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트롤리 기차의 방향을 돌릴 수 있나요?"
달려오는 트롤리 기차를 그대로 두면 5명의 인부가, 방향을 틀면 1명의 인부가 죽게 된다.
'트롤리 딜레마'는 주로 윤리학에서 다루는 사고실험이다. 다수를 구하기 위해 소수를 희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의를 던진다. 어느쪽을 택해도 희생이 따른다. 가만히 있는 것도, 방향을 트는 것도 선택. 기차가 다가오기에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의료사태의 포문을 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2000명 의대증원을 입에 올린 지 10개월만에 직무 정지됐다. 결정적 계기는 아닌 밤중의 계엄령. 의료인 '처단'을 예고했던 대통령의 독주가 정지됐다.
의료계의 손은 마냥 응원봉을 흔들고 있을 수 없다. '의료계엄' 기차가 10개월 전부터 돌진하고 있는 탓이다.
윤 정부가 추진해온 의료개혁은 동력을 잃었다. 하필 의대증원만은 예외다.
2025년도 의대 신입생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가 진행됐고, 31일이면 정시 원서접수마저 시작된다. 의료계의 일관된 대화 요건인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 이것만은 그대로 두면 그대로 돌진한다.
7500명. 복귀 휴학생과 확대된 신입생을 합하면, 현 정원의 2.5배 정원이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
올해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대규모 의대 정원을 늘린 학교들의 부실한 준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신문지 한 장을 집어 들고 의대생 한 명당 교육면적이 딱 이정도라는 지적이 화제가 됐다. 해부학실습실 환경을 두고 경북대는 '귀신의집' 평가를 받았고, 충북대는 "주차장 임시건물에서 실습을 진행할 계획"이라는 발언이 주목받았다.
전공의들도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못했다.
"시간은 우리 편"이라던 고위 정부 관계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내년 상반기 레지던트 모집은 응시자 341명. 지원율 8%대에 그쳤다. 정부가 중요하다던 '필수과' 산부인과 지원자는 단 1명이었다.
전공의들은 이미 사태 초반부터 지금까지 의대정원 등 상황 변화가 없는 한 내년 3월에도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전공의 모집 실패는 오직 정부만 예상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최소 11년 의학교육의 질 저하를 예견한다. 전문의가 언제까지 배출되지 않을 지도 가늠할 수 없다. 어떤 증원 의대도 제대로 된 의학교육을 준비하지 못했다.
국민 생명은 진작부터 위협받고 있다.
전국 응급실 내원환자 사망률은 이미 작년보다 32%가 늘었다. 현장에선 예방 가능한 사망률이 다시 늘고 있다고 경고한다. 살릴 수 있었던 환자를 살리지 못한 수치가 의료개혁 이후, 다시 오르고 있다.
트롤리 딜레마에선 어느쪽이건 희생이 뒤따른다. 그것도 모두 생명의 희생이 따른다. 무엇을 택하건 정의로울 수 없다.
의료사태는 어떤가.
철로 한 쪽엔 정부가 말하는 2025학년도 입시생들의 혼란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대한민국 미래 의료의 11년이,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서 있다. 지금 기차는 생명이 걸린 후자 쪽으로 향하고 있다.
기차 방향을 틀 수 있는 키는 한덕수 대통령 직무 대행 손에 쥐어졌다.
어느 쪽을 택해도 희생이 따르는 상황이다. 다행히 한 쪽엔 생명이 서 있진 않다. '틀 것인가, 둘 것인가'. 의료계가 이번엔 정말 마지막으로 묻는다.
대행님은 기차의 방향을 돌릴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