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농성 투쟁을 잇는 것은 '안타깝지만 영광스런 대관식'
"정부를 어떻게 이겨"라는 뒷골목 자학은 그만 씹어야
최대집 회장의 인터뷰 기사에 부쳐
7월 8일 밤, 의협신문 인터넷 판에서 최대집 의협 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제목부터 아렸다. "최대집을 싫어하는 의사 회원들에게..."
기사를 읽다가 결국 울컥했다.
"비정상적인 한국 의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말에 반대하는 의사 회원은 없을 거다. 그래서 인간 최대집이 싫어도, 이번 한 번만 (투쟁에) 동참해 달라고 부탁드린다. 인간 최대집이 맘에 안 든다고, 한국 의료를 정상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이번 투쟁을 차버릴 수는 없지 않나"
필자는 의사가 아니다. 삼류 기자 출신에, 대통령 비서실 연설기록비서관실에서 '국민에게 정권의 입장을 알리는 작업'을 아주 잠깐 했다. '출신 성분'이 그래서인지, 지난 해 5월 의협 홍보 및 공보 이사가 된 이후, 의협의 운영 방향을 놓고 집행부 임원과 여러 차례 논쟁도 했다. 결국, 의협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에 지난 해 8월 초 이사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심평의학’이나, 1980년대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이나...
필자는 '수가 30% 인상 주장'은 국민 정서나 현 경제 상황을 생각할 때 실현되기 어려우며, '의사 총파업론'도 설령 시도되더라도 현실적으로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의협신문 인터넷 판에 이런 이야기, 이미 여러 차례 했다. 최근에는 의사신문에 '최명길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http://www.doctors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556 참조)
그럼에도, 의협에서 일하면서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정책에 얼마나 문제가 많으며, 소위 '심평의학'으로 의사 선생님들이 큰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평의학은 1980년대 군사 정권이 언론에 내렸던 '보도지침'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그 때, '쓸 수 있는 기사'와 '쓸 수 없는 기사'에 대한 판단을 군부가 했다. 보도지침을 겪지 않은 나로서는, 보도지침의 철폐를 위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싸웠던 언론인 선배들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래서 주변 의사 선생님들에게 숱하게 이야기했다. 선생님들이 뜻을 펴시려면 제발 국민을 등에 업고 가시라고... 대중 민주주의에서 국민을 거스르고는 정부를 이길 수가 없다고... 지난 3월, 파업을 했다가 단 하루 만에 박살이 난 한국유치원총연합회를 보시라고...
필자가 옳다고 강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있음도 분명 의사 선생님들은 아셔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어찌됐든 '일'은 벌어졌다. 지난 7월 2일, 최대집 회장은 국민을 위한 의료 개혁이 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갈 것이며 오는 9~10월 중 총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뒤, 지금까지 단식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이 장면에서 대한민국의 의사 선생님들에게 엎드려 말씀 올린다.
파업에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의협의 투쟁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다양성, 모두 존중해야 한다. '파업이고 뭐고, 환자를 잘 보살피는 것이 의사의 최대 책무'라며 '바깥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의사 선생님들의 입장조차 필자는 존중한다. 기실 그런 행동도 의사로서의 고귀함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본다.
다만, 그간 대한민국의 의료 정책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셨던 의사 선생님들께는 이 것 하나 여쭈어 보고자 한다.
의료 개혁을 이루기 위해... 'What is to be done!'
대한민국의 의료 정책을 개혁하기 위해, 선생님은 그간 무엇을 하셨고, 앞으로 무엇을 하실 계획인지에 대해 말이다.
필자가 보기에 현재로서는 의협과 함께 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본다. 도대체 다른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최 회장의 단식 농성이 속칭 '무대뽀'라고 비판할 수도 있고, 책략이 부족했다고 아쉬워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지금 할 수 있을 것인가?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표현을 빌린다면, "What is to be done"이다.
최대집 회장의 전술이, 의협과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의 전략이 마음에 안 들거나 아쉽다고 그냥 넋 놓고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인지... 그 결과가, 의사 선생님들이 그리도 싫어하는 '심평의학'과 '문재인 케어'를 결국은 추인하는 것이라면?
이념적 지향점이 판이했던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은, 중국을 침탈하는 제국주의 세력과 일본에 맞서기 위해 '국공합작(國共合作)'까지도 1920년대와 1930년대, 두 차례에 걸쳐 했다. 최대집 회장이나 의협에 대한 아쉬움이 문케어나 심평의학보다 크신 것인가?
1980년대에, 언론 개혁의 방식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어찌됐든 당시 선배들은 '보도지침의 철폐'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함께 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뤄냈다. 덕분에 나 같은 사람은 정권으로부터의 '보도지침' 같은 것은 없이 기사를 쓸 수 있었다.
후배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 목소리를 내야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보도지침이나 다름없는 '심평의학'이나 '문재인 케어' 같은 것을 개혁하는데 의사 선생님들은 한 목소리를 내셔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훗날, 후배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은 일이 아닐까?
천성이 비겁하고 겁 많은 탓에 학생 운동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기에 주변부만 맴돌던 18세 대학 신입생 무렵,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장이 하나 있었다. 4.19의 도화선이 됐다고 평가받는 서울대 문리대학생회의 '4월 혁명 1 선언문'이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자랑한다.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 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밀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대한민국의 의료는 근본적으로 개혁돼야 한다고 이야기하시는 모든 의사 선생님들에게 제발 머리 숙여 부탁 올린다. '우리가 정부를 어떻게 이겨'라며, 뒷골목에서 더 이상 자학을 되씹지는 마시라고. 의사로서의 양심을 가지고, 오직 국민만을 생각하며, 대한민국 의료의 건강한 생명성을 되찾는 '타수의 일익'임을, '종 치는 자의 한 날개'임을 이제 외치시라고.
이런 저런 이유로 최대집 회장의 단식 농성 투쟁에 동참할 수는 없더라도, 의사 선생님으로서 할 일은 많다고 본다.
의협은 '의사들이 의료 개혁을 왜 외치는가'를 알리는 광고를 곧 여러 매체에 알릴 예정이다. 의료 개혁에 동의하신다면, 대한민국의 의사 선생님들은 이 광고를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는 '1인 매체'가 돼야 한다. 단식 농성 중인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 의협 옛 회관을 방문해서 격려해주시라. 지지 성명을 내 주시라. 그것만으로도 의협에, 대한민국 의료 개혁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더불어, 단식 농성 투쟁은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10여일 만에 단식 투쟁이 중단된다면, 대한민국 의사들은 속된 말로 '봉'으로 보일 것이다. 최소한의 결기조차 없는 집단으로 비칠 것이다. '역시 배부른 놈들은 투쟁을 못해'라는 인상만을 줄 것이다. '대한민국 의료를 살리기 위해' 사즉생의 심정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집 회장은 며칠 내에 병원으로 향할 것이다. 이 폭염을 어찌 더 이상 견디겠는가! 그 때, 누군가는 그 짐을, 그 십자가를 이어 받아야 한다. 그 가시관(crown of thorns)을 써야만 한다. 그 가시관은 대한민국 의료의 일그러짐과 왜곡, 고통을 환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나섬의 순간은 '안타깝지만, 영광스럽고 찬란한 대관식(戴冠式)'이 돼야 한다. 대한민국 의료의 개혁을 위한 십자가를 짊어지는 이의 대관식으로!
의료계 수뇌부들이 '무기한' 단식 농성에 집단적으로 동참하셔서 이 대관식의 '주인공들'이 되시고, 이로써 의료 개혁을 위한 의사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