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침 항암치료 환자 사망...한의원 치료비 전액 배상 판결
재판부 "항암치료 효과 전혀 없어...의학적으로 부적절" 판단
한의원에서 직접 조제한 산삼 ○○약침이 항암 효과가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한의원에서 약침으로 항암치료를 받다 사망, 환자 가족이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산삼에서 추출한 진세노사이드 성분의 약침은 함량이 치료 효과가 없을 정도로 적고, 간암을 비롯해 다른 암에도 별다른 효능이 없다"면서 치료비 전액과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14일 판결했다.
A씨는 2012년 4월경 B병원에서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C대학병원도 같은 진단을 내리면서 가족과 상의해 항암치료 여부를 결정하라고 안내했다.
A씨의 인터넷을 검색하다 D한의원 홈페이지에서 자체 개발한 약침(진세노사이드 Rg3, Rh2, compound K 성분)이 종양세포의 자연 사멸을 유도해 항암 효과는 물론 암세포의 전이와 재발을 방지한다는 내용을 접했다.
D한의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세계적 학술지가 증언하는 진세노사이드 항암효과'라는 논문을 소개하고, 수 많은 완치 및 호전 사례를 게시했다.
D한의원은 ▲면역치료는 암세포만 죽이고 면역세포는 활성화하는 놀라운 표적 항암 치료로 생존율을 높인다 ▲각각의 신체 부위에 개별적으로 혹은 동시에 투여할 수 있기 때문에 암이 전이된 경우도 효과적이다 ▲경구투여(먹는 한약)는 약들이 소화·흡수된 뒤 전신 혈관을 통해 이동하지만, 약침은 경혈·혈맥에 직접 투여해 약이 현저히 빠르게 몸에 흡수된다 ▲항암 방사선 수술로는 암을 극복하기 힘든 이유 등의 내용을 홍보했다.
A씨는 암세포만 죽이고 면역세포를 활성화 한다는 D한의원의 홈페이지와 완치 및 호전 사례를 신뢰, 2012년 5월 8일경 D한의원을 내원해 한방 치료를 시작했다.
당시 D한의원의 E한의사는 "○○약침은 산삼 엑기스에서 추출한 진세노사이드 성분으로 제조한 약인데 이를 정맥에 직접 투여하면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등 효과가 탁월하다. 간암 말기 환자를 완치한 사례가 여럿 있다"고 밝혔다.
이런 내용을 믿은 A씨는 1차 치료를 마치고, 2차 치료를 진행하던 중 건강상태가 악화되자 9월 24일경 ○○약침 치료를 중단했다. C대학병원과 E내과의원을 내원해 확인한 결과, 암이 온몸으로 퍼져 1∼2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A씨는 결국 12월 17일 사망했다.
A씨는 1차 치료비로 2376만 원, 2차 치료비로 1044만 원 등 총 3420만 원을 D한의원에 지불했다.
D한의원은 주사기에 약침 10cc를 넣고 정맥에 주사하는 방법으로 ○○약침 치료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밖에 100cc 링거에 약침 액을 넣어 시술하거나 1cc짜리 주사기에 약침을 넣어 경혈 자리에 시술하기도 했다.
D한의원의 ○○약침은 2013년 F방송이 산삼 엑기스의 효능 및 인터넷 홈페이지 완치 사례가 모두 거짓이며, 특히 진세노사이드 성분이 들어있지 않다는 내용을 방송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진세노사이드 성분의 항암 효과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논문에는 진세노사이드 Rg3 농도가 10㎛ 미만일 때는 거의 효과가 없고, 편평세포폐암 환자와 비소세포폐암 환자에 대한 증례 보고서에는 편평세포폐암 환자의 경우 종양의 성장을 일시 억제하는 정도의 효과는 있었지만, 결국 환자가 사망했다. 비소세포성폐암 환자의 경우에는 직접적 효과 입증은 어렵다고 보고돼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약침학회도 혈액 내에 진세노사이드 성분을 직접 투여하는 경우 혈전을 유발해 위험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진세노사이드 성분을 직접 혈관에 투여할 경우 혈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약침의 유효 함량과 성분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D한의원의 약침 1회 정맥주사량이 10cc인 것을 고려하면, 60㎏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할 때 약침 농도는 367㎎/L가 돼야 하지만 D한의원의 약침 성분분석표에서는 함량이 크게 미치지 못해 신경교종에 크게 효과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한 치료 효과가 전혀 없었던 점 등을 종합해 간암을 비롯한 다른 암에도 효능이 없었다고 보는 것은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서 "D한의원에서 조제한 약침이 과연 산삼 등을 원료로 조제한 것은 맞는지, 부당하게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약물을 희석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D한의원 광고의 적정성 문제도 짚었다.
재판부는 "약침이 진세노사이드 성분으로 인해 암세포만 선별적으로 죽이고, 면역세포는 활성화해 모든 암에 효과가 있는 듯이 광고하고, 의학적으로 부적절한 방법 등으로 완치 및 호전 사례를 광고한 것은 명백한 허위·과장 광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D한의원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증세 호전 사례는 의학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적절한 방법"이라고 지적한 재판부는 "D한의원의 허위·과장 광고와 E한의사의 말에 속아 치료 및 치료비를 지급했으므로 A씨가 입은 손해(치료비 전액 3420만 원, 위자료 840만 원)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2013년 원고 측 변호를 맡아 민사소송을 진행한 장성환 변호사(법무법인 지우)는 "오랜 재판 끝에 좋은 결과가 나와서 감개무량하다. 상대방측이 산삼약침의 효능을 주장하며 많은 논문들과 성분 분석서 등을 제출했으나 재판부가 꼼꼼히 논문과 자료를 검토·분석한 끝에 허위과장 됐음을 인정했다"며 "재판부에서 정확하고, 올바르게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적으로 많은 피해자가 있음에도 5년이라는 오랜 재판 끝에 나온 판결이라 그 동안 피해를 막지 못한건 아쉽다"고 언급한 장성환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산삼약침의 허구성이 널리 알려져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보건당국도)약침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점검해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