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환자쏠림 더 심화...의료전달체계 붕괴
만성질환관리하면 해결?...지역사회 일차의료 강화해야
보건복지부가 의뢰한 2021년 제4기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 개선방안 연구결과, 상급종합병원 수를 현재 42개에서 50개로 확대하는 방안이 나오면서 의료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연구는 김윤 서울의대 교수(의료관리학교실)가 진행한 것으로, 상급종합병원 수를 늘려 우리나라 의료공급체계를 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역거점병원은 최소한 300병상 이상이어야 병원 기능을 할 수 있고, 사망률 또한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의 권역을 새롭게 정비하고, 상급종합병원을 더 확대해야 중증환자 진료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상급종합병원 확대를 위해 상급병원의 역할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바람직한 의료전달체계 구축을 위해 경증환자의 상급종합병원 쏠림을 해소하고, 전문 진료(진료량 평가) 및 높은 질의 진료와 환자안전에 대한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경증환자를 많이 볼 경우 페널티를 주고, 환자 의뢰와 회송 기능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 잣대를 적용하는 안을 제시했다.
일차의료 강화 방안으로는 건강보험급여 확대를 통해 만성질환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교육상담료·환자관리료에 대한 보상을 늘리는 안을 제안했다.
양질의 입원 진료를 위해 지역거점병원 육성이 필요하다면서 300병상 규모의 지역거점병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료전달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 종별 진료비 차등제를 확실하게 시행하면 된다고 봤다.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된 지 얼마되지 않아 보건복지부는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19∼2023년)'을 발표했다.
건보 종합계획은 대형병원이 중증환자 위주로 진료하면서 경증환자를 줄일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제도를 마련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먼저 의료기관을 기능에 따라 유형별로 분류하고, 적합한 진료영역의 환자진료 시 수가를 선별 가산해 의료기관 기능 정립을 뒷받침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대형병원 경증환자를 동네의원에 적극적으로 회송하고, 환자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토록 했다.
이를 위해 지역 내 의료기관 간 환자 의뢰를 활성화하고, 대형병원으로 가려는 환자가 진료의뢰서 발급을 요구할 경우 환자본인부담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이 밖에 대형병원에서 경증환자를 회송 수가를 강화하고, 회송 환자 재유입 방지를 위한 관리·감독(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키로 했다.
고혈압·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은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관리받고, 충분한 상담과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할 계획이다.
의원급 일차 의료기관의 유사한 시범사업을 단계적으로 통합(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 및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 및 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사업)하고, 적절한 교육·상담 등을 환자 중심으로 제공하는 포괄적 관리모델을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동네의원에서 치료 가능한 경증질환자가 동네의원을 거치지 않고 대형병원으로 갈 경우 본인부담을 높이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키로 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김윤 교수의 연구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보 종합계획이 제대로 실현될 것인지 반신반의하고 있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 대책(문재인 케어)으로 대형병원 문턱이 낮아진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것.
의료계는 기초를 다지지 못한 상황에서 아무리 정책을 쏟아내더라도 의료전달체계는 더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회에서도 문재인 케어로 인해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이 더 심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은 지난 3월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급여의 급여화로 인한 의료전달체계 붕괴·재정 적자 전환에 따른 재정 건전화 대책 마련 등을 지적하며 대책을 주문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 케어 추진으로 상급병원 환자쏠림 현상이 급속히 가중됨에 따라 의료전달체계가 붕괴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정부에서 건강보험 재정 적립금 20조 7000억 원을 확보한 것은 급속한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면서 "건보재정 건전화를 위한 가장 큰 대책은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건보공단 자료에 따르면 문 케어 추진에 따른 MRI·초음파 급여화 이후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검사 대기자가 많이 늘었다. 이에 따라 검사가 급한 환자가 촬영을 제때 못하고 있다"면서 "이런 정도로 상급병원 환자쏠림이 급속화 하면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다시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문재인 케어가 대형병원 환자쏠림 현상을 더 부추김에도 오히려 상급종합병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은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할 생각이 없는 것이라는 노골적인 비판도 나오고 있다.
선택진료비가 없어지고, 2∼3인실 병실 보험급여, MRI 등의 보험급여 확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등으로 상급종합병원 문턱이 낮아지면서 환자들의 발길이 몰리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병원 문턱이 낮아졌는 데, 환자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렇게 되면 대형병원도 경증환자 때문에 본연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 특별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7년 '빅5 병원'의 진료비 총액이 4조 원을 돌파했다. 대형병원 환자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케어, 선택진료비 폐지, 상급병실료 급여화 등으로 올해부터 대형병원 환자쏠림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대형병원의 환자가 10%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의료전달체계를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은 10% 증가가 아니라 20% 이상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에 무게가 실린다.
의료계는 상급종합병원에 대한 기능과 역할을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의 비용 부담, 의료전달체계 확립, 일차의료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은 채 상급종합병원을 50개로 확대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차의료 강화 방안으로 만성질환관리에 집착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상북도에서 개원하고 있는 한 의원 원장은 "일차의료에는 고혈압·당뇨병 환자만 오는 것이 아닌데, 정부는 일차의료에서는 만성질환자만 보면 의료전달체계가 개선되는 것처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대형병원의 외래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중증환자 수술과 입원진료만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네 병의원에서도 충분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엔 환자본인부담금을 크게 높여야 의료전달체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경증환자가 대형병원을 찾을 때 대형병원에서 진료 후 되돌아가라고 했음에도 돌아가지 않으면 그때부터 보험급여를 하지 않고 비급여 진료비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경증환자가 대형병원을 찾을 때 부담이 크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만성)질환 중심으로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려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을 통해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원에 신뢰를 먼저 주고, 의원에서 환자를 잘 관리하면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