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관련 정치-행정에 정통한 '사판(事判) 의사' 육성이 시급한 까닭은?

의료 관련 정치-행정에 정통한 '사판(事判) 의사' 육성이 시급한 까닭은?

  • 신형준 relicshin@naver.com
  • 승인 2019.04.08 14:02
  • 댓글 2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협 상근이사 정원 6명 案'이 대의원총회에서 통과되기를 바라며

 

일러스트/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일러스트/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별만 쳐다보던 탈레스, 우물에 빠지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한 장면.

어느 철학자가 하늘의 별을 보다가 우물에 빠졌다. 그것을 지켜본 사람이 철학자를 조롱했다.

"당신은 하늘의 별만 볼 줄 알았지, 발밑의 우물은 보지 못하는구려."

이상이나 고매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일상을 등한시하다가 곤경에 처하는 것을 빗댄 이야기이다. 세상 물정 모르면서 잘난 척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데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정치학'에 따르면, 이 우화의 주인공은 그리스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철학자 탈레스(서기 전 6세기에 활동)였다. 그는 밀레토스 학파의 창시자였다. 자연과 우주에 대한 탐구가 인간에 대한 탐구와 동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만물의 근원이 물(水)이라고 생각했던 유물론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 탈레스를 변호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우물에 빠진 헛똑똑이' 탈레스를 변호한다.

"(우물에 빠지는 등 조롱을 당한) 탈레스는 별을 관찰한 뒤 다음 해에 올리브 농사 풍년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올리브에서 기름을 짜는 압착기 사용권을 독점이라도 하려는 듯 모두 사들였다. 다음 해 올리브 농사가 풍년이 들었을 때 사람들은 탈레스로부터 올리브 압착기를 비싼 돈으로 빌릴 수밖에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탈레스와 달리 '현실'의 탈레스는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책상머리에만 앉으려 했던 학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천문 관측을 바탕으로 투기성이 강한 선물(先物)에 투자해서 대박을 친 사람이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다만 그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우주의 탐구에 가치를 두었기에 일반인에게는 자칫 헛똑똑이처럼 보였던 행동도 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식으로 철학이랄까 학문 연구의 가치를 변호했다. 


의사 집단을 바라보면서 탈레스의 우화가 떠올랐던 이유

탈레스의 일화를 떠올린 것은 이 사회 최고 엘리트층을 형성하는 의사 계층을 돌아보고자 함이다. 적지 않은 의사 선생님들이 '험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솝 우화 속의 탈레스처럼 국민에게 보이지는 않나 싶어서이다. 

"의사들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
"낮은 민도와 사회의 품격 때문에 의사들이 기댈 언덕이 없다. 그래서 의사 노릇 해 먹기가 더 힘들다."

적지 않은 의사 선생님들로부터 들었던 한탄이다. 모두 일반인의 시각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한데 대부분의 의사들조차, 자기 자식이 공부를 잘 하면 왜 의대를 보내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물으면 답하지 못했다. 올 해 입시에서도 의대는 다락같은 커트라인을 유지했는데...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도 의사는 '꿈의 직업'으로 등장하는데... 대한민국의 정규직 노동자가 평균 얼마를 벌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평균적으로 얼마를 버는지 정확히 안다면, '의사의 희생'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과연 '현명'한 용어 선택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어느 아파트 한 채 가격이 20억 원에서 19억 원으로 떨어졌다며 누군가가 '죽는 소리'를 할 때, 이에 동조할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될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의사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혹은 모르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필자처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이 책 저 책을 읽으면서 '얕지만 넓은 지식'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대부분 20대 중후반에 사회로 진출해서(하긴 요즘은 인문학 전공자들이 취직도 제대로 안 되지만!), 나와 다른 전공을 공부한 사람들과 섞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정치'나 '정책' 등이(그것이 국회 내에서 이뤄지든, 일개 사기업 안에서 이뤄지든 상관없다) '해당 서클 안에서의 역학 관계'에 따라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지켜본다. 말도 섞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타협하고 싶지 않은 노선과도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법을 배운다. 그게 사회생활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광대한 의학 지식을 배우기조차 버거웠을 것이다. 외울 것이 좀 많은가? 대학 시절, 가장 공부 양이 많은 이들이 의대생이라는 것은 속된 말로 '탱자탱자' 놀기만 했던 나 같은 사람들이 더 잘 안다. 그러니 다른 전공 서적을 들여다 볼 틈이 없다.

인턴이나 레지던트 생활은 또 어떤가? 여가를 즐길 시간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 말 그대로 노예 생활이 아니던가? 게다가 만나는 사람은 환자 말고는 대부분 의료인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대형 병원에 가지 않고 개원을 하면 오롯이 자기 자신만의 판단으로 의원을 꾸리고 진료해야 하는 '의사 소상공인'이 된다. 의료 분야에는 모두 '박사'이지만 세상 물정에는 어둡기 쉽고, '진료실의 소(小)황제'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하지만 어찌됐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탈레스는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것처럼, 세상 물정을 모른 채 자기 공부만 하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집단으로서의 의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누가 뭐래도 '집단으로서의 의사'는 이 사회 '지식계층 피라미드'에서 최상위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의사들도 탈레스처럼 '자신들의 진정한 힘'을 주변에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하늘의 별만 쳐다보며 자기 공부에만 빠져 있다가 우물에  빠지는 '이솝 우화 속의 탈레스'가 아니라, '선물(先物) 투자도 과감히 하면서 경제와 사회, 정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탈레스'로 비쳐져야 한다.

 

그래픽 / 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 ⓒ의협신문
그래픽 / 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 ⓒ의협신문

속세를 떠난 절에서도 필요한 '사찰 행정' 

스님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불법(佛法) 찾기일 것이다. 기실 모든 성직자는 진리를 찾기 위해 수도자의 길로 들어선다. 한데 모든 스님이 진리 찾기에만 매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님도 최소한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스님이 진리 찾기에만 매달리며 면벽만 하면, 사찰 운영은 누가 하나? 밥 짓는 일이나 불사(佛舍) 수리 등을 누군가는 맡아야만 한다.

하여 불교에서는 '이판승(理判僧)'과 '사판승(事判僧)'의 분화가 이뤄졌다. 일반적으로 '이판' 혹은 '사판'이라는 줄임말로 더 잘 알려진 이판승과 사판승의 역할은 이렇다.
 
이치 리(理)를 쓰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이판승은 불가의 이치나 진리 찾기에 매진하는 스님이다. 반대로 일 사(事)를 쓰는 사판승은 사찰의 운영과 관련한 일을 처리하는 스님이다. 불교의 본질을 생각할 때 "스님"하면 분명 이판이 떠오르겠지만, 사판이 없으면 절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스님들에게는 이판보다 사판이 더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물론 숫자로만 따지면, 스님들 대다수는 이판승일 수밖에 없다. 


의협, '사판 의사' 육성 시스템 갖춰야 

이는 의사 집단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의학이나 의료 현실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이 장면에서 대한민국 의사 선생님들에게 감히 드리고 싶은 고언이 있다. 거의 1년 동안 의협과 의사 집단을 바라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사찰에서의 사판승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자. 국회의원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는 국회의원이 하는 일을 단 몇 개월만 지켜보면 안다. 예산을 심의하고 법을 제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한데 의협 혹은 의사집단에서 국회의원들에 대해 어떤 '대화 채널'을 가지고 있나? 현재 이 일을 맡고 계신 의협 이사님들이 무척 탁월하게 일 처리를 하시고, 노고 역시 크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분들도 이번 집행부에서 이 일을 처음 맡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모든 국회의원과 '직접 접촉'이 가능할 정도로 마당발이겠지만, 지난 해 5월 집행부 출범 직후는 분명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로부터 정말 긴요한 도움이 필요했을 때, '최소한' 여야 각 정당의 보건복지위 의원들에게 "000 의원님"하면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5월의 상황은... 

때문에 많은 국회의원과 직접적이고도 친밀한 소통이 가능하신 의사 선생님이라면, 설령 집행부가 바뀌어도 이 분에게 대(對) 국회 업무를 계속 맡기는 게 나을 것이다. 신뢰는 '단골'이 될수록 더 쌓이는 법이니까. 한데 의협이, 의사 집단이 이런 시스템을 갖추었나?

홍보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현 집행부가 출범하던 지난 해 5월, 홍보와 공보이사를 겸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황당했다. 홍보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인데? 

그 어떤 조직이든 홍보를 최종 담당하는 사람은 보스보다 먼저 출근해서 모든 기사를 스크린한 뒤 대처 방안 등에 대해 보고하는 사람이다. 퇴근도 가장 늦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로, 김대중 대통령을 모셨던 박지원 의원은 그 전날 기자들과 폭탄주를 아무리 늦도록 마셔도 새벽 이른 시간이면 신문기사를 스크랩해서 대통령이 원하는 시간에 보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홍보 최종 담당은 그런 자리이다. 한데 인천에서 농사짓는 사람(=필자)이 어찌 그 일을 맡을 수 있나? 의사도 아니고, 상근도 할 수 없는데! (여기서 사족 하나. 의협에는 세 종류의 '이사'가 있다. 협회에서 늘 근무하는 '상근 이사'와 1주일에 2~3일 협회에 나와서 일하는 '반(半) 상근 이사', 그리고 1주일에 한 번 열리는 '상임 이사회' 등 일이 있을 때 나오는 '비(非) 상근 이사'이다. 반 상근 이사는 상근 이사가 받는 월급의 절반을 받는다. 비 상근 이사는 '사실상' 무보수이고.)  

때문에 필자는 대변인과 홍보이사, 공보이사는 '대변인'이라는 직제로 통합한 뒤, 의사 뿐 아니라 국민도 설득할 수 있는 홍보 감각과 문장력을 갖춘 의사를 상근 이사로 쓰라고 여러 차례 권했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최고 전문가 집단의 홍보를 신문기자 출신이나 기업 홍보를 했던 사람들이 맡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의료나 법률의 전문적인 용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필자는 애초 홍보에 적격자가 될 수 없었다. 한데 여전히 홍보 업무를 통합한 '상근 대변인'은 의협에 부재하다. 

아무리 사명감이 있고 브라이트한 사람이더라도 병-의원에서 진료를 하시는 의사 선생님이 홍보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고 보시는가? 의협처럼 바람 잘 날 없는 조직에서? 그 어느 조직이든 일 잘한다고 소문난 대변인, 혹은 홍보담당자를 유심히 살펴보시라. 기자들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성향은 물론 결혼 여부, 출신 고교-대학까지 꿰고 있다. 이러고도 의협의 대(對) 국회나 보건복지부, 홍보 등에서의 주요 업무 처리가 '최상으로' 이뤄지기를 바라는가? 

 

매주 오전 7시경 의협 집행부 전체가 모이는 상임이사회 시작 전 임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기자
매주 (수요일)오전 7시경 의협 집행부 전체가 모이는 상임이사회 시작 전 임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기자

의사 선생님들이 '자신들을 위해' 의협에 투자해야 한다

결국은 시스템의 문제이자, 투자의 문제이다. 해법은 의사 집단에서의 동의와 지지 여부에 달려 있다. 의사 선생님들이 자신들을 위해 의협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자. 어찌됐든 보건복지부가 2018년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 의사들의 월 평균 급여는 1304만원이다. 한데 자신의 본령도 아닌 곳에서 의사를 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을 하는데 받는 돈은 적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누가 그런 상황에서 '사판 의사'가 되려고 할까? 

의협의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솔직히 한심 그 자체였다. 현재 의협 정관에는 월급을 받는 상근 이사를 최대 4명까지 둘 수 있는 것으로 돼 있다. 한데 현재 상근 이사는 단 한 분뿐이다. 그리고 반 상근 이사가 여섯 분이 있다. '반 상근 2명=상근 1 명'이라는 논리 속에서 말이다.  

'공식적으로는' 1주일에 2∼3일 의협에서 일하는 것으로 돼 있는(기실은 그보다 더 많이 근무한다!) 반 상근 이사님 중 두 분은 법제 파트를 담당하는 변호사님들이다. 법제 파트는 무척 중요한 분야이니 두 명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어찌됐든 국회나 보건복지부, 그리고 대변인이나 홍보, 보험 등 의협의 주요 업무를 담당할 반 상근 이사 수는 4명으로 줄었다. 각 분야에 상근 이사 한 분씩을 두어도 모자랄 판에...

한데... 국회나 보건복지부를 상대하는 업무, 그리고 홍보나 보험 업무가 월~화에만 터지고, 수목금토일에는 발생하지 않는가? 

그래, 이 장면에서는 실명을 거론하자. 현재 의협에서 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종혁 선생님은 반 상근임에도 거의 매일 출근한다. 그 어떤 조직이든 대변인만큼 바쁜 사람은 없는데, 박 대변인은 '반 상근 월급'을 받으며 상근자처럼 일한다. 대변인만큼 바쁘지는 않다지만, 거의 매일 결재 건이 올라오고, 전화나 단체카톡방에서 업무 지시를 수시로 주고받는 홍보이사나 공보이사는 반 상근도 아니고, 무보수로 일하는 비 상근 이사이다.  

의사 선생님들의 피 같은 회비로 운영되는 의협이니 돈을 아껴서 써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꼭 써야 할 데 돈을 쓰지 못하는 조직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사명감만으로 버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봉건시대에나 통하는 논리이다. 

의협이, 아니 의사 집단이 잘 되려면 의사 집단과 관련한 '정치-행정 전반'을 매끄럽게 처리할 줄 아는 '사판 의사'를 시급히 양성해야 한다. 사판 의사 각자의 개성에 맞게 국회나 보건복지부, 언론, 더 나아가 시민단체까지도 '맞춤식 상대'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의료 관련 주요 행정 및 정책 업무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담당 부서 사무관의 생일날 최소한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전화 한 통쯤은 넣을 수 있는 상근 이사가 필요한 것이다. 속된 말로 "쪽 팔리신가?" 명색 대한민국에서 가장 커트라인 높은 의대를 나와서 중앙부처 사무관에게 축하 전화 한 통 넣는 것이? 

그렇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하시라. 의협 집행부는 길어야 3년마다 바뀌는 '사또'이고, 업무 전반은 의협의 직원들이 '아전'처럼 잡고 있는... 이전 집행부나, 의협에서 현재 일하고 계시는 일반 직원님들을 비난하고자 함이 절대로 아니다. 그 분들의 노고가 컸고, 여전히 큼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천하의 죽일 놈'일 것이다. 다만 시스템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시스템이 고쳐지지 않으면 개혁이나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의협의 주요 업무 파트, 즉 국회와 청와대 등 정치 파트와 보건복지부 등 행정부, 그리고 보험 관련이나 대(對) 언론-시민단체 업무 등을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는 사판 의사를 양성해서 풀(pool)을 형성한 뒤, 앞으로는 집행부가 바뀌어도 이 풀 안에서 상근 이사가 나와서 업무를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하루 빨리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상근 이사 수를 파격적으로 늘려야 하며, 보수 역시 일에 걸맞게 책정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판을 하겠다는 의사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보수도 적고 골치만 아프다면 누가 사판 의사를 하겠는가? 

상근 이사 인원 확대와 관련한 정관 개정을 의협이 오는 4월 대의원정기총회에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4명에서 6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6명으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바람 잘 날 없는 의협에서 상근 이사가 6명뿐이라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라도 해야지... 의사를 위한 '실제적인 길'이 무엇인지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인 의사 선생님들이 현명하게 판단하시고, 총회 때 찬성 결정을 흔쾌히 내려주셨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만 더... 이제 필자가 더 이상 의협의 비상근 이사가 아니기에 솔직하게 드리는 말이다. 지금까지 상근 이사 이야기만 했기에, 비상근 이사의 고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드리고자 한다.

20명 쯤 되는 의협의 비 상근 이사들도 매주 수요일 오전 7시에 열리는 상임이사회에 상근 이사나 반 상근 이사처럼 참석한다. 참석하지 않으면 패널티를 무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참석한다. 이들도 자신이 담당한 부서의 업무를 시도 때도 없이 본다. 물론 결재도 하루에 몇 차례씩 해야 한다. 결재라는 게,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인지 알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니, 비 상근 이사들도 일이 많기는 마찬가지이다. 최소한 내가 경험한 홍보와 공보이사 자리는 그랬다. 필자의 경우에는, 시도 때도 없이 단체 카톡방에서 홍보 문구나 홍보 포스터를 봐 달라는 요청이 왔다. 지금도 그럴 것이 틀림없다.

이러고 받는 '보수'가 월 50만원에 통신지원비 5만원이었다. 55만원이라... 여기에 의협 차원에서 급작스레 열리는 '무슨 무슨' 긴급회의에 참석해 두 세 시간 머리 싸매고 논의를 마치면 회의 참석비라며 3만원을 주곤 했다.(매주 수요일 오전 7시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상임이사회에는 참석비가 없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이럴 거면, 비 상근 이사에게는 차라리 돈을 아예 주지 마시라!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보수를 받으면서 "돈 받았다"는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지 않는가. 농민인 필자가 농번기 때 모내기 아르바이트만 해도 10만원의 일당을 받는다. 중식과 막걸리 한 사발도 얻어먹으며...

추신== '고금와유'는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마칩니다. 혹 본 칼럼의 내용 때문에 조금이라도 불쾌하셨다면 정중히 고개 조아려 사과드립니다. 의료계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턱도 없는 조언을 하려 했던 것, 너그럽게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의사 선생님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국민과 늘 함께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신형준 올림.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