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협상이란 독배(毒杯)를 든 자를 위한 변명

수가협상이란 독배(毒杯)를 든 자를 위한 변명

  • 신형준 의협 홍보 및 공보 자문위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06.0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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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searchWord'>신형준</span> 의협 홍보 및 공보 자문위원 ⓒ의협신문
신형준 의협 홍보 및 공보 자문위원 ⓒ의협신문

수가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는 뉴스를 6월 1일 오전에 접했다. 그리 놀라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들이야 2.9%라는 인상률에 경악하며 분노하셨겠지만, 의사가 아닌 나로서는 애초부터 '그리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은 '강자'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회이다. 의사 선생님들이야 '우리들이 강자'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다만 궁금한 것이 있었다. 다른 직군의 인상률이었다.

높은 순서대로 열거하면, 조산원 3.9%, 약사회 3.5%, 치협 3.1%, 한의협 3.0%, 병협 1.7%였다. 의협은 2.9%로 병협 다음으로 낮았다.

이 수치에서 뭔가 느끼는 것이 없는가? 

공단, 강한 자에게는 박하게, 약한 자에게는 후하게

각 직종의 인상률 순서는 예비고사(혹은 본고사), 학력고사 혹은 수능 입학 커트라인과 정확히 역순이다, 치협과 한의협의 순위가 바뀐 것만을 제외하면... 이게 우연일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정부는 '강한 자(혹은 강해 보이는 자)에게는 박하게, 약한 자(혹은 그리 보이는)에게는 후하게' 주는 '강박약후'(强薄弱厚)를 택한 것이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이해한다면, 이런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는 점은 애초부터 명약관화했다. 

아무리 의사 선생님들이 부정해도, 의사라는 직업은 대한민국에서 최강자 자리에 포진한다. 그리고 현 좌파 정부는 우리 사회 '최강자'의 요청을 들어줄 마음이 애초 없다. 챙길 집단이 어디 한 두 개여야지... 

최저임금 인상률에 턱없이 모자란다, 최저임금 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의원(醫院)이다...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6월 1일 새벽. 턱없이 낮은 수치를 통보받은 의협 수가협상단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의협신문
6월 1일 새벽. 턱없이 낮은 수치를 통보받은 의협 수가협상단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의협신문

정부가 애초 결정한 인상 폭, 협상은 요식행위

정부는 의협과 협상하기 전부터 '인상 폭'을 사실상 결정했을 터였다. 그러니 지난 5월 29일, 공단 협상 대표인 강청희 급여상임이사조차 기자간담회를 자청해서 '(수가인상에 따른 추가소요예산(밴드)을 결정하는 건보공단 재정소위원회에서 인상 폭을 너무 낮게 잡았다며) 이런 식이라면 수가협상 역할을 포기하고 보건복지부에 그 역할을 위임하는 게 낫다'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협상단을 꾸려서 세 차례에 걸쳐 치열한 회의를 했고, 협상 마지막 날인 5월 31일에는 일곱 차례에 걸친 밤샘 협상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부여받은 '최종 성적표'가 그리 초라한 것은 그런 탓이었다. 

수가 협상을 애초 거부해서 2.7%의 인상률을 받아든 지난해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 의협 협상단은 "0.1% 인상폭이 깎이는 패널티를 받더라도, 차라리 협상을 결렬시키자"는 데 결론을 모았을 것이다.

한데... 필자가 두려운 것은 이 지점부터이다. 사정을 안다면, 협상단을 탓해서는 안 된다. 

애초 '큰 그림'은 정부에서 이미 그려왔다. 솔직히 협상은 민주주의라는 틀에 맞추려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정부는 의사에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니 협상 마지막 날인 5월 31일, '인상 폭 1.3%'라는 터무니없는 수치를 공단에서 제시한 것이다. 의협 협상단이 사력을 다해 10차에 걸쳐 협상한 결과 2.9%까지 올렸지만, 그 이상, 즉 3%는 애초 넘어갈 수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민족사 외교 끝판왕' 서희가 왔어도 3% 인상은 불가능

협상이라는 게 양자 합의가 아니면 애초 성립하지 않아야 하는 것. 한데, 수가 협상은 공단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 넘기면 그 뿐이다. 협상 결렬에 따른 패널티를 건정심이 적용하면 2.8%일 것이고...

상황이 이런데 의협 협상단을 탓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필자는 내일부터 쏟아질지도 모를 몇몇(물론 극소수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의사 선생님들의 비난이 눈에 선하다.

무능하다, 그러려고 협상했느냐, 때려치워라, 의협 수뇌부는 사퇴하라...

필자가 보기에, 고려를 침입한 요나라 군대를 '세 치 혀'로 물리치고 강동 6주까지 획득한 '우리 민족사의 외교 끝판왕' 서희(942~998년)가 재림해도 인상률 3%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슬픈 것은... 의협 협상단이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음에도, 공단의 인상률을 받아들일까 한때나마 망설였다는 점이다. '결렬로 인해 그나마 0.1% 인상률이 깎일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했다는 것이다. 

6월 1일 AM 3:00. 이필수 의협 수가협상단장이 새벽 늦은 끼니를 컵라면으로 때우고 있다. ⓒ의협신문
6월 1일 AM 3:00. 이필수 의협 수가협상단장이 새벽 늦은 끼니를 컵라면으로 때우고 있다. ⓒ의협신문

독배(毒杯) 마시는 의협 협상단에 위로 필요

수가 협상은 2020년에도, 2021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협상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의협 수가협상단은 독이 든 잔을 마시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국민 정서를 등에 업으려는 좌파 성향의 정치 세력이 집권할수록 독배(毒杯)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협상 결렬 기사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는데, 의협신문의 기자 한 분이 사진 몇 장을 필자에게 보냈다. 협상 마지막 날인 5월 31일 오후~6월 1일 오전까지의 의협 협상단 풍경이었다. 

잠도 못 자고 의자에 기대 앉아, 끼니를 컵라면으로 때우는 의사 선생님들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명망 있는 지역 의사회장에, 대학 교수를 하는 중진 중의 중진인 의사 선생님들이 저리 대접받는구나...'

문득 떠오른 옛 생각 하나. 예전에 특전 사령관을 지낸 전임범 장군 부대로 국회의원들이 방문을 했다. 전임범 사령관은 국회의원들에게 특전사 식사를 대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애들이 이런 것 먹을 장병들이 아닙니다. 제발 급식비 좀 올려주십시오." 

그 해, 특전사 급식비는 대폭 상향됐다.

의협 협상단에 뭔가 격려를 해주지는 못할망정, 비난을 하지는 마시기를 간절히 머리 숙여 바란다. '그런 대접을 받을 분들'이 아닌 것, 다 아시지 않는가!

의협신문이 5월 31일∼6월 1일 의협 협상단의 회의장 바깥 풍경을 화보로 담아 인터넷 판에 실은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최대집 회장과 방상혁 부회장도 6월 1일 새벽까지 회의장 밖 대기실을 지켰지만, 사진은 협상단 중심으로 실렸다. 그 날 주인공은 의협 협상단이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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