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1차의료가 무너진다(하)-다시 '전달체계 확립'

[기획]1차의료가 무너진다(하)-다시 '전달체계 확립'

  • 김병덕기자 kduck@kma.org
  • 승인 2003.08.18 00: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전달체계 확립'이 화두



최근 영국에서 보건의료제도를 연구한 남은우 교수(고신대 의료경영학)는 “영국은 늘어나는 공공의료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경제원리 방향으로 병원서비스를 개혁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영리병원은 더욱 늘어나게 되고, 이는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확대를 유발시키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남 교수는 “한국 정부가 현재 공공의료를 대폭적으로 확충하는 것은 유럽국가의 시장경제 지향적인 정책과는 역행하는 정책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한국의 공공의료 부문이 가장 적은 국가로서 적절한 공공의료 제공 시스템이 필요하기는 하나 단기간에 급격히 공공의료를 늘리는 것은 여러 가지로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공공치료서비스 체계를 확대하기보다는 질병을 사전에 예방·관리하는 적절한 건강증진 및 보건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남 교수의 진단이다.

의료정책 결정자들은 고질적인 영국병의 전철을 답습하지 말고 시장경제원리가 작동하는 큰 틀에서 1차의료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여러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더욱이 1차의료의 국가개입모델로 효율성과 평등성의 양적인 면을 강조하는 영국식보다는 일본, 캐나다, 호주 등의 모델을 참조해야 한다는 지적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예산과 의료지표 순위에서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예산지원 없이는 한국 의료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1차의료가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먼저 제도적으로 3차의료는 입원 중심, 1차의료는 외래 중심으로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해 나가야 한다. 1∼3차 의료기관이 각 급에 적합한 진료를 하는 경우엔 가산 수가를, 적합하지 않은 진료를 하는 경우엔 가감 수가를 지불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역할이 분담되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 응급환자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1차의료를 거쳐야 상급의료기관으로 갈 수 있도록 철저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하며, 환자회송시스템이 활성화되도록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구조적 갈등관계와 경쟁관계에서 협업과 분업의 관계, 기술적인 지원관계로 유도하는 `의료협력체계'가 형성돼야 한다.

둘째, 초진과 재진으로 나눠져 있는 기본진료 항목을 보다 세분화하고, 건강증진·질병예방·재활·상담·교육·재택진료료 등에 대한 수가를 신설함으로써 진료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기본진료에 대한 수가의 가산과 신설을 통해 1차의료 서비스를 보다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와 연계해 노인의료·건강증진·예방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가를 신설해 1차의료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1차의료 기반 조성을 위한 1차의료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의학교육체계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현재의 전문의 양성위주의 의학교육 프로그램 하에서는 건강증진·질병예방·진단치료·재활·상담·교육 등은 물론 신체적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사회적 건강까지도 포괄적이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1차의료인을 양성하는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전문의 양성 위주로 되어 있는 현행 의학교육체계를 구조적으로 개편하여 전문의 외에 1차의료인, 기초의학자 뿐 만 아니라 기업, 언론계, 정부기관 등 사회 다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운영함으로써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의료인력을 배출해야 한다. 이미 배출되어 있는 의료인력에 대해서는 1차의료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과정을 이수토록 하고, 의협 주관하에 정기적인 연수교육을 받도록 함으로써 질적 향상을 기해야 한다.

넷째, 보건소와 1차의료의 연계를 통해 지역보건의료사업에 1차의료기관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방접종·영유아 건강검진·임산부 건강진단·노인의료·보건소 진료사업의 위탁·전염병 관리 지원 등 민간과 공공의료가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민간의료가 9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공공의료의 양적인 확충만을 전제로 하는 공공의료 발전방안은 또 다른 의료자원의 낭비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공공의료의 역할을 수행하는 민간의료부문에 대해 공공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1차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도 1차의료 본연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건강증진·질병예방·진단치료·재활·상담·교육 등은 물론 신체적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사회적 건강까지도 포괄적이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서비스의 질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손명세 교수(연세의대 예방의학)는 1차의료의 위축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보완의학과 한의학과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꼽고 있다. 배타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의학적으로 타당한 치료법은 포섭하고 완전히 허무맹랑한 것은 철저하게 그 비과학성을 입증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기존 의료 영역의 확장을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공공보험의 부담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되 이것이 곤란할 경우 민간의료보험 등의 도입을 통해 자본조달능력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손 교수는 한계에 도달한 공공보험과는 별도인 의료계내의 자본에 의한 민간보험이 형성된다면 의료계의 자생력은 훨씬 커질 수 있으며, 여기서 조성된 재원을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취약한 1차의료 부문에 투입한다면 재원동원능력의 강화라는 부수적인 이익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 교수는 1차의료부문이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연결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차의료부문에서 환자를 배분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환자들의 3차기관에의 접근을 조절할 수 있다면 1차의료부문의 협상력은 월등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의협 등 공급자가 설계하여 완성하는 주치의 등록제를 시발점으로 1차의료부문의 연결망을 구축함으로써 환자에 대한 배분권을 갖게 되면 1차의료부문의 위축문제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한익 교수(서울의대 진단검사의학)는 의료평론집 `의료에는 身土不二가 없다'를 통해 “모든 의료정책은 환자가 무조건 의사를 만나도록 하는데 집중돼야 한다”며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모두 이 만남에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이것이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가장 적은 비용으로 국민 건강을 지키고 높은 수준의 의료를 유지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가벼운 질환에 대한 환자의 부담을 높임으로써 의료재정을 절약하겠다는 것은 의사와 환자의 만남을 하나의 장벽을 더 세우는 것이다. 무너지고 있는 의료전달체계와 대형병원의 환자 집중현상 속에서 1차의료는 본래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1차의료의 공간에서 의사와 환자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제도적·환경적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의료문제의 70∼80%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여러 학자들은 이러한 접근만이 국민의료의 질적인 향상을 추구할 수 있고, 전체적인 보험재정을 건실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1차의료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의료계는 물론 정부, 학계, 언론, 국민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