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헬기

닥터헬기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05.13 09:22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찬경 원장 (인천시 부평구·밝은눈안과의원)

정찬경  원장(인천시 부평구·밝은눈안과의원)
정찬경 원장(인천시 부평구·밝은눈안과의원)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저기 멀리서 헬리콥터 한 대가 날아가고 있었죠. 마음에 슬픔이 차올랐어요. 그건 하늘에 있을 형 생각이 났기 때문이에요. 어떤 이가 형의 장례식에서 새로운 응급 구조 헬리콥터에 형의 이름을 새기겠노라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다시 한 번 얼마 전의 가슴 아팠던 시간들을 회상해 보았어요. 서류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은 채로 당직실에서 발견되었다는 형……. 그토록 사력을 다해 응급환자를 살리려 애쓰다 정작 자신은 의사의 손길 한번 받아보지도 못한 채 떠나버리다니요.

형과 함께 힘들었던 의대 본과 시절을 한 교실에서 보냈었죠. 형은 늘 얼굴에 웃음을 띤 적이 많았어요. 쾌활하면서도 친구들에게 정감 있게 대하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영명해 보이는 인상에 맑고 순수한 눈빛을 가졌던 사람이었죠. 돌이켜보니 그 눈빛 안에는 강직함도 있었던 것 같아요. 

형은 학부와 인턴생활을 마친 후 다른 과를 전공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물리치고 운명처럼 응급의학이라는 힘들고 외로운 길을 택했죠. 수련을 마친 뒤엔 모두 가기를 꺼려했던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책임자의 자리를 맡게 되었구요. 전국의 응급의료체계를 관리해야하는 막중한 책임은 형의 두 어깨에만 매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형은 기꺼이 그걸 감당해내며 난관을 하나하나 돌파해나갔죠. 응급환자 한 사람만을 떠올려도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버거운데 한 나라의 응급환자들을 돌보는 자리를 지켜야 하다니요. 

이국종 교수는 형에 대해 "자신이 응급의료 전반에 대한 정책의 최후 보루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았다"고 말하더군요. 또 "현재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 어느 곳에도 윤한덕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부분은 없다. 우리는 윤한덕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도 했고요. 그의 말대로 형은 아틀라스가 지구를 떠받치듯 온 몸이 부서져라 이 땅의 아픈 이들을 지켜내고 있었군요. 형이 그토록 치열하게 살고 있는 동안 난 편히 진료실에 앉아 안일에 젖어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죄송하고 부끄러워집니다.

그가 쓴 <골든아워>라는 책에 형을 회상하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그는 교단 쪽으로 천천히 내려가며 양측에 계단식으로 놓여있는 책상들을 손으로 가볍게 쓸며 천천히 내려갔다. "내가 말이야. 여기서 공부했었어." 그렇게 말하며 돌아보는 윤한덕의 표정이 어린 학생같이 상기되었다. "여기서 강의 받을 때는 말이야. 이 답답한 강의실을 벗어나서 졸업만 하면 의사로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 "요즘 애들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수업을 들을라나"……. 몸을 돌려 강의실을 끝에서 끝까지 느리게 둘러보고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빠르게 강의실 앞문으로 빠져나갔다.』

읽는 동안 그 때 그 강의실에 형과 함께 서있는 듯한 착각을 잠시 했어요. 기억나요, 그 계단식 강의실, 손때 묻은 책상들, 나도 형처럼 그곳에 서있었다면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요. 형이 의사로서 하고 싶었다는 그것들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그 무엇을 이제야 조금씩 이뤄가려던 형 앞에 이런 운명이 벽처럼 가로막고 있었군요.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려옵니다.

형의 집무실 앞에 몇 송이의 꽃과 커피 잔이 놓여있는 걸 보았습니다. 형은 봉지커피를 종이컵에 담아들고 다녔다면서요, 그래요, 그 시절 우리 학교 다닐 때, 그 달달한 커피를 자판기에서 동전 넣고 꺼내 먹는 게 낙이었잖아요. 형은 아마도 그걸 마시며 학생 시절을 생각했을 거예요. 비록 힘겨운 나날일지라도 의과대학 시절의 그 순수한 마음, 오직 환자를 사랑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만이 전부이던 청년시절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자신을 독려하며 열정을 불태웠겠죠. 형의 그랬을 모습을 상상해보다 가슴이 다시 아파오는 건 어쩔 수가 없군요. 자신의 몸도 좀 돌보며 일하지 왜 그랬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자꾸만 들어요.

난 형의 죽음 앞에서 정말 부끄러웠어요.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해내려는 사명감으로 그토록 이타적인 삶을 살았던 형에 비해 저의 의사로서의 삶은 참 초라하고 이기적이었기 때문이에요. 형의 그 응급환자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 아가페적인 사랑이 신비롭게 느껴지기조차 합니다.

'중앙응급의료센터가 하는 일이 환자를 행복하게 해야 한다'고 형은 센터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행복과 일상의 안락을 아낌없이 희생하면서 남의 행복만을 위해 살았던 형은 자신을 그처럼 불살라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계셨군요. 

형의 동료였던 허탁 선생님은 형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한덕이의 삶은 '응급의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응급환자가 제때 적절한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아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형은 전공의 시절부터 응급실에 온 중증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걸 보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밤새 선진국의 사례를 연구하며 고뇌하기도 했고요. 이제 그 꿈이 이뤄지길 하늘에서 기도하고 계시겠죠. 남은 저희들이 형의 열정과 환자에 대한 고결한 사랑을 본받아 우리에게 남겨진 몫을 채워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형은 응급의료 전용헬기인 닥터헬기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관철시켜 응급의료시스템의 새로운 차원을 구축해냈죠. 형은 국립의료원 응급센터 옆에 닥터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기를 그토록 바랐다죠. 국회까지 달려가서 헬기 착륙장을 늘려 달라 호소하기도 했고요. 형의 바람대로 닥터헬기가 더 많이 도입되고 형이 일하던 그곳과 더불어 많은 장소에서 맘껏 헬기가 오르내릴 수 있기를 저도 간절히 기원할게요.

형! 부끄러운 후배는 다시 한 번 하늘을 쳐다봅니다. 저 먼 하늘 위에서도 형은 응급환자들을 걱정하고 계실까요. 하늘을 보다가 형 자신이 닥터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세상의 아픈 이들을 도우러 내려왔다 다시 하늘로 올라간 닥터헬기……. 형은 세상에 밝은 빛과 따스한 온기를 전해준 치유와 사랑의 헬기예요. 

형!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형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형의 정신을 기리며 잊지 않으려 뜻과 행동을 모으고 있어요. 형을 잃은 슬픔을 딛고 희망과 용기의 깃발을 다시 들어 올리고 있어요. 형의 치열하고 뜨거웠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을 거예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배, 응급의료의 영웅, 많은 생명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져 불사르고 떠난 형….

형은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사랑의 닥터헬기로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예요.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