 등의 행위 이후 괴사가 발생한 사건에서 형사상 업무상 과실행위가 아니라고 판결(2013도16101, 2014년 7월 24일 선고)했다.
이 사건의 사실조회에서 대한한의사협회는 "당뇨병력이 있는 당뇨병성 족병변에 대해 침을 놓거나 사혈을 하는 것이 금지하지 않고 있다면 다만 너무 강하게 찌르거나 너무 깊게 찔러 상처를 크게 하거나 조직을 손상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박 부장판사는 "의학계에서는 당뇨발 환자에게 침을 놓은 게 잘못이라는 입장이지만 법원은 한의협의 사실조회를 근거로 일반적인 한의사의 주의정도를 표준으로 했을 때 당뇨 병력이 있는 피해자에 침을 놓거나 사혈을 한 행위 자체만으로는 어떠한 과실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한의사의 의료과실 판단 기준은 양의사가 아닌 한의사의 주의정도가 표준이 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2010도10104, 2014년 7월 24일 선고)를 들었다.
다만, 의사와 한의사가 함께 진료하는 한방 협진병원의 경우 기존 한방 의료기관에 비해 더 높은 기준의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부장판사는 "환자들은 한방협진병원을 선택할 때 더 높은 기대를 하고 간다. 단순한 한의원보다 높은 엄격한 기준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방협진병원의 경우에는 많은 판례에서 좀 더 빠른 시기에, 같은 병원 내에 있는 현대의학의 협진을 받거나 빠른 시일 내에 상급병원으로 전원하지 않으면 과실을 인정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의학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2006다41327, 2006년 12월 21일 선고)은 전문지식 없이 루프스와 다발성 경화증 환자에게 스테로이드 복용을 중단시킨 채 한약을 복용·처방케 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한의사는 루프스와 다발성 경화증 및 스테로이드제에 대한 의료지식이 부족했음에도 독자적인 판단으로 약 중단으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치 않은 채 복용을 중단시켰고, 면역 억제가 필요한 증상의 환자에게 면역 증강 효과가 있는 약재를 복용시켰으며, 경과 관찰이나 증상 악화의 원인 파악 및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전문적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전원조치를 지체했다"면서 한의사의 과실을 인정한 판례를 소개했다.
박 부장판사는 "면역질환은 한방 고서에 치료법이 없고, 의학계에서도 최근에서야 치료법이 등장했다. 감염 또한 마찬가지다. 균 배양검사 자체를 한방에서는 할 수 없고, 무슨 균인지도 못 밝힌다"면서 "한의학 자체의 제약이고, 한계가 있다. 전통한의학에서 벗어나면 그게 전통한의학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전선룡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의료행위는 기본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높은 주의·설명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면서 "봉독 약침 의 경우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이다. 한의학 역시 환자의 생명에 직결되는 분야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의료인으로서 더 높은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안압측정기 등 5종 현대의료기기를 한의사에게 허용한 2012헌마551결정'을 근거로 한의사가 자동혈액검사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한 데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하며 법원이 바로잡아 줄 것을 요청했다.
전 법제이사는 "의사가 전문의가 되려면 13∼15년이 걸린다. 그렇게 해도 혈액검사 등 판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검사 필요 여부에 대한 판단 자체도 어려운 부분"이라며 "의사들도 전문분야가 아니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한다. 하물며 한의사들이 어떤 환자에 어떤 검사가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판독을 어떻게 하겠냐"고 반문했다.
판사가 판결하듯 보건복지부가 유권해석을 하는 데 대해 법원이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전 법제이사는 "보건복지부는 법률전문가도 아니고, 의학 전문가도 아님에도 한의사가 자동혈액검사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하거나 현대의료기기 사용 여부를 판단하려 하고 있다. 판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안압측정기 역시 마찬가지다. 헌재는 안과 의료기기 사용 여부에 대해 안과학계의 의견을 전혀 묻지 않았다. 법원이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의사 3명을 법정 구속한 데 대해서도 문제점을 짚었다.
전 법제이사는 "현재 의료계에서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했음에도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의사 3명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사건으로 난리가 났다. 이런 식이면 누가 응급의학을 하겠는가"라며 "의사가 면책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법원의 반의사적인 판결 기류가 있는 것은 심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김교웅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플로어 발언을 통해 "똑같은 의료행위에 대해 한의학적 판단을 따로 해서 주의의무가 달라진다고 하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한다. 똑같은 부작용을 나타냈음에도 의사면허, 혹은 한의사면허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주의의무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현대의학과 한의학을 '다르다'는 관점에서 논의할 게 아니라 '맞다, 틀리다'거나 '옳다, 그르다'로 접근해야 한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직결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부장판사는 "법원 입장에서 맞고, 틀리다를 말할 수는 없는 정책적 부분이다. 법원은 행정관료가 아니다. 법에서 의료행위 자체가 신체 침습을 요하는 것이다. 의료에 대한 법리에 대한 근거를 가지고 판단한다. 진단까지는 문제가 되겠지만 침습이 없는 경우다. 자세한 판단은 인과관계에 대한 사건별 입증책임의 문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