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들, 프로필 사진 좀 바꿉시다!

의사 선생님들, 프로필 사진 좀 바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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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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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선, 자화상 한 점 감상하시라.

국보 제240호. 종이 바탕에 담채. 세로 38.5㎝, 가로 20.5㎝. 윤두서 자화상은 상용형식이나 표현기법 등에서 특이한 양식을 보이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의협신문
국보 제240호. 종이 바탕에 담채. 세로 38.5㎝, 가로 20.5㎝. 윤두서 자화상은 상용형식이나 표현기법 등에서 특이한 양식을 보이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의협신문

자화상을 감상하는 이와 눈싸움이라도 하는 듯한 형형한 눈빛, 수염 터럭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세밀한 묘사, 이마 윗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린 파격적 구도….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 후기 '3재'로 불렸던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이다. 죽기 5년 전인 1710년에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장면에서, 26세에 진사시에 급제했으나 남인의 정치적 몰락과 더불어 더 이상 과거(정확히는 대과 大科)에 응시하지 않고 문인이자 화가로서 평생을 살아간 윤두서의 일생을 떠올리면서 "유복했으되, 정치적으로는 몰락한 남인 선비에게서 보이는 비장미" 운운하지는 말자. 미술 감상에서 가장 나쁜 습관은 지식이라는 선입견으로 작품을 대하는 것이니까….(여기서 사족 하나. 공재 시절, '과거'는 생원시와 진사시로 구분되는 소과(小科)와, 우리가 일반적으로 '과거'라고 부르는 대과로 분류됐다. 생원시는 유교 경전에 대한 지식을 묻는 것이고, 진사시는 문학적 소양을 겨루는 것이었다. 생원이나 진사에 붙어야 성균관에서 공부한 뒤 대과에 응시할 수 있었다. 

최근까지 있었던 사법고시에 20대 초반에 붙은 사람도 있었으니, 공재가 26세에 진사시에 붙은 것이 늦은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산이다. 평생을 공부해도 붙기 힘든 게 과거였다. 33명만을 뽑는 시험이었으니까…. 조선 후기 천재로 꼽히는 정약용(윤두서의 외증손이다)이 진사시에 붙은 때가 22세였으니, 공재가 늦은 나이에 진사에 붙었다고 볼 수는 없다.)  

말년의 공재 자화상에서 비장미가 보였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을 느꼈든, 아니면 표표(飄飄)한 선비의 자유로움을 보았든 그것은 감상자의 몫이다.

공재는 '나물 캐는 여인' '짚신 삼기' '밭가는 풍경' 등 조선 후기 풍경화의 서막을 여는 작품에서부터, 자화상 뺨치는 세밀한 묘사가 특징인 말(馬) 그림 등 숱한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공재 사후 300년이 넘도록 그를 표상한 것은 이 자화상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파산한 천재, 세상을 초탈하다

이제 눈을 돌려 어느 서양화가의 자화상을 보자.

17세기 거장 렘브란트의 말년 자화상. 죽기 1년 전인 1668년 그린 그림이다 ⓒ의협신문
17세기 거장 렘브란트의 말년 자화상. 1662년 그린 그림이다 ⓒ의협신문

번쩍이는 금빛 터번과 휘장이 우선 눈에 들어오지만, 노인의 웃음에서는 왠지 초탈이나 냉소가 읽힌다. 예술가로 한 때 세상에 군림했던 자의 오만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y of vanities ; all is vanity)라는 구절이 떠오른다.(성경 전도서 1장 2절)

누굴까, 이 작품의 주인공은? 17세기 네델란드 예술 황금기를 이끈 렘브란트(1606∼1669)이다. 

잘 나아가던 화가였지만 무분별한 씀씀이로 파산한 뒤 사랑하는 아내 헨드리케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662년에 그린 그림이다.(첫째 아내 사스키아는 1642년 사망했다.) 

그에게 '가족 복(福)'은 없었다. 첫째 아내에게서 낳은 두 딸과 두 아들 중 막내 아들인 티투스(1641년생)만이 성년이 됐지만, 그 역시 아버지인 렘브란트보다 1년 일찍 사망했다. 

그가 남긴 작품 가격은 다락같이 높지만, 막상 그의 유해는 이 세상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두 아내와 자식을 잃고 빈털터리로 죽은 렘브란트는 교회 소유지인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매장 20년 뒤 유골이 수습돼 어딘가에 버려졌다. 당시 가난한 이들의 매장 풍습은 그랬다고 한다.

이 자화상은 서기 전 5세기 그리스의 유명한 화가였던 죽시우스(Zeuxis)의 이름이 애칭처럼 붙어 다닌다. 죽시우스는 사실주의적 기풍으로 이름이 무척 높았다고 한다. 포도를 그리면 새들이 날아와 부딪힐 정도였으니까….

(여기서도 사족 하나 더. 죽시우스가 포도를 들고 있는 소년을 그렸더니 새들이 포도를 따 먹으려고 날아들었다. 죽시우스는 매우 불쾌해 한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소년을 더 잘 그렸어야 했어. 그랬다면 새들이 무서워서 날아오지 못했을 텐데…." 신라 화가 솔거가 소나무 그림을 그리면 새들이 날아들었다는 '솔거와 노송도'류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데 이 그림을 왜 '죽시우스'라고 부르느냐고? 어느 날, 죽시우스에게 한 노파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한데 그는 자신을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처럼 그려달라고 했다. 죽시우스는 그 부탁이 하도 황당해서 웃다가 죽었다. 

죽시우스의 웃음은 황당함 때문에 터진 것인데, 왜 사람들은 렘브란트의 웃음을 그에 비유했는지 알 수 없다. 필자의 과문 탓이겠으나, 적어도 필자 눈으로는 이 자화상의 웃음에서 황당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어찌됐든 이 자화상 역시 350여 년을 살아남아 말년의 렘브란트를 우리에게 웅변한다. 물론 그의 웃음에서 냉소를 읽든, 예술가로서의 여전한 자부심을 읽든 하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다. 그의 자화상은 100여 점이 남았으니, 하나하나 나잇대 별로 비교해 가면서 변화를 감상하는 것도 재밌는 일이 될 것이다.

 

현대인의 자화상, 소셜 미디어의 프로필 사진

자화상은 이처럼 예술가의 내면을 오롯이 보여주거나 비춘다.

때문에 자화상 그리기는 숙련된 그림 솜씨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까지도 화폭에 담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장르이다. 동양화에서 높게 치는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형상을 그대로 그리는 것 뿐 아니라(=사조) 그리는 대상의 내면까지도 담아야 한다.(=전신) 그래서 자화상 그리는 것은 어렵다.

한데 요즘에는 자화상을 손에 넣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면 된다. 셀프 카메라(영어로는 selfie. 이하 '셀피')의 등장 때문이다. 물론 카메라의 등장으로도 자화상을 손에 넣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됐다. 그래도 예전 카메라로는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놓은 뒤 타이머를 맞춰 놓고 부리나케 사진 화면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수고라도 해야 했다. 물론 비싼 필름도 사야 했고. 요즘은 성능 좋은 휴대폰에 셀카봉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사람들은 자화상을 예전처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뻑하면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 소셜 미디어 계정의 프로필 사진이 자주 바뀌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필자는 불만이다. 자화상이란 내면을 형상화시켜서 드러내는 최고이자 최후의 수단이다. 때문에 소셜 미디어에 오른 프로필 사진은 내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지난 해 4월부터 의협에 몸을 담은 이후 의사 선생님들과 소셜 미디어에서 소통하는 일이 잦다. 그 때마다 나는 선생님들의 프로필 사진을 유심히 살핀다.  

어느 경치 좋은 곳에서 폼 잡으며 웃고 있거나, 어린 자녀와 함께 촬영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선생님들은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도 계셨고…. 순직하신 임세원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근조'라는 리본을 올리신 선생님들도 요즘은 많다.
물론 이런 프로필 사진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순직하신 임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근조 리본으로 프로필 사진을 대신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의사의 역할이나 지위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사회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에 눈을 돌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사들은 '의노' 즉 '의사 노예'라는 표현까지도 불사하며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푸대접 받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의사들의 사회적 희생'을 이야기하는 의사 선생님들도 부지기수다. 이러니 '붉은 머리띠'를 두른 의사 선생님을 보는 게 어느덧 낯설지 않다.

반면, '스카이 캐슬'이라는 인기 드라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일반인들에게 의사는 '꿈의 직업'이다. 수능 최상위권이 몰려가는 곳은 예전처럼 물리학과가 아니라 의대이다.

표로 먹고 사는 정치인은 당연히 다수에게로 향한다. 표가 거기에 있으니까…. 수가를 높이자고? 그랬다가 집권 여당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확 떨어지는데? 좌파 정부든 우파 정부든 집권당으로서는 들어줄 수 없는 게 '의사 선생님들이 요구하는 만큼'의 수가 인상일 것이다.

싸움의 향배는 결국 누가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휘어잡느냐에 달려 있다. 중우정치, 대중추수주의라고 아무리 욕해도 어쩔 수 없다. 헌법에 위배되는 '지식인 독재'를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근대화에 늦었던 우리나라에서조차 신분제가 폐지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인 1894년 갑오경장(요즘은 '갑오개혁'이라고도 부른다) 때였으니까!

누군가를 설득해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 논리만으로 되는 일이라면, 서울대 본고사나 학력고사, 혹은 수능시험 수석 출신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할 터이다. 한데, 서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해서 사법고시 등을 붙은 사람이 대통령 되는 것을 본 일이 있나? 김영삼 대통령 이후 상고 출신 두 분에, 고려대와 서강대 출신, 경희대 출신이 대통령이 됐어도 서울대를 최고 성적으로 입학-졸업한 이가 대통령이 된 일은 없다. 

솔직히 김영삼 대통령은 서울대에서 커트라인이 낮은 문사철(文史哲) 계열 졸업자이다. 더 자세하게 말했다가는 죽은 분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서울대 청강생 논란'까지 일었을 정도였다.(물론 사실이 아니라고 서울대는 공식적으로 밝혔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에….)

필자는 김 대통령이 서울대 법학과 출신이었다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졸업한 이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희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출신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논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 그리고 좌파든 우파든 서울대 출신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그늘과 주름진 삶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그 단점을 아쉽지만 대한민국의 적지 않은 의사 선생님들에게서도 필자는 읽는다. 의사 선생님들의 소셜 미디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한탄의 하나는 '국민의 민도' 혹은 '국민의 품격'에 대한 것이었다. 한데, 의사 선생님들도 대한민국 국민의 구성원임을 잊지 마시기를 권한다. 의사 선생님들의 생각조차도 '내로남불'일 수 있음을 고민해 보시라는 것이다.
생각을 바꿔보자고 권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국민이 의사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의사 선생님들이 국민을 먼저 이해하기 위해 다가가는 것은 어떨까?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강해도, 아픈 사람은 누군가가 돌봐줘야 하는 약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만큼 약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없다. 병의원을 찾는 모든 이들은 약자이므로….

결국 의사는 약자에게 박수 받기 쉬운 직업이라는 뜻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직업 신뢰도를 조사하면 간호사 다음으로 의사가 수위권에 꼽히는 것은 이런 까닭일 것이다. 2015년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 조사에서도 의료계가 직업 신뢰도 1위에 꼽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수가 인상을 둘러싸고 최근 의협은 파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투쟁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의사가 아닌 필자로서는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도 없지만, 의욕도 없다. 그간 숱하게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으니 여기서 다시 중언부언 반복하고픈 생각이 없다. 

 

환자와 함께 울고 웃는 의사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싶다

다만, 대외적인 홍보 차원에서라도 '국민에게 먼저 다가가는 의사'의 모습을 전략 전술적인 차원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보였으면 한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을 외치는 의사 선생님의 모습도 좋고, '근조'라고 적힌 리본을 단 의사 선생님도 훌륭하지만, 환자와 울고 웃는 의사 선생님의 모습을 의도적으로라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의협과 관련을 맺으면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이후 지금까지 듣거나 보았던 것 중 가장 쟁쟁하게 귀에 울리는 말이 있다. 백혈병을 이겨내고 금년도 수능에서 만점을 받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김지명 군이 어머님의 말이다. 

"(지명이가 서울대 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을 때 레지던트 선생님이) 암 치료의 부작용 때문에 지명이 키가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면서 우셨습니다. 정말로 고마운 분입니다."(조선일보 2018년 12월 6일자 기자수첩 중)

그 어떤 논리적인 이야기보다 김 군 어머님의 이 말씀이 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사랑, 존중을 일으킬 것이라고 본다. 의사가 정부와 싸움에서 궁극적으로 이기는 길은 이런 감성을 대중에게, 국민에게 봄꽃처럼 피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 첫 단계로써…. 의사 선생님들의 자화상인 소셜 미디어의 프로필 사진부터 바꾸시면 어떨까? 환자와 함께 한 사진으로 말이다.

필요하다면 연출을 아주 약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환자복을 입으신 분과 웃으며 차 한 잔 나누는 사진은 어떤가? 환자복을 입은 청소년과 핸드폰 모바일 게임을 함께 하는 장면은? 뭐 몇 걸음을 확 더 나아가서 젊은 의사 선생님이라면 청소년 환자와 수학 교재를 함께 푸는 장면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못 풀어도 그만이다!) 휠체어를 탄 환자분을 뒤에서 밀어줄 수도 있을 것이고…. 환자분 여럿과 어깨동무를 한 사진도 좋고…. 낯이 부시다고? 그런 식이면 전 세계 모든 정치인의 사진은 연출과 조작 투성이일 것이다. 

머리 숙여 말씀 올린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논리보다는 감성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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