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람시 읽기'를 감히 권하며 (상)

'그람시 읽기'를 감히 권하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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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2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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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없다...'점진적인 변화'만 있을 뿐

머리도 나쁘고 읽은 책도 변변치 않은 필자가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인 의사 선생님들에게 "어떠어떠한 책을 읽기를 권한다" 이야기하는 것이 주제넘은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칼럼 연재를 요청하면서 의협신문에서 요구했던 것도 "(귀하의 전공인 역사든 뭐든) 인문학적 내음이 나는 글을 기고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의사 선생님들에게 정말로 하고픈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첫 회는 이 글로 시작한다. 아주 짧게 의협에서 공보와 홍보이사를 하는 동안 느꼈던 아쉬움을 풀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년).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다가 감옥에서 사망한 공산주의자이다. 그람시에 대한 기본 정보는 각종 포탈 사이트에 상세히 적혀 있으니 필자가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데, 공산주의자의 사상을 알아보라니? 필자 당신, 빨갱이?

대상이 빨갱이든 뭐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그람시에게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진지전(war of position)' 혹은 '헤게모니 이론'이다.

그의 주장은 그가 평생 가진 의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의 주장을 아주 단순화시켜서 설명해 보자.

그의 의문은 '사회주의 혁명이 왜 러시아 같은 후진국에서 발생하고, 서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발생하지 않는가'였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먹고 살만한 노동자들이 자본가를 비롯한 지배계급의 논리에 푹 빠져 살기 때문'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교육과 문화, 언론이었다. 

당시까지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이를 '상부구조'라고 규정한 뒤 경제적 부분, 즉 '하부구조'만 바뀌면 상부구조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상부구조 하부구조가 복잡하게 느껴진다면, 의사 선생님들답게 상부구조는 병소-病巢. 국립국어원은 이를 '병터'라는 쉬운 단어로 쓸 것을 권하고 있다-, 하부구조는 병의 근본 원인 정도로 생각하셨으면 한다.) 

한데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에 지대한, 아니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즉 하부구조를 장악한 지배계급이 상부구조까지도 손에 넣은 뒤 자신들의 지배 논리를 노동자 등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전파시키고 있으며(=헤게모니의 장악), 이로써 하부구조 유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년).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다가 감옥에서 사망한 공산주의자이다.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년).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다가 감옥에서 사망한 공산주의자이다.

이를 깨부수기 위해 그람시가 제시한 것이 '진지전'이다.

서유럽 같은 발달된 나라에서 러시아처럼 하루아침에 혁명이 일어날 리가 없다. 오히려 문화나 교육, 언론 분야에서 '진지'를 구축한 뒤 서서히 나라를 사회주의화시켜야 한다.
그람시의 주장은 기실 서유럽의 전쟁사, 혹은 혁명사와도 맥이 닿아 있다. 

페니키아의 명장 한니발이 지중해를 건너 로마를 휩쓸고 다닐 때, 로마 장군 파비우스는 전면전을 펼치기보다 지구전을 펼치며 페니키아 군대의 힘을 빼는 것에 주력했다.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니발을 궁극적으로 패배시킨 것은 파비우스의 후배였던 명장 스키피오였지만, 후대의 역사가들은 파비우스 역시 높게 쳤다. 19세기 말,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이 아닌, 점진적인 발전'을 주장하면서 '파비안 협회'를 창설했을 때, 협회 이름을 파비우스의 이름으로 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람시의 주장은 20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 등의 서유럽 좌파들이 대대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 역시 그람시의 영향이 적지 않다.  

예를 들자.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모든 것을 독식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나라이다. 김영삼 대통령 이후 대통령은 좌-우파가 골고루 나눴다.

그런데 미래 세대의 우리나라를 책임질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선의 교사이고 교과서이다. 요즘 한국사 교과서 근현대사 부분을 읽어 보신 적이 있는가? 20세기 중반기 이후 남과 북이 어떻게 묘사돼 있는지 아시는가? 교사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집단이 어디인가? 시도 교육감의 좌-우파 분포를 생각해 보신 일이 있는가?

영화 분야를 보자. 맥아더를 영웅으로 묘사한 '인천상륙작전'이나 20세기 중반기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과 발전으로 묘사한 '국제시장', 혹은 북의 침략에 단호히 맞선 연평해전의 영웅들을 묘사한 '연평해전'에 대해 대부분의 영화 평론가들이 어떤 평을 내렸는지 살피신 적이 있는가? 이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였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이 주인공인 '변호인'이나,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택시운전사'에 대한 영화 평론가들의 평은?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교육이나 문화 분야에서 좌-우파 구도는 '일방적'이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 구도가 지속되는 한, 우파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본다.

설령 우파가 대통령직을 탈환한다고 해도, '자유와 경쟁'을 강조하는 우파적 논리보다는 '평등과 복지'를 강조하는 좌파 논리 속에서 행정을 이끌 확률이 높다. 나라가 '퍼주기'로 심각한 위험에 처하지 않는 한….

그람시를 이야기하다가 우리나라 교육과 문화의 좌우파 구도를 이야기한 이유를 이제 눈치 채셨을 것이다. 

 

발전된 사회에서 하루아침에 뭔가가 바뀌는 '혁명'은 없다, 아니 드물다. '점진적인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내 자신이나, 내가 속한 집단이 사회적으로 힘을 갖고 점진적인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그람시의 표현처럼 '진지'를 만들고 주변인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설득한 사람이 많아질 때 나는 '헤게모니'를 장악한 사람 혹은 세력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대중 민주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 대중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최고 최후의 수단은 선거이다. 대입 시험에서 최고득점군을 형성하는 의사 선생님들도 한 표를 행사하고, 필자처럼 돌머리도 한 표를 행사한다. '똑똑한 사람의 한 표'보다 '필부필부의 99표'가 더 힘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 의사 선생님들에게 눈을 돌려보자.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은 "의사가 힘들다"고 필자에게 이야기했다. '의노'(의사 노예)라는 표현도 썼다. 신용불량자도 많다고 했다.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 여기서 다 옮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묻자. 의사 선생님들이 지난 해(2018년) '급격한 수가 인상'(의사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온당한 수가 인상'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급격을 넘어 '과격' 수준이었다.)을 들고 나왔을 때, 보건복지부가 바로 내놓은 반박성 홍보자료는 '의사들, 평균 월급 1304만원, 정규직 노동자의 4.6배'였다. 그 통계에 의사들이 '수치적'으로 반박하는 것을 필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저 "우리들이 얼마나 공부했고, 고생하는데…"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들인 귀하들이 일반직 노동자들보다 4.6배를 더 버는 것이다. 한데 그것이 모자란다는 이야기인가? 변호사 평균 월급이 700만 원 정도인 사회에서?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1984년, 서울대 의대 학력고사 커트라인은 340점 만점에 305점 정도였다. 이과에서, 그 위로 물리학과 제어계측과 전자공학과 등 숱한 과가 포진하고 있었다. 연세대 의대는 전국에서 6000등대 정도면 어렵지 않게 들어갔다. 다른 의대는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요즘은 어떤가? 전국에서 6000등 정도면 대입 정시에서 꼴찌로라도 그 어느 의대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속칭 '빵꾸'가 나지 않는 한…. 서울대 이과 커트라인과 꼴찌권 의대의 정시 성적을 놓고 입시 커뮤니티에서는 '어디가 높으니 낮으니…' 이야기한다. 필자 때와는 정말로 달라진 풍경이다.  

왜 이리 됐을까? 대입 커트라인은, 특정 직업의 장래 전망에 대해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는가를 표상한다. 서울대 사학과 입학생 평균점수가 서울대 법대보다 높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는 역사가보다는 법률가에 대한 사회적 대접이 항상 좋았기 때문이다. 

의사 역시 마찬가지. 이 사회가 의사의 직업 전망을 좋게 보지 않는다면, 의대가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공부 잘하는 자기 자식들의 의대 입학을 학수고대한다. 그럼에도 의사들만 '의사 직업이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한데 정말로 쓴웃음이 나는 건, 의사들이 자기 자식들 공부 잘해서 '성적만 되면' 대부분 의대에 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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