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고등법원, 의학적 타당성 고려 않고 과징금 일률 처분 '취소'
환자 생명 살리기 위한 필수 진료 등 '의학적 필요성' 중요 판단 기준
병원이 환자에게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의학적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요양급여 기준을 초과해 청구해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는 이유로 경감 조치 없이 모든 행위에 대해 과징금을 일률적으로 3∼4배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병원에서의 진료행위는 상당 부분 해당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치료를 위한 것이고, 예외 없이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의사의 진료행위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이므로 헌법에도 위배될 여지가 크다고 봤다.
사건은 보건복지부(장관)가 ■■시 소재 A대학병원에 대해 현지조사를 실시(2011년 6월경부터 11월까지 약 6개월 동안)하고, 요양급여 기준를 초과해 환자로부터 의약품·치료재료·검사료·이학요법료 등의 행위에 대한 비용을 비급여로 징수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처분을 내리면서 촉발됐다.
보건복지부는 A대학병원이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 4억 8761만원(감경액 4억 7677만원), 의료급여 비용 4087만원(감경액 3977만원)을 각각 부담하게 했다며, 요양급여 비용에 대해서는 감경액을 기준으로 부당금액의 4배인 19억원의 과징금을, 의료급여 비용에 대해서는 감경액을 기준으로 부당금액의 3배인 1억 1931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A대학병원은 서울행정법원에 과징금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하면서 ▲수진자(환자)의 치료의 특수성·심각성·시급성 등에 비춰 요양급여대상에 편입시키기 위한 절차를 거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이번에 문제가 된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는 여러 논문과 관계 행정청의 심사결과 등에 의해 의학적 안전성·유효성, 그리고 필요성이 입증됐고 ▲수진자가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에 관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비용부담 등에 대해 동의했기 때문에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는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상황에 해당하므로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가입자 및 피부양자에게 요양급여 및 의료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히 ▲병원은 환자에 대한 최선의 의료행위를 하기 위해 이 사건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에 이르게 된 점 ▲이 사건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 중에는 요양급여대상에 편입시키기 위한 사전 절차가 존재하지 않았던 부분도 포함된 점 ▲병원은 환자에게 부득이하게 진료비용을 청구하는 경우에도 의약품비용·치료재료비용 등 모든 비용을 공급받을 당시의 원가대로만 청구했을 뿐 추가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었거나 그런 시도를 한 사실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부당금액의 3∼4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재량권 일탈·남용이라고 강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요양급여 기준 위반 여부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의 예외적 허용 여부(절차적 요건·의학적 요건·사전동의 요건) ▲재량권의 일탈·남용 여부 등의 위법성을 살폈다.
먼저, 요양급여 기준 위반 여부와 관련해서는 결장암·직장암·위암 등에 효능이 인정된 '옥살리플라틴'(옥살리틴, 옥사플라주) 처방 중 허가사항 외 투여 내역을 부당한 청구로 산정한 보건복지부의 처분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나머지는 요양급여기준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의 예외적 허용 여부는 A대학병원의 의약품·치료재료·검사료·이학 요법 행위에 대해 ▲절차적 요건 ▲의학적 요건 ▲사전동의 요건이 충족됐는지를 살폈다.
즉,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경우 가입자 등과 체결한 진료 계약에 따라 최선의 진료를 다할 의무(절차적 요건), 진료행위가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뿐만 아니라 요양급여 기준 등을 벗어나 진료해야 할 필요성을 갖췄는지(의학적 요건), 그리고 가입자 등에게 미리 내용과 비용을 충분히 설명해 본인 부담으로 진료받는 데 대해 동의를 받았는지(사전동의 요건)를 구분해서 판단한 것.
서울행정법원은 갬빈주·젬시타빈주(항암제), 경피적 관상동맥 확장술 시 치료재, 미세카테터, 심근경색진단검사와 관련한 트로포닌-I는 일부 환자에게서는 절차적 요건, 의학적 요건, 사전동의 요건이 모두 충족되므로 처분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A대학병원의 주장은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의약품·치료재료·검사료·이학요법료 등)은 이유가 없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은 호의주(단백질 분해효소 저해)는 의학적 요건 충족·사전동의 요건은 불충족, 스모프리피드 20%주(비경구 영양제)는 의학적 요건 충족·사전동의 요건 불충족, 씨제이 반코마이신염산염주(항생제)는 의학적 요건 충족·사전동의 요건 불충족, 맙테라주(면역억제효과 주사제)는 의학적 요건 불충족, 히알2000주(백내장수술 보조제)는 절차적 요건 불충족, 동인당 인도시아닌 그린주(간기능검사·순환기능검사)는 의학적 요건 충족·사전동의 요건 불충족, 아빌리파이정(정신분열치료제)은 의학적 요건 충족·사전동의 요건 불충족, 수액유량조절세트(치료재료)는 의학적 요건 충족·사전동의 요건 불충족, 급속항온주입기(치료재료)는 의학적 요건 충족, 미세카테터 치료제는 의학적 요건 충족·사전동의 요건 불충족, 종양표지자검사(검사료)는 의학적 요건 충족/사전동의 요건 불충족, 결핵초기진단검사(결핵균 중합효소연쇄반은교잡반응법)는 의학적 요건 충족·사전동의 요건 불충족, 혈관내응고병증검사(검사료)는 의학적 요건 불충족·사전동의 요건 불충족, 혈액가스분석(검사료)는 의학적 요건 충족/사전동의 요건 불충족, 기능적 전기자극치료(이학요법료)는 의학적 요건 불충족으로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A대학병원은 일부 환자에게서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와 관련 예외적 허용 요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 나머지 환자들에 대해서는 진료행위 당시 환자의 명시적 동의를 받지 않아 사전동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음을 '자인'하고 있어 예외적 허용 요건 3가지 모두를 충족한다고 볼 수 없다"며 처분 사유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대혀서는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의 3가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처분 사유가 존재하지만, 의학적 요건이 충족된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문제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재량권의 일탈·남용 주장과 관련해서는 제1처분(요양급여 비용)은 과징금 감경 사유가 있음에도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은 "의료적으로 환자에게 이뤄져야 하는 것이 타당한 최선의 진료행위가 요양급여 행위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료행위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이익의 환수뿐 아니라 업무정지나 과징금의 3∼4배 제재까지 가한다면 오히려 국민 보건을 향상하려는 국민건강보험법의 취지에 반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진료행위가 이뤄졌고, A 대학병원이 별도의 이익을 얻은 것이 없는 점, 그리고 의학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진료행위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3∼4배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제1처분(요양급여 비용에 관한 과징금)과 관련해서는 "재량권 행사의 기초가 잘못된 것으로 위법하다"며 "이 사건에서 당사자가 제출한 증거나 법원의 증거조사에 의해 나타난 증거자료만으로는 정당한 과징금의 액수를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제1처분을 모두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제2처분(의료급여비용)에 대해서도 "호의주, 스모프리피드 20%주, 동인당 인도시아닌 그린주, 미세카케터 치료재, 종양표지검사 등은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뿐 아니라 요양급여 인정기준 등을 벗어나 진료해야 할 의학적 필요성을 갖춰 의학적 요건이 인정됨에도 감경 없이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잘못이 있다"며 제1처분 취소 이유와 같은 해석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런 3가지 쟁점 사항을 종합한 결과, 보건복지부의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도 1심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보건복지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