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ICT 규제 샌드박스' 국민건강 외면
의협 "원격의료·의료영리화 야욕 버려야"
정부가 ICT규제샌드박스에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서비스를 포함하자, "의료영리화와 원격의료를 허용한 것"이라는 의료계의 날선 비판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는 18일 성명을 통해 "정부는 원격의료 추진에 대한 야욕을 버리고 의료영리화 정책추진을 중단하라"며 "제1차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 심의 결정을 전면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4일 제1차 신기술·서비스 심사위원회를 열었다. 이날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서비스'가 ICT 분야 규제 샌드박스 1호로 선정, 조건부 실증특례를 받았다.
의협은 "정부의 규제 특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강력 반대 의사를 밝혔다.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 활용 심장관리서비스'=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서비스는 의사가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착용한 심장질환자로부터 전송받은 심전도 데이터를 활용, 내원 안내·2차 의료기관으로의 전원 안내가 가능하다. 의료기기업체 휴이노와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이 실증특례를 신청했다.
의협은 "보건복지부는 이번 서비스가 단순히 병원 내원과 타 병원 안내만 하는 것이어서 원격의료가 아니라고 하지만 의사가 심전도를 판독하고, 병원 내원 여부를 결정해 환자에게 안내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의사의 의학적 판단과 소견이 바탕이 돼야 가능한 원격의료"라고 지적했다.
"환자는 병원 내원 요청 사유에 대한 문의 및 설명을 요구할 것이다. 이에 대한 의학적 판단과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런 과정과 의학적 소견도 없이 기계적으로 전원 안내만 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해명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의협은 "보건복지부는 심장질환자의 심전도 데이터를 의사가 24시간 모니터링하지 않고, 축적된 데이터를 일주일에 한 번 확인해 단순히 내원을 안내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심전도 체크를 실시간으로 진행하고, 본인 상태를 의사가 인지·안내해 줄 것으로 판단할 소지가 높다"고 짚었다.
기기의 단순 오류로 인해 정확한 진단과 조치를 받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의협은 "흉통이 발생한 환자의 경우 즉각적인 의사의 조치가 없기 때문에 건강상의 문제가 없다고 인식할 수 있다. 진단과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며 기기의 단순 오류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의료사고의 책임소재가 불명확한 점도 짚었다.
의협은 "모든 위험을 환자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환자는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상태가 더욱 악화되는 결과만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허가·인증 안 받은 의료기기 허용, 민간기업 이익 우선시한 것"
의협은 정부가 손목시계형 심전도 측정 장치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 인증을 받도록 조건을 부가한 점을 들어 "아직 허가나 인증도 받지 않은 의료기기를 추후 인증받는다는 전제하에 허용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고려치 않고 민간기업의 이익만을 우선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전성 및 유효성 검증이 안 된 기기에 환자가 25만 원 내외의 비용을 부담토록 하고, 의료기기업체가 환자의 심장 데이터 정보를 보관·전송·관리하는 과정에서 질병 및 신체 정보 등을 집적하거나 이용할 수 있게 한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의협은 "국민에게 비용 부담만 가중시키고, 민간기업의 이익만을 극대화시키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환자 정보를 수집한 민간업체가 환자 정보를 이용해 동 사업 범위 외적으로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보험 등 다른 의료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의료영리화 등 의료시장의 왜곡을 일으켜 많은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밝힌 의협은 "민간 기업체가 환자 정보를 바탕으로 원격의료 및 질병관리서비스 등을 확대·추진하는 것은 의료민영화를 위한 단초가 될 수 있다. 의료시장의 거대 민간자본 유입으로 의료체계의 왜곡뿐 아니라 국민 건강 및 안전시스템마저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료계 철저히 배제된 위원회 구성…의학적 안전성·유효성 판단 불가"
IRB(의학연구심의위원회)는 인간을 대상으로 윤리적·과학적 방법으로 실시하기 위한 연구의 중요사항을 심사하는 독립·의결 기구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시험은 사전에 IRB 검토를 받고 승인을 받아 진행해야 한다.
의협은 "동 사업은 IRB(의학연구심의위원회) 승인이 필요한 사업이다. 환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자의 심전도 정보 활용에 따라 의료기관 전원을 허용하는 연구내용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논의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협은 의료계가 배제된 위원회 구성에 따라, 의학적 판단이 결여됐을 것이란 판단했다.
"심의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정부가 실질적인 논의과정에 철저히 의료계를 배제했음을 알 수 있다"며 "심장질환자에 대한 의학적 판단 및 서비스의 의료적 안전성 및 유효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정책 결정 과정은 의학적 안전성뿐 아니라 국민 건강을 도외시한 채 결정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의료를 민영화·상업화로 가기 위한 과거 정부 행태와 똑같다고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의협은 "제1차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 심의 결정사항을 전면 철회하라.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부처의 역할을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하라"고 강력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