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심 의료법상 신의료기술평가제도 법리 오해" 파기환송
'혈맥약침술' 기존 약침술 아냐...심사평가원 처분 인정
대법원이 한의사가 산삼을 비롯한 한약재에서 추출한 약물을 주로 암 환자의 혈맥(혈관)에 직접 주입하는 '혈맥약침술(산삼약침)'에 대해 비용을 지급 받으려면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를 통해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인정부터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대법원 판단으로 인해 앞으로 한방병원, 한의원에서는 암 환자에게 시행하고 있는 혈맥약침술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6월 27일 '혈맥약침술은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약침술에 포함된다'는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의료법상 신의료기술평가 제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이번 사건은 P요양병원을 운영하는 A한의사가 암으로 입원한 환자 A씨에게 혈맥약침 등의 치료를 한 뒤 본인부담금 920만원을 받았고, 2014년 8월경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과다본인부담금 확인처분을 받자 심평원을 상대로 혈맥약침술은 비급여 항목으로 등재된 약침술의 범위에 된다고 주장하면서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 사건 1심(서울행정법원)은 혈맥약침술은 약침술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며 심평원의 과다본인부담금확인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서울고등법원)은 혈맥약침술은 시술대상·시술량·시술부위·원리 및 효능 발생기전에 있어 약침술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 판결에서 최종 결론이 났다.
대법원은 혈맥약침술이 기존의 한의사의 약침술과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의료법에서 정하고 있는 신의료기술평가의 안전성·유효성 평가 대상인지를 살폈다.
혈맥약침술이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으로 등재된 약침술과 같거나 유사하다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아도 비급여 의료행위에 해당하지만, 약침술로부터 변경한 정도가 경미하다고 볼 수 없다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혈맥약침술은 기존에 허용된 의료기술인 약침술과 비교할 때 시술의 목적·부위·방법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고, 그 변경의 정도가 경미하지 않으므로 서로 같거나 유사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원고가 수진자들로부터 비급여 항목으로 혈맥약침술 비용을 지급받으려면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를 통해 안전성·유효성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약침술은 한의학의 핵심 치료기술인 침구요법과 약물요법을 접목해 적은 양의 약물을 경혈 등에 주입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의료기술이므로 침구요법을 전제로 약물요법을 가미한 것이지만, 혈맥약침술은 침술에 의한 효과가 없거나 매우 미미하고 오로지 약물에 의한 효과가 극대화된 시술이라고 이유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대법원은 "혈맥약침술과 약침술이 다름에도 원심은 혈맥약침술이 약침술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고, 수진자들로부터 본인부담금을 지급받기 위해 신의료기술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며 "원심 판단에는 의료법상 신의료기술평가 제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한편, 혈맥약침술 사건 관련 혈맥약침의 위험성을 재판과정에서 증언한 이무열 중앙의대 교수(중앙대병원 신경과)는 "정맥으로 직접 투여하는 약물은 심장·폐·뇌에 즉시 직접 반응을 나타내므로 효과와 부작용을 근육주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면서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받지 않은 채 환자들에게 투여하고 있는 혈맥약침의 위험혈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환자 대상의 제대로 설계된 연구결과가 전혀 없음에도 한방병원, 한의원에서 무분별하게 말기 암 환자에게 사용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도 혈맥약침 재판 진행 과정에서 의견서를 제출,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해 안전성·유효성을 입증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의협은 "현재 시술되는 한방약침액 중에서 식약처에 의해 안전성·유효성 심사가 통과돼 품목허가가 이뤄진 의약품은 없으며, 그 효과를 차치하고 적어도 안전성에 관한 검증만이라도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현행 약침시술은 이미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혈관에 주사기를 이용해 주사액을 주입하는 이 사건 혈맥약침시술은 어떤 검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인정해서는 안 되는 시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