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의약분업과 의료보험 통합 등 보건의료체계의 빅뱅을 예고하는 굵직 굵직한 제도가 동시에 시행됨에 따라 의료계는 긴장의 고삐를 더욱 바짝 쥐고 있으며, 국민 역시 환경 변화에 대한 본질과 이에 따른 불편을 감내할 충분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물결을 앞두고 대구광역시의사회가 9일 시민과 함께하는 보건의료 발전방안을 찾아 나섰다. 의사가 진료를 중단하고 두차례나 거리로 나섰는지에 대한 의료계의 입장과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보건정책은 무엇인지, 과연 의사가 생각하는 것과 일반인의 그것과는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 “터놓고 얘기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날 대구광역시와 대구시의사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1차 대구보건의료 포럼은 대구·경북 인의협 주관으로 경북의대 학생회관 강당에서 의사와 시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시 참여연대와 우리복지시민연합이 참가, `참의료'를 실현하기 위한 의료 공급자와 이용자 측면에서 풀어야 할 문제들을 제시했다.
계명大 조병희(사회학) 교수는 `의료이용자가 중심이 되는 보건의료'라는 주제발표에서 “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시민은 소외되거나 배제됐다”며 “제도 준비기간의 대부분을 관련단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 허비하고 있다”고 지적. 조 교수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국민의 이해가 부족하거나 불편의 정도가 크면 시행하기 어려운데, 정부가 다른 분야의 구조조정에는 수조원씩 지원하면서도 재정이 매우 취약한 보건복지 분야에는 한푼도 쓰지 않고 의료개혁을 기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료계 또한 변화하는 사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발전적인 입장을 취하지 못해 새로운 정책에 대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
조 교수는 `이용자(환자)의 알권리'에 대해 “환자는 자신의 병과 치료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도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의료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그 불신은 의료진의 무관심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은 `정보제공과 상담'의 과정에서 환자들의 불만이 매우 높기 때문에 환자의 알권리가 보장된다면 의료현장은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며, 의사와 환자는 발전적인 `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보훈병원 한동로(신경외과·인의협 편집위원)과장은 `누구를 위한 의료인가'라는 주제발표에서 “정부에 의해 철저히 통제받는 수가(酬價)체계에서 병·의원은 도산하지 않기 위해 환자를 경쟁적으로 유치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로 인해 환자의 알 권리는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의료계 현실을 털어놨다.
한 과장은 “양질의 진료를 원하는 환자와, 저수가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기관간의 경쟁 관계속에서 불신의 골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며 “환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수가정책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
한 과장은 특히 “미국은 국민 총생산의 12%를 국민의료비로 지출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절반 수준인 6%에도 못미치고 있어 환자의 권리를 충족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가 의료진으로부터 성실한 대우를 받을 권리 등 `환자의 7가지 권리'를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는 보건의료 부문에 대한 투자가 대폭 확대돼야 하며 재원도 공평하게 조달돼야 한다는 소신으로 참석자들을 설득했다.
이 두가지 주제에 대해 각계 대표 4인이 서로 다른 시각에서 의료 공급자와 이용자의 올바른 관계정립을 위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구 위덕大 박용권(우리복지시민연합 정책위원)교수는 “국민의 건강욕구는 `제3의 욕구'로 표현할 만큼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누구든지 의료 욕구가 있을 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의 의미라고 주장. 박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환자에게 `알권리'와 `참여권리'가 결여돼 있다”며 “시민이 정책결정 과정에 왜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의료계가 먼저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
대구광역시의사회 이 창(이창정형외과의원)기획이사는 “환자의 알권리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작은 권리라면 의료의 본질을 찾는 것이 큰 권리를 누리는 것”이라며 “의료의 본질은 `인간학'에 `과학'을 합친 것이며 이는 환자의 신뢰와 의술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 이사는 특히 “의약분업에 대한 의료계의 주장이 일반 시민에게는 밥그릇 싸움 정도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제도의 본질이 훼손돼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고 국민건강권을 앗아갈 수 있다는 의료계의 우려도 담겨 있다는 충정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피력.
대구효성가톨릭大 이정옥(사회학 교수)토론자는 “의료계가 이익집단에서 신뢰받는 단체로 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신뢰 상실로 인한 손실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지적. “앞으로 소비자를 진정한 파트너로 삼지 않으면 존립하기 힘들 것”이라며 “발전적인 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 의사―환자간 질높은 대화채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 교수는 제시했다.
참여연대 작은권리 찾기 운동본부장인 성상희 변호사는 “현재 의료분쟁으로 환자와 의사 모두 큰 고통을 받고 있다”며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의료계―시민간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약분업과 관련해 성 변호사는 “의료계의 주장대로 전문의약품을 확대해 임의조제를 방지하는 방안에 대해 동감한다”며 그동안 시민단체가 의약분업에 대해 목소리를 충분히 내지 못한점을 아쉬워 했다. 성변호사는 특히 앞으로 적정 의료인력을 유지하는 것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정착시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의사인력 조정이 의약분업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역설.
오후 7시부터 3시간 30분동안 진행된 이날 포럼의 진행을 맡은 김병준(대구경북 인의협 상임대표·김병준내과의원)원장은 “시민과 같이 호흡하는 의료계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문제의 보따리를 푼 만큼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시민과 의료계가 자주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피력.
대구광역시의사회 김완섭(金完燮)회장은 “대구시의사회가 오래전부터 추진해 온 `시민에게 다가서는 의료정책'의 결실을 거둘때가 됐다”며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의료정책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구광역시와 의사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1차 `보건의료 포럼'은 작년에 대구시 산하 `대구보건발전기획단'을 결성하면서 다섯차례에 걸친 준비회의 끝에 결실을 거둔 것이다. 포럼 주제도 처음에는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이용자가 중심이 되는' 지역보건의료 발전방안으로 정했다가 결국에는 `시민과 함께하는 보건의료 발전방안'으로 확정했다.
대구 보건의료포럼 추진위원장인 영남醫大 강복수(예방의학)교수는 “의료는 공급자와 수요자 개념에서 벗어나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는 관계에서 발전해야 한다”며 “앞으로 의사와 시민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도록 성숙한 토론 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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