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구 대한의학회장
돈이란 깨끗한 것인가? 더러운 것인가? 라는 질문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하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정말 생뚱맞은 질문이다. 왜냐하면, 돈이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뿐 아니라 돈이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 특수한 인생 철학을 가진 사람 이외에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돈에 노예가 되지 말아라" "돈을 귀하게 여기는 자에게 돈은 모여든다" "돈은 개 같이 벌더라도 정승같이 써야 한다" 등 수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돈에 대해 이렇게 많은 경계의 말이 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돈은 매우 중요한 것이고 힘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돈의 힘을 잘 이용하면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역으로 돈의 힘에 노예가 되는 순간 패가망신으로 인생 종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태어나기를 더럽게 태어난 돈을 위폐(forgery)라고 할 수 있고, 돈 자체는 제대로 태어난 돈이지만 사용상 더러운 돈이 된 것을 우리는 'under table money' 또는 'black money'라는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막강한 '돈의 힘'이라는 것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돈을 정당하게 벌기는 아주 쉬우면서 동시에 매우 지난(至難)한 일이다. 축적하고자 하는 부의 금전적 액수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돈을 깨끗하게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되새겨야만 하는 경구(驚句)는 역시 "돈은 개 같이 벌더라도 정승같이 써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돈을 부정하게 벌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열심히 벌어 소중하게 사용하라는 의미의 강조이다.
현대 사회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합법적인 절세를 통해 돈을 챙기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한 삶의 지혜다. 이 중에서 가장 마음 편안하면서,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한 일은 사회적 부조(扶助)에 따른 세액공제 또는 소득공제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일에 대한 협조 또는 사회적으로 귀(貴)하고 선(善)한 행동에 대한 국가적 사례(謝禮)와 보답이다. 다시 말해 기분 좋게 돈 쓰고, 돈을 제대로 썼다고 나라에서 세금 깎아주는 일을 말함이다.
정치 후원금 10만원 내기 실천해야
사람에게 돈을 주면 합법적으로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가 있다. 이것이 바로 정치자금법에 따른 기부행위다. 사회적으로 기부행위에 대한 세제 혜택은 각양각색이다. 복잡한 세율 원칙이 적용되지만 보통 기부금의 15%를 소득에서 공제해 준다. 그러나 기부금 중 100% 세액 공제 및 100% 소득공제가 되는 것은 정치자금법에 따른 후원금밖에 없다.
예를 들면 연간 10만원 한도의 정치 후원금은 100/110까지 공제 혜택을 주기 때문에 무조건 100% 세액공제를 받고, 연간 2000만원까지 기부금액에 대해서는 10만원의 세액 공제와 1990만원의 100% 소득 공제를 받는다. 알고 있듯이, 소득공제는 세금을 내야 하는 기준액을 줄여주는 것이고, 세액공제는 내야 할 세금에서 일정 금액을 직접 깎아주는 것이다. 즉 정치 후원금 10만원의 세액공제는 소득을 역산해 보면 그 효과가 대단한 것이며, 현행법상 개인으로는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절세 방법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대표적인 이익단체 사람들이 대한의사협회 회원들인 듯하다.
우리는 과거 20년간을 거리를 헤매며 투쟁하였다. 이제 회원들은 지쳐있으며, 국민들로부터 지탄도 많이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다. 투쟁을 해야 할 정당한 명분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이유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의협의 많은 회원들은 '강력한 투쟁'을 원하고 있다. 의권 및 국민건강 수호를 위해서 강력한 투쟁은 당연히 지속하여야 한다. 다만, 이제는 강력한 투쟁의 방법 자체를 바꿔야 한다. 국민을 볼모로 잡지 말고, 사회적 대척점의 반대 집단에 힘을 실어주지 말고, 소위 '의사답고 지식인다운 강력 투쟁'을 하여야 한다. 국민들 마음속에 '의사는 역시 다르다'라는 생각을 각인시켜야 한다.
강력한 투쟁 방법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이 '국회의원에게 10만원 정치 후원금 내기'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자연인이며, 한 명의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단돈 10만원의 후원금으로 내편으로 만들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계시리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며 또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후원금 10만원에 철학이 바뀌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다만 부정적인 입장에서 우려의 말씀을 하는 분들에게 아산 정주영 회장의 말씀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불가능하다고? 해보기는 했어?"
앞에서 정치 후원금의 개인적 세제 혜택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 맥락은 설명한 바와 같이 개인적인 혜택이 있는 정치 후원금을 통해서 의료계의 현안을 해결하는 힘으로 이용하자는 말이다. 아주 합법적인 로비 활동을 하자는 것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피켓 들고 서 있으면, 과연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갖고 쳐다볼까? 확언하건대 관심을 보이는 국회의원은 한 사람도 없다, 절대 없다.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올까 봐 걱정하고 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지식인' 강력 투쟁 위한 '정치인 후원' 필요
그러나 정치 후원금을 통한 합법적 로비 활동을 하면 비록 우리 편은 되지 못할망정, 눈길을 끌어 잡을 수는 있다. 우리의 호소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든, 아니면 측은지심이라도 만들어 내든, 모든 것은 관객이 나를 바라보게 만들어야 한다. 오늘도 의협의 집행부를 거리의 투사로 만들고자 고함을 치는 회원 중에 과연 몇 분이나 국회의원 정치 후원금을 내셨는지 여쭤보고 싶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여러 가지 길 중에 우리는 '신사다운 지식인의 강력 투쟁'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고 있듯이 의협 집행부는 대관, 대국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일이다. 과거에는 대국회 로비의 방법이 구태의연함을 벗어나지 못해서 정상적이고 떳떳한 로비가 아니라 뇌물공여와 비슷한 형태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의협은 물론 국회까지 날벼락을 맞아 모든 국회의원이 의사들을 만나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는 일까지 겪었다. 그 사건도 의협 내부 회원의 고발을 통해서 발생함으로써 의협은 더욱더 사면초가에 빠지게 됐고, 그 이후 의협은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기구가 된 것이다.
이제는 정치자금법을 통해서 당당하게 정치 발전을 위한 후원을 할 수 있다. 이 활동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어 내려 하면 안 된다. 적당한 수준의 관심을 촉구하고 우리의 호소에 눈길 정도 돌려주기를 바라면 된다. 일종의 'catch her eye'의 구애다.
대한의사협회 10만 회원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런데 이들은 왜 단합해 응집된 힘을 발휘할 줄 모르고, 흐르는 물속의 모래성처럼 무너져 가고 있을까?
10만명의 의협 회원이 여야를 논하지 말고 자기가 생각할 때 의정 활동을 열심히 하는 국회의원에게 10만원씩 정치 후원금을 기부하면 1년에 100억이라는 엄청나게 큰돈이 여의도를 통해서 이 나라의 정치 발전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100억의 큰돈이 특정 단체에 의해서 매년 투입될 때 그 힘과 효과는 어떨 것인가?
이러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의료 관련 단체장이나 의협 회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의정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되는 한 사람의 국회의원에게 한 분의 회원이 10만원씩만 정치발전 후원금을 기부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말 이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현행법상 단체가 나서서 정치 발전 후원금 납부를 주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행은 철저하게 의협 회원 개개인의 몫이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연시가 내 입에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수주대토(守株待兎)하는 마음으로 옛날을 그리워하고, 옆 사람을 원망하며, 목소리만 높이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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