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자기결정권 침해 "찬성" VS 생명윤리 무너져 "반대"
'양육비 책임법' 제정하고 국가 지원·생명존중 교육 강화해야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4월 11일 오후 2시로 예고됐다.
소위 낙태죄 사건(2017헌바127)은 부녀가 낙태한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을 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269조 제1항(자기낙태죄)과 의사가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270조 제1항(의사낙태죄)이 헌법에 위배되는지가 쟁점.
청구인은 산부인과 전문의인 A씨로 2013년 11월 1일경부터 2015년 7월 3일경까지 69회에 걸쳐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 업무상 승낙 낙태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청구인은 1심 재판을 진행하던 중 형법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2017년 2월 8일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018년 5월 24일 열린 공개변론에서 청구인은 "태아는 생존과 성장을 전적으로 모체에 의존하므로 태아가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로서 모(母)와 동등한 수준의 생명이라 볼 수 없고, 따라서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해서도 "여성이 임신·출산을 할 것인지 여부와 그 시기 등을 결정할자유를 제한해 여성의 자기운명결정권을 침해하고, 임신 초기에 안전한 임신중절 수술을 받지 못하게 해 임부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면서 "원치 않는 임신의 유지와 출산을 강제해 임부의 생물학적·정신적 건강을 훼손함으로써 신체의 완전성에 관한 권리와 모성을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원치 않는 임신 및 출산에 대한 부담을 여성에게만 부과하므로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항변했다.
청구인은 "낙태를 처벌하는지 여부는 임신중단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낙태에 대한 처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 임부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없다"면서 "임신초기의 낙태를 포함한 모든 낙태를 일률적으로 처벌하고 있고, 모자보건법에 규정된 처벌의 예외도 그 범위가 지나치게 좁으므로, 자기낙태죄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임부의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서도 "일반인에 의한 낙태는 의사에 의한 낙태보다 더 위험하고 불법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의사에 의한 낙태를 가중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은 평등원칙에 위반되고, 의사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항변했다.
반면 법무부는 "자기낙태죄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법무부는 "태아는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된다"며 "태아의 생명권의 보호 정도는 그 성장 단계나 모체 밖으로 나왔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없고, 모든 태아에게는 동일한 생명권의 주체성이 부여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태아의 생명보호는 매우 중요한 공익"이라고 강조한 법무부는 "낙태의 급격한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면서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모자보건법에 따라 예외적으로 낙태시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낙태를 어느 범위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할 것인지는 우리 사회 전체가 합의를 도출해야 할 문제로서 입법재량이 인정되는 영역"이라며 "의학의 발전으로 모체를 떠난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임신 초기의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것은 부당하고,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허용한다면 사실상 대부분의 낙태를 허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므로 그 역시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법무부는 "낙태시술의 대부분은 의사 등이 행하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낙태 시술을 하는 경우 비난가능성이 일반인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의사낙태죄 조항 역시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고인은 "낙태의 처벌은 낙태를 근절하는 효과는 없고 오히려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이어져 여성에게 건강상의 문제를 발생시킬 위험이 크다"면서 "낙태를 비범죄화함으로써 안전한 낙태방법이 도입되고, 의료인의 교육·훈련이 가능해지므로, 낙태 비범죄화는 여성의 건강 및 모성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른 참고인은 "낙태 자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거의 모든 입법례에서 공통적이며, 낙태의 자유는 예외적인 허용한계를 통해서 결정되므로, 낙태를 처벌하는 자기낙태죄 조항 자체는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낙태의 예외적인 허용한계를 규정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14조는 그 허용범위가 지나치게 좁으므로, 사회적·경제적 적응사유를 추가하거나 임신 초기(임신 12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는 등 허용한계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절충안을 제안했다.
헌재는 7년 전인 2012년 8월 23일 자기낙태죄 조항 및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조산사'에 관한 부분(조산사낙태죄)에 대해 4대 4로 합헌 결정을 했다(2010헌바402).
당시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해 합헌 의견으로는 ▲태아는 성장 상태와 관계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보호를 받아야 하므로, 임신 후 몇 주가 경과하였는지를 기준으로 보호 정도를 달리할 것은 아니라는 점 ▲만일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현재보다 훨씬 더 낙태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는 점 ▲입법자는 일정한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등 불가피한 경우에는 임신 24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점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 초기의 낙태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 아니한 것이 임부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자기낙태죄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산사낙태죄 조항에 대해서도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의료업무종사자가 낙태 시술을 하는 경우 비난가능성이 크므로, 조산사낙태죄 조항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배되거나, 형벌체계상의 균형에 반하여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며 합헌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 의견으로는 △태아는 생명의 유지와 성장을 전적으로 모체에 의존하고 있는 불완전한 생명이며, 임신과 출산은 모(母)의 책임 하에 대부분이 이루어지므로, 임신기간 중 일정 시점까지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는 점 △국가가 생명을 보호하는 입법적 조치를 취함에 있어 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보호정도나 보호수단을 달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 점 △의학계에서는 임신 12주까지의 태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고, 임신 초기의 낙태는 합병증 및 모성사망률이 현저히 낮은 점 △낙태 처벌규정이 거의 사문화되어 낙태의 근절에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불법낙태로 임부의 건강이나 생명에 위험이 초래되는 사태가 빈발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낙태를 허용해 줄 필요성이 있는 점 △자기낙태죄 조항은 임신 초기(임신 12주 이내)의 낙태까지 전면적,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처벌하고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 및 법익균형성의 원칙에 위배하여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점 등을 들었다.
조산사낙태죄 조항에 대해서도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처벌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헌이므로, 임신 초기 임부의 촉탁·승낙을 받아 낙태시술을 한 조산사를 처벌하는 조산사낙태죄 조항도 위 범위 내에서 위헌"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11일 헌재는 ▲위헌 ▲헌법불합치 ▲한정합헌 ▲합헌 등에서 하나를 결정할 수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헌법불합치' 또는 '한정합헌'에 무게를 싣고 있다.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은애·이영진 헌법재판관은 낙태 허용기준이 지나치게 좁아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유남석 헌재소장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에 관한 최상위 기본권인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 보호받아야 하지만, 임신 초기 단계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도 존중돼야 한다"면서 "의사의 상담을 전제로 한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낙태는 어느 정도 허용하는 방향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을 비롯해 서기석·조용호·이선애·이종석 재판관의 판단에 따라 향배가 결정될 전망이다.
2017년 9월 30일 시작한 청와대 국민청원'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에는 23만 5,372명이 청원에 참여해 청와대 답변을 이끌어 냈다.
보건복지부 의뢰를 받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임신인공중절 실태조사에서는 여성 1만명 가운데 75.4%가 "형법 269·270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3월 18일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생명권 등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헌재에 제출했다.
반면, 낙태죄폐지반대국민연합(낙태반대연합)을 비롯한 6여개 단체와 천주교를 중심으로 120만명 이상이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을 이끌어 내면서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낙태반대연합 측은 "낙태죄 폐지는 희박해진 양심마저 없애버리고 결국엔 대한민국의 생명윤리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생명윤리가 무너진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일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헌재는 국민들의 여론을 엄중히 인식하고 낙태죄 합헌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남성 책임법 제정 ▲출산·양육에 대한 국가 지원 강화 ▲생명존중 교육 강화 등을 요구했다.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도 "출산이 여성만은 책임이 아니라 남여의 공동책임"이라며 "남성에게도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저소득층 부부들의 출산과 양육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아이의 교육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안정적인 교육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의 지원을 당부했다.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피임 교육만으로 낙태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한 염 추기경은 "교회와 학교에서 성·생명·사랑에 대해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면서 인간의 성이 지닌 인격적인 의미와 참된 사랑과 책임을 가르쳐 자신의 성적 충동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염 추기경은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는 책무를 갖는다. 여기에는 연령·성별·사회적 지위 등의 구분이 없다"면서 "죽음의 문화가 퍼지고 있는 사회에서 새롭게 생명의 불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