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백(VBAC) 분만 신생아 '식물인간'...의료과실 불인정
서울고법, 의사 직접 설명해야...2500만 원 배상 판결
간호사가 환자에게 아무리 잘 설명했다 하더라도 진료의사가 직접 설명하지 않은 이상 설명의무 위반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브이백(Vaginal Birth After Cesarean section, VBAC) 방식으로 분만을 시도하다 신생아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사건에서 "브이백 시행 결정 당시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브이백 분만방법을 잘못 선택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처치 의사와 병원이 설명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산모에게 위자료 2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브이백 분만은 제왕절개로 출산한 경험이 있는 산모가 자연 분만으로 아기를 낳도록 하는 시술.
사건은 약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산모는 2013년 7월 25일 D병원에 내원, 임신 초기 진단을 받고, 지속적으로 E의사에게 산전 진찰을 받았다.
임신 39주인 2014년 3월 27일 새벽 6시 30분경 양수가 새어 나오고 조기진통이 발생하자 오전 7시 30분경 D병원에 내원했다.
내진 결과 자궁경부 개대 정도가 3㎝, 자궁경부 소실도가 90%로 확인되자 분만을 위해 입원했다. E의사와 F간호사는 오전 8시 8분경 태아 감시 모니터 장치(NST)를 부착하고, 오전 8시 30분경부터 시간당 20cc의 옥시토신을 투여했다.
F간호사는 E의사의 지시하에 오전 9시 10분경부터 10시 30분경까지 경막외 마취(무통 주사)를 시행했다.
하지만 오전 11시부터 태아 심방동이 지속해서 하강, 11시 3분경부터 60회/분 정도에 머무른 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F간호사는 옥시토신 투여를 중단하고, 수액을 투여했다. B산모에게는 좌측위 자세를 취하도록 하고,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하지만 태아 심박동이 회복되지 않자 E의사에게 응급상황을 알렸다.
E의사는 오전 11시 15분∼20분경 자궁 파열을 의심, 응급 제왕절개술을 결정했다. 오전 11시 28분경 제왕절개술을 시작, 오전 11시 32분경 C신생아를 분만했다. 당시 심장박동수는 60회/분 이하, 산소포화도는 50% 이하였으며, 사지 창백·헐떡 호흡과 함께 근 긴장도가 떨어짐을 확인했다.
의료진은 C신생아에 양압 환기와 가슴 압박을 시행했으나 심박동이 회복되지 않았다. K마취통증의학과 의사는 오전 11시 38분경 기관지 삽관에 이어 양압 환기와 가슴 압박을 시행했다.
C신생아는 2014년 6월 20일 D병원에서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 흡인성 폐렴, 뇌경색증 등의 진단을 받았다. 현재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다.
B산모는 당시 자궁하절이 횡으로 6∼7㎝ 파열됐다. 이로 인해 앞으로 출산 시 자궁 파열 가능성이 있는 상태로 진단됐다.
B산모의 남편인 A씨는 분만방법 선택·옥시토신 투여 및 응급제왕절개술 결정·시행상에 대한 과실 등을 이유로 D 병원과 E의사, F간호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의료진이 ▲산모의 자궁파열 위험 증가요인 등을 확인해 신중히 브이백 시도를 결정해야 할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 ▲옥시토신을 투여하는 경우 자궁 파열의 위험성이 증가하는 점을 고려해 자궁 수축 정도를 평가하지 않은 점 ▲자궁파열 위험에 대비한 경과관찰을 소홀히 해 응급제왕절제술 결정·시행을 지연한 점 ▲제왕절개·브이백 시도의 이점·위험 등에 대한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수술 결정·경과관찰 등에 대해서는 의료진의 과실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브이백 시도 시 개별 산모에게 자궁파열이 발생할지 여부는 예견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점 ▲B 산모와 남편 A씨가 브이백 출산 의사가 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브이백 시행 결정 당시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려운 점을 들어 "브이백 분만방법을 잘못 선택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옥시토신은 자궁파열 발생 위험을 4배 정도 높인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집중 감시하에 분만 유도 및 분만 진통 증가를 위해 태아 곤란증 또는 자궁파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사용할 수 있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재판부는 "브이백 시술 시 옥시토신을 이용한 분만이 임상의학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에 비춰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자궁파열은 브이백의 대표적인 합병증으로 결과만으로 옥시토신이 부적절하게 투여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NST 등 경과 관찰은 의사의 위임을 통해 간호사가 시행할 수 있는 업무"라고 밝힌 재판부는 "반드시 담당 의사가 직접 관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진료기록을 검토한 감정의들 간에 '자궁파열 시점'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지만, 재판부는 E의사가 오전 10시 26분이 아닌 11시경 자궁파열을 진단한 시점이 늦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는 환자 측 주장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산모가 간호사이고, 산전 진찰 과정에서 먼저 의사에게 브이백 의사를 밝힌 점은 인정했지만 "산모가 브이백의 위험성, 반복적 제왕절개술과의 차이점에 대해 의사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구체적·상세히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간호사인 F씨는 브이백 과정에서 자궁파열, 출혈이 발생해 산모나 태아가 사망할 수 있고, 브이백 이외에 제왕절대수술이 가능함을 설명하고, 남편 A씨에게 시술 동의서 서명을 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설명의무는 원칙적으로 당해 의료행위를 담당하는 처치 의사가 부담하고, 브이백은 의사의 지시·감독하에 이뤄지는 전문적 의료행위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간호사의 설명 이행으로 E의사의 설명의무 이행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다만, 남편인 A씨나 C신생아에게까지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E의사는 설명의무를 위반한 불법행위자로, D 병원은 E 의사의 사용자로서 공동해 B 씨에게 2500만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